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7 00:33 (Fri)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전북 시의 숨결을 찾아서
일반기사

23. 채규판(蔡奎判) 편 - 비정(非情)의 서정 꿈꾸는 이미지스트

▲ 채규판 시인
군산 옥구 출생으로 원광대학교 국문과(1964년)와 동 대학원을 수료함. 196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1967년 시집 '바람에 서서' 이후 20여 권의 시와 시조집, 그리고 '한국현대 비교시인론' 외 7권의 논저를 발간하면서 1963년 부안 삼남중학교 교사, 군산 동고교를 거쳐 1988년부터 원광대 국문과 교수로 봉직하다 정년퇴직을 하였다.

 

배암 한 마리 아까샤 숲에 있네.

 

빼문 혀로

 

휘휘 바람을 젓네.

 

산, 산새 섧히 울고

 

꽃, 꽃잎이 지고

 

오월 하늘, 배암, 꽃잎에 노네.

 

노을 빛이 배암이네.

 

배암은 노을의 출구를 아네.

 

꿈의 울밑에

 

찍-찍, 배암 우는 소리

 

- 듣는가

 

들리네.

 

꽃이네.

 

먼 능선을 휘어잡는

 

아까샤 꽃이네.

 

아아, 배암이 아까시아

 

 

숲에 지네.

 

-「배암 詩抄」전문, 1969

 

'숲에 든 뱀'과 그 '뱀의 - 울음소리'가 간결하면서도 퍽 인상적이다. '배암이 아까샤 숲'에서 '혀를 빼물고' 그것도 '휘휘 바람을 젓고' 있다는 돌연한 발상은 참으로 낯설고 이색적인 -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 비쥬얼 이미지(visual image)로서 이는 '언어를 감각화'하는 그의 남다른 이미지스트다운 상상력과 재능의 소산이 아닌가 한다.

 

제가 가면 어디까지 갈까.

 

소롯이 피는

 

밤꽃들

 

아우성인데

 

훠어이 훠어이

 

내두르며

 

산을 때린다 해서

 

꿈쩍이나 할까.

 

머루랑 으깨어 풀어 놓듯

 

검푸른

 

강.

 

달이

 

탱자만 하구나.

 

-「여창旅窓」에서, 2009

 

달(月)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무슨 사연 그리 많아 '훠어이 훠어이/ 내두르며/ 산을 때린다.'했다. 그리고 '머루랑 으깨어 풀어 놓듯/ 검푸른/ 강'같이 어두운 밤인데, 멀리 '탱자'만한 달이 '제가 가면 어디까지 가겠' 다고 '잘도 가는구나.' 하고 나그네는 말한다. 캄캄한 '어둠의 밤'을 '머루를 으깨어 풀어 놓듯 / 검푸른 / 강'으로, 그리고 그 캄캄한 하늘에 '샛노랗게 떠 있는 조그마한 달'을 '탱자'에 비유하여 간결하면서도 산뜻한 이미지를 여전히 선보이고 있다.

 

이미지스트다운 이러한 그의 시풍, 그리하여 순간 순간, 사물과 사물 사이에서 튕겨오는 미묘한 움직임과 그 직관적 감각의 편린들을 '날(生) 이미지' 그대로의 직조 하는 브르통의 자동기술법이라고나 할까? 이러한 시법(詩法)이 그의 말마따나 '구성에 특별한 신경을 쓰지 않고, 내용이 단계적이지 못하며, (그럼에도) 추상적 의미나 가치를 긍정하고자'하는 채규판 시의 자위적(自衛的) 개성이 아닐까 한다.

 

그의 시는 이처럼 낯설고 이질적인 언어 결합에서 오는 싱싱한 이미지적 조어(造語), 그러나 그러한 이미지와 이미지의 무리한 결합 과정에서 파생되는 난해한 구문 또한 그의 시에 서로 다른 평가를 불러들이게 되는 또 다른 측면의 하나가 아닌가 한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