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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년의 사랑이야기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데를 드디욜세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 데 졈그랄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현존하는 백제의 유일한 시가로 추정되는 '정읍사'. 행상을 나간 남편의 밤길을 염려하는 아내의 애절한 마음을 노래한 작자 미상의 가요로 한글 기록으로 전하는 시가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 절절한 마음을 기악에 실어 전하는 곡이 있다. '수제천(壽齊天)'! 문자적 의미로는 사람의 목숨(수명)이 하늘처럼 영원하기를 기원한다는 뜻. 이 곡은 외국인들이 특히 주목하는 우리 음악의 대표작으로 아름다운 가락과 독특한 장단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장중하면서도 화려한 곡이다. 무사귀가든 만수무강이든 그 간절한 염원을 신묘하게 그려낸 우리 기악합주곡의 백미라는 데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를 다시 풍류 피아니스트 임동창이 서양 현악악기의 합주곡으로 되살렸다. 이미 피아노곡으로 만들어 본인이 직접 여러 차례 연주한 바 있지만 맛은 현악합주가 더 잘 어울려 보인다, 지난 주말 모악당에서 선보인 오케스트라 바람결의 '수제천'은 원곡 못지않은 감동으로 청중들 마음을 적셔주었다. 일상에 묻혀 잊었던 아주 먼 사랑의 마음을 되살려 주었다. 차분하게 스스로를 뒤돌아보게 하는 매우 소중한 감흥을 불러일으켜준 것이다.

 

이어진 피아노와 현악오케스트라의 '아주 먼 곳으로부터', '설레임', '반짝이는 슬픔' 등도 살림을 핑계로 내팽개치고 살아온 사랑, 그 살림의 정신을 되뇌게 해주었다. '효재의 꿈'을 감상하면서 많은 여성들은 "효재(한복디자이너 이효재, 임동창 부인)는 좋겠다!" 했겠지만 남성들은 주눅 들어 억지 반성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 하'는 다시 '정읍사' '수제천'의 기다림, 그 간절한 염원으로 돌아간다. 중간 일종의 피아노 카덴자 부분에서는 임동창이 자신의 끼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청중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렇게 '1300년의 사랑이야기' 연주회가 마무리되었다. 천년 시간을 초월한 사랑노래가 동서양을 넘나들며 일상에 찌들어 오그라든 우리들 사랑의 심금을 한껏 흔들어줬다. 변함없는 게 어디 사랑뿐이랴! 음악도 그렇고 그것에 취하는 우리들 마음도 그렇거늘! 문제는 그 마음을 괄호로 묶어 유보한 채 사랑도 음악도 모르쇠하는 우리들 진부한 타성에 있으리니!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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