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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 도편수 이택근]"오래오래 손때 묻히며 살고 싶은 집 짓는 게 내 일"

서른살부터 3대째 목수 가업 이어받아 / 어릴적 뛰놀던 곳 삶터로 20여채 건축·보수

▲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긴 도편수 이택근씨

날씨는 덥고 하늘은 흐린 유월의 어느 날. 꽃을 피워 올리느라 바쁜 능소화 아래에서 그를 기다렸다. 어디선가는 한창 공사를 하고 있고 손 잡은 연인들은 한가롭게 거니는 전주시 한옥마을. 할 일 없는 사람처럼 남의 집 담 밑을 몇 분쯤 서성였을까.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그가 나타났다. 일을 하다가 잠시 빠져나왔다면서 웃는 그는 한옥을 짓는 도편수 이택근 씨.

 

그가 내부 공사를 도왔다는 한 민박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마주 앉았다. 불과 몇 분 사이에 전화기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그를 찾았다.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한옥마을에 그의 손길과 발길을 기다리고 있는 집이 열 채 가까이 된단다.

 

"전주로 다시 돌아온 것은 서른 살 때였으니까 1993년 무렵부터였을 거예요. 군대를 제대하고 다른 일을 하다가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목수 일을 시작했습니다. 전주에 자리를 잡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20여 채를 새로 짓고 보수를 했어요. 목수 일을 시작한 후부터 지금까지 안 쉬고 다른 데 한눈 팔아본 적도 없어요."

 

서른 살에 한옥 짓는 일에 뛰어들었다면 그다지 빠른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어린시절부터 나무 냄새를 맡으며 자랐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목수였기 때문. 한옥마을에 자리 잡은 학인당에 그의 할아버지, 이만호 선생의 손길이 닿았다. 아버지 이존엽 선생 역시 모악산 자락에 앉은 대원사 대웅전을 중건할 때 현장 책임목수인 세화로 대물림을 했다. 이택근 씨는 3대 째 가업을 잇고 있는 것. 그런데 자세한 자료는 남아있지 않지만 그의 증조부도 목수였다고 귀띔을 해준다.

 

"근거 자료는 없지만 증조부께서도 도편수였다고 들었어요. 아직 살아계신 어르신들도 그 사실을 확인해 주시기도 했고요. 집을 짓는 것은 목수이지만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주인이니까 그 집안 어디에게 목수 이름은 남아있지가 않잖아요. 저희 조부도 마찬가지예요. 조부가 지은 집이나 사찰 같은 건물들은 남아 있지만 기록들이 없으니까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 이택근씨가 전주 한옥마을에서 건축 중인 한옥이 목재로 이루어진 골격을 갖춰 나가고 있다.

그래서 그는 서른 살이 되기 전 잠시 한눈을 팔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해군에서 제대를 하고 방파제 공사를 할 때 물 속을 평탄하게 하는 산업잠수부로 일을 하며 위도, 왕등도 등을 떠돌며 객지생활을 했다. 하지만 고향이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그리고 결국엔 목수로 그를 한옥마을에 들어 앉혔다.

 

"한벽루 옆 철길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는데 철길 터널 안에는 총알이 많이 박혀 있었습니다. 일 삼아서 그 총알을 빼내려고 용을 쓰기도 하고 승암사, 좁은 목부터 기차가 천천히 들어오면 10대 후반에서 20대 정도 되는 청년들이 달음박질해서 기차에 올라타는 것을 구경하기도 했죠. 당시엔 무임승차를 해 서울로 다녀오는 것은 흔한 일이었거든요."

 

어린 그에겐 교동 전체가 놀이터이자 앞마당이고 뒷마당이었다. 이제 이택근 씨가 뛰놀던 한옥마을이 그의 일터이자 삶터가 되었다. 그가 추억을 더듬거나 말거나 전화기는 끊이지 않고 울어댄다. 부드러운 인상에 깜빡 속을 뻔 했다. 전화기를 든 손이 나뭇등걸처럼 거칠고 투박하다. 한눈에 봐도 이 손의 주인은 부지런하고 고집스러운 사람일 것이라고 짐작이 될 만큼.

 

"처음 아버지 밑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는 밑바닥부터 단계를 밟아서 배웠지만 지금은 현장에서 직접 몸을 쓴다기 보다는 설계를 하죠. 어떤 자재를 써서 어떤 기법으로 해달라, 여기는 어떤 마감재를 쓰고 어떤 포인트를 줘라, 서까래는 어떤 기법을 써라, 감독하고 세화, 부편수 등 각 현장마다 집을 짓고 있는 책임자들이 계시죠. 그런 분들과 의견을 나누고 현장을 살피는데 하루가 가요. "

 

나무를 다루어 집짓는 일로 업을 삼은 사람을 '목수' 또는 '목장'(木匠)이라 통칭하는데, 그 가운데 문짝·반자·난간과 같은 사소한 목공을 맡아하는 소목(小木)과 구분하여 따로 대목, 또는 도편수라고 부른다고 한다. 세상이 그에게 준 직함인 셈이다. 도편수는 건물을 설계하고 공사의 감리까지 겸하는 까닭에 그의 소임이 막중한 것은 당연한 일. 좋은 나무와 재료들을 선별할 줄 아는 것이 목수의 안목이라면, 사람을 알아보는 것 또한 도편수의 소임일 터. 그와 함께 10년 넘게 일 해 온 목수들만 헤아려도 20명에 이른다.

 

"저와 같이 집을 짓는 목수들은 오랜 세월 한옥을 지어온 분들이에요. 자기 식구들 거느린 분들이죠. 모두 성품이 온화한 사람들이에요. 어느 일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집도 목수의 성품을 닮아요. 성격이 급하고 과격한 사람들은 나무를 다룰 때도 그렇게 다루거든요. 성격 급한 사람이 운전할 때 얼마 앞서 가지도 못하면서 경적만 요란하게 울려 대며 서두르기만 하잖아요. 그것과 같은 이치인 거 같아요."

 

서두르지 않고 챙겨야 할 것들을 놓치지 않는 것이 그의 일이라는 이택근 씨. 그에게 물었다. 챙겨야 할 것들은 무엇이 있느냐고. 그는 망설임 없이 답을 주었다. 제대로 된 목수는 첫 번째로 부재를 아끼면 안 되고, 두 번째는 좋은 나무를 쓰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전통 한옥의 기법이 생략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만 지으면 예쁜 집이 지어진다고 웃는다. 그래서 그는 한옥을 짓는 동안은 집주인과 똑같이 생각하려고 애쓴단다. 집을 짓는 동안만큼은 자신이 집주인이라는 여기며 일을 한다는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가 생각하는 예쁜 집에 대해.

 

"집을 짓고 나서 그 집의 주인이 생활하면서 손때가 덧입혀지는 집들이죠. 제 손에서 끝나지 않고 살면서 쓸고 닦고 기름칠도 하고 그렇게 해서 다시 작품을 만들어가는 집. 기꺼이 그렇게 하고 싶어지는 집 말입니다."

 

그가 매일 스쿠터를 타고 살피는, 공사 중인 한옥들을 둘러보다가 누마루가 한옥마을의 골목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 집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집주인과 마주쳤기 때문이었는데 그녀는 한지공예가 김희자 씨였다. 1층은 한지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두고 2층은 손님들이 머물 수 있는 민박집으로 꾸밀 계획이라고 했다. 목공예 하시는 분께 출입문에 세울 장승도 받았다며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7월에 집이 완성되면 정원을 어떻게 가꿀까 고심 중이라고도 했다. 주춧돌이 놓이고 기둥이 세워지고 집이 형태를 갖추어 갈 때마다 그녀는 앞으로 이 집 안에 들여놓을 새로운 꿈을 매일 꾼다.

 

그가 바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쉴 새 없이 전화기 너머에서 그를 찾아대고 스쿠터 하나로 한옥마을을 종횡무진 누비는 이유도 알겠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어쩌면 다른 이의 꿈이 놓일 자리에, 그들이 쌓아갈 시간 아래 주춧돌을 놓는 일인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목수는 부지런하고 성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무 향이 베어있을 것 같은 그의 손이 말해주듯이.

 

김정경 문화전문시민(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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