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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비밀]나무·흙·돌 '천연재료'로 지어 온화하고 편안

한옥은 오랫동안 소외돼 있었다. 서양식 건물에 밀리고, 좁고 추워서 살기 불편하다는 이유 등으로 우리 주거 문화의 중심에서 멀어져갔던 것이다. 하지만 전주 한옥마을 등과 같이 버림받고 있던 한옥이 전국 곳곳에서 새롭게 되살아나고 있다. 한옥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고 한옥 본래의 좋은 점을 살릴 수 있다면, 한옥은 한국인의 삶과 정서를 담는 공간으로 새롭게 와 닿을 수 있다.

 

"전통적인 한옥은 천연재료로만 짓습니다. 기본 골격인 나무에서부터, 흙과 돌 또한 자연물입니다. 벽과 바닥에 사용되는 석회 또한 자연에서 얻은 것이고 섬유질이 풍부한 다시마를 첨가해 갈라지지 않게 하는 것 또한 자연이 준 재료의 성질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고요."

 

이택근씨의 설명은 더 나아간다. 황토, 창호지, 구들, 콩댐(나무에 콩기름을 먹이는 것) 등으로 구성되는 한옥은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새집 증후군' 과도 거리가 멀다. 못 하나 쓰지 않고 돌 위에 그냥 얹은 기둥이 그렇고 그 위에 짜임으로 올라가는 부재(구조물의 뼈대를 이루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는 여러 가지 재료)들 또한 자연에서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도편수 이택근 씨가 설계한 어느 집 마당에는 채송화가 피었고 또 다른 집의 뒷마당에는 자귀나무가 꽃을 틔우고 있었다. 아직까지 낮잠을 자는지 꽃소식 잠잠한 배롱나무 가지 사이로 하늘을 향해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처마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도 한옥의 비밀이 숨어있다. 처마와 처마가 일정한 각도로 만나는 부분에 경계를 이루듯이 추녀 위에서 양쪽 지붕이 만나면서 생기는 선을 추녀마루라고 한다. 이 추녀와 추녀마루의 곡선이 물매라는 과정을 통해서 결정이 난다는 것. 지붕이 기울어진 정도를 물매라고 하는데 나무의 작은 조각들과 황토 등을 섞은 적심(피죽이라고도 함)으로 강회다짐이 등의 여러 과정을 거친 다음에 기와가 올라가야 물매가 완성이 된다고 한다.

 

"요즘 새로 지어지는 한옥들을 보면 난방에 대한 걱정 때문에 마감할 때 이 과정에서 흙이 들어가지 않고 보온단열재가 들어가고, 현대식 자재가 들어가요. 생략되는 건 이것만이 아니에요. 전통 기법으로 벽을 만들면 황토 벽돌을 쌓거나 대나무 등 나무를 엮고 흙을 발라서 세우는데 이것을 욋대를 엮는다고 해요. 이 욋대를 엮는 과정은 번거롭고 어려워도 벽을 여러 겹 쌓고 마감을 하는 거니까 단열에도 도움이 되고요."

 

추울 때 하나 입는 것보다는 여러 겹을 입는 게 더 따뜻한 것과 같은 원리라고 덧붙인다. 자식 자랑하는 아버지처럼 이곳저곳으로 이끌던 그가 이 대목에선 목소리가 바뀐다.

 

"건축비를 줄이기 위해 한옥의 전통기법들이 생략되고 과정이 지나치게 단순화 되는 것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바람직하지 않아요."

 

그가 최대한 전통방식을 따르고자 하는 이유는 사람 때문이다. 한옥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옛사람의 숨결을 제대로 느끼고 가기를 바라는 마음. 그가 지은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이 자연을 누렸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택근 씨는 자신이 세운 원칙 안에서 충분히 자유롭다.

 

"한옥마을에 현재 12평 정도 되는 집을 하나 짓고 있어요. 그 작은 규모로 무슨 집이 되겠느냐고 의문을 품겠지만 교동에서는 드문 맞배지붕을 올렸어요. 대지가 극히 제한적인 지역에서는 효율적인 건축구조라 생각했거든요."

 

한옥은 기와집과 맞배집, 우진각집이 대부분이지만, 너와집, 굴피집, 귀틀집, 움집 등 여러 가지 지붕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교동지역은 팔작지붕을 선호한다는 것. 대지의 협소함이나 건축구조의 다양함 등을 생각했을 때 여러 가지의 건축기법을 통해서 다양한 구조의 한옥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저는 똑같은 집을 짓지 않아요. 방을 줄이고 아파트의 베란다처럼 누마루를 만든달지, 'ㄷ'자형의 집을 짓는 달지, 전통기법을 활용해서 집마다 특별한 것들을 하나씩은 넣으려고 노력합니다. 전통기법을 따르되 표현은 자유롭게 하자는 거죠. 우리 조상들도 그랬어요. 휘어진 나무들을 그대로 사용해서 기둥으로 쓰기도 하고 다른 부재로 활용을 해왔거든요. 요즘 사람들의 사고가 자유분방하다고 하지만 그런 면에서 보면 조상들이 훨씬 더 자유로웠죠. "

 

그와 내가 앉아 있는 대청마루 위로 바람이 지나간다. 비 오는 날 마루에 앉아 마당으로 떨어지는 처마 끝 빗소리가 좋다는 그를 어디선가 또 찾는 모양이다. 그가 타고 온 스쿠터 앞에서 선 채로 인사를 나눴다. 목수들의 손길이 다시 바빠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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