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2-28 22:26 (Su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일반기사

천하 맹인이 눈을 뜬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역시 눈뜨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기다림의 조바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눈을 뜨는 일 자체도 그렇지만 그 감동의 순간을 맛보기 위해서도 일정한 초조의 통과의례를 거처야 한다.

 

지난 주말 전주한옥마을 소리문화관에서 펼쳐진 마당창극 〈천하 맹인이 눈을 뜬다〉가 똑 그렇다, 하루 종일 말짱하던 하늘이 행사시간이 다가오면서 갑자기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아열대성 폭우가 꽤 길게, 관계자들 애간장 녹이기에 충분할 만큼 쏟아졌다. 모처럼 별러 예매를 한 사람들도, '내가 보면 한국축구도 꼭 진다니까!' 해묵은 징크스를 떠올릴 만큼 지루하게 하필 마른장마 끝의 비가 행사를 코앞에 두고 추적거렸다.

 

그리고 소리문화관 앞에서의 긴 줄서기! 입장을 하고도 잔치음식을 위한 더딘 기다림은 계속되고.... 그 기다림 속에서도 나누어준 우의를 입어야 할까 말까 고민을 반복해야 할 만큼 날씨는 참 얄궂었다.

 

그러나 공연이 시작되면서 마음의 구름이 홀연 걷히기 시작했다! 진행자의 맛깔스런 재담과 신명난 풍물과 춤의 '여는 마당'은 하늘의 구름마저 저 멀리로 걷어내 버렸다. 기실 무대에 빼앗겨 눈 줄 틈이 없었다. 이어지는 한옥 대청문을 배경으로 한 영상. 우리 한지문이 저렇게 멋들어지게 쓰일 수도 있구나! 감탄도 잠시, 연못가 정자에 나타난 심황후의 탄식과 설렘에 우리는 또 넋을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재담과 해학의 놀이판. 참 거시기한 속셈의 뺑덕와 황봉사, 껄쩍지근함을 떨칠 수 없는 심맹인의 넉살스런 연기에 정신 줄 놓고 웃다가, '아니 연기도 좋지만 천하 명창들이 저렇게 망가져도 되나?' 걱정이 앞선다! 아무래도 미심쩍어 확인을 해보는데 틀림이 없다. 저 넉살좋은 황봉사 역은 전주대사습 장원에 빛나는 이순단명창이 맡았고 개그맨 뺨치는 연기로 뺑덕의 존재감을 당당히 뽐내는 이 역시 대통령상에 빛나는 김성예명창! 역시 프로구나! 맹인들이 눈을 뜨기도 전에 이미 그들 진정한 프로 명창들의 열정 세계에 눈을 뜨고 말았다.

 

그 다음 눈 뜨는 대목이야 무슨 객설을 더하랴? 왕기석명창의 땀을 뻘뻘 흘리는 열창이나 박애리명창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건만 또 숨을 죽이고 한숨을 쉬다가 눈물까지 찔끔거렸으니 맹인 눈뜨는 데 부조는 제대로 한 것! 더불어 마당창극과 판소리 그리고 한옥마을의 매력에 다시금 눈을 뜨게 되었으니, 심봉사 덕에 우리 모두 개평으로 눈을 뜬 것이렸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