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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으로 만나는 익산의 역사문물 ⑥ 미륵사지 서탑 사리갖춤 VS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갖춤

미륵사지 서탑-왕궁리 오층석탑 구성방법·무늬 동일…형태 달라

2009년 1월 14일 익산 미륵사지 서탑 해체조사 현장에서는 탄성이 터졌다. 639년 백제의 왕후가 가람을 창건하고 탑을 조성하였다는 내용이 새겨진 사리봉영기와 사리를 봉안한 사리호 외에도 다양한 공양품들이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이었다.

 

이 사리갖춤과 공양품의 발견 이후 국립전주박물관의 대표적인 전시품인 왕궁리 오층석탑 출토 사리갖춤의 조성시기가 삼국시대 백제라는 견해들이 제시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주장이 정말로 타당한가를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두 사리갖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두 사리갖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좀 더 명확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미륵사지 서탑 사리갖춤이 봉안되기 62년 전인 577년에 봉안된 부여 왕흥사지 사리갖춤과 43년 후인 682년에 봉안된 감은사지 삼층석탑 사리갖춤을 함께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왕흥사지 출토 사리갖춤이 금제사리내호-은제사리외호-동제사리외함 순으로 중첩시킨 것과 달리, 왕궁리 오층석탑과 미륵사지 석탑 사리갖춤은 유리사리병-금제사리내함(호)-금동사리외함(호)의 순으로 중첩시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구조는 금동전각형사리기-금동외함으로 구성된 감은사지 삼층석탑 사리갖춤과도 다른 것이다.

 

미륵사지 서탑 사리갖춤의 사리내·외호는 비슷한 형태인데, 어깨 부분이 넓고 목이 길며 주둥이가 넓은 병 형태이다. 이러한 미륵사지 석탑 사리내·외호의 형태는 위덕왕 재위 때인 577년에 봉안된 왕흥사지 사리내·외호의 전통을 이은 것으로 보인다. 반면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내함은 감은사지 삼층석탑 사리외함과 같은 상자형이다.

 

사리기 표면을 장식한 무늬를 살펴보면, 미륵사지 서탑 사리갖춤의 내·외호와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갖춤의 내함에는 연꽃무늬와 넝쿨무늬가 결합된 것과 함께 구슬무늬가 공통적으로 시문되어 있다. 특히 미륵사지 서탑 사리갖춤 금동외호 아랫부분에 연속된 연꽃무늬와 넝쿨무늬를 한 부분만 떼어서 본다면,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갖춤의 장식 무늬와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왕흥사지 사리기의 경우에는 별다른 무늬가 없고, 감은사지 삼층석탑 사리기에는 연꽃무늬나 구슬무늬가 없이 전면에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이처럼 미륵사지 서탑 사리갖춤과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갖춤은 구성 방법, 무늬 등에서는 동일하지만 형태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미륵사지 서탑 사리갖춤이 6세기 말의 전통이 강한 반면,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갖춤은 7세기의 새로운 경향을 살펴볼 수 있어 미륵사지 서탑 사리갖춤보다는 늦은 의자왕대에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진정환(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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