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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 사랑 노래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저녁식사 마치고 산책 가려는데 대나무숲 넘어 뒷산에서 묘한 소리가 들린다. 처음엔 올무에 걸린 짐승의 울부짖음 정도로 가볍게 여겼다. 그런데 소리가 계속될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음절을 느낄 수 있게 들린다. 미친 사람의 비명? 아니면 한 많은 세상 정리하겠다고 농약을 마셔버린 사람의 단말마? “의웩 의웩!” 참 기분 나쁘다. 을씨년스럽다. 어둠속에서 들려오니 두렵기조차 하다.

 

몇 번을 망설이다 마침 떠나려고 짐을 챙기고 있던 아내에게 밖에 나가 들어보라고 권한다. 이제까지 가능하면 시골에서 접할 수 있는 무섭거나 혐오스러운 것들 감추어왔었다. 목욕하고 닦으려 하는데 수건에 붙어 있다가 몸으로 떨어져 기어가던 지네, 누마루에 니은 자로 똬리를 틀고 앉아있던 구렁이 이야기, 남들에게는 자랑삼아(?) 해댔지만 아내에게만은 숨겼었다. 그렇지 않아도 꺼리는 시골생활 더 두려워할까 봐. 그런데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이내 아내도 듣게 될 것이고 또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확인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내의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둘이 몇 번을 들락날락 참고 견디다가 결국 지구대로 신고. 마침 순찰을 나간 경찰과 위치확인을 위해 휴대전화를 통해 잠시 옥신각신. 드디어 순찰차 도착. 그런데 묘한 것은 이럴 때면 내내 들리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거. 이럴까봐 한참을 나름으로 참다가 전화를 한 것인데 장난전화처럼 되고 말았다. 전화로 정보 주고받을 때까지만 해도 분명 들렸는데 순찰차 전조등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들리지 않는다. 의사 선생님 앞에만 가면 아픈 곳이 이내 사라지고 마는 것처럼!

 

별수 없이 직접 흉내를 내보는데 “의웩 의웩!” “고라니네! 흉내 잘 내시네!” 요즘이 번식기인데 그게 짝을 부르는 소리란다. “그런데 여기가 고향 맞아요? 고라니를 모르다니.” 왜 몰라! 그 노룬가 사슴과엔가 속하는 귀염둥이. 송곳니가 어색해 보이기도 하는, 멧돼지와 더불어 요즘 밭작물 해치는 말썽장이로도 유명하고, 갑자기 도로로 뛰어들어 교통사고를 유발하기도 하는 그 녀석. 차에 친 처참한 모습도 보았고 산책하다 느닷없이 만나 놀라기도 했지.

 

그런데 이 괴상망측한 소리는 처음이다. 그렇게 귀엽게 생긴 것이 그런 끔찍한 소리를 내다니. 그것도 그렇게 처절하게! 아 사랑의 무서운 힘이라니! 아들 또래쯤 되어 보이는 경찰한테 들은 핀잔 아닌 핀잔을 이렇게 무질러본다. 이래저래 시골 살림 녹녹치 않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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