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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잃어버린 감정을 찾아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들뜨는 감정 말라버려 사소한 소통으로 발견

▲ 김주희 토요문화학교 코디네이터
직장에서 기획회의를 할 때면, 편하게 아이디어를 끄집어낼 수 있도록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이야기에서 시작하곤 한다. 이번에 기획하게 된 행사는 처음 만나는 활동가들과 진행하는 오리엔테이션이었다. 첫 대면에서의 어색하고 불편한 자기소개를 대신해서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도 두 가지 사소한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요즈음 당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요즈음 당신을 가장 설레게 하는 것은?’

 

사소함 속에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큰 힘이 있었다. 요즈음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동안은, 처음 만나는 이들 앞인데도 목소리가 떨리고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하지만 20대이건 40대이건, 꿈에 대한 고민과 내면의 성장 과정 속에서 일상을 보내느라 비슷한 무게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저, 고민을 나누는 동안만은 나만 외로운 게 아니구나,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며, 어쩌면 잔인한 공감대 속에서 마음이 모아지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마음속에서 꺼내어 놓는 그 자체만으로, 그리고 그 이야기를 향해 몸을 기울여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는 느낌이랄까? 그랬구나, 그럴 때가 있지, 그래 힘들었겠다. 주거니 받거니 서로의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한 가지 질문으로 오랜 시간 열띤 수다를 떨다가, 두 번째 질문으로 화두를 옮겼다. 그런데 멀뚱멀뚱,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아까의 성토대회 분위기는 어디로 갔는지, 최근의 사건들 속에서 ‘설렘’의 감정을 찾아내느라 모두의 머릿속이 분주한 듯 했다. 즐겁고, 기쁘고, 보람찬 감정들이야 수시로 감정 선을 드나들며 살고 있지만, 설렘이라는 감정은 글쎄…. 첫사랑에게 다시 연락이라도 온다면 모를까 한참을 생각해도 당최 기억이 안 난다. 잃어버린 감정을 찾아야 했다.

 

당황해하는 서로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버린 우리는, 더듬더듬 설렘의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치킨을 주문해놓고 현관문 벨소리가 울리길 기다리는 그 30여분, 육아로 잠시 휴직했다가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된 어느 주부의 출근시간, 졸업하고 다시 만난 선후배들, 여행을 떠나기 전날 미리 예매해놓은 버스 티켓 등등.

 

일상에서 우리가 설렘의 감정에 너무나 무뎌져 있었던 탓일까. 긴장감과 설렘이 가끔 혼동될 때도 있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그 감정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들여다보면 우리들의 일상 속에는 너무나 많은 설렘들이 손을 흔들며 스쳐가고 있었지만, 둔감한 우리가 인사조차 못했던 것이리라.

 

화나고, 우울하고, 슬프고, 무기력한 감정은 홍수처럼 일상에 차고 넘치는데, 반대로 설레거나 짜릿하거나 들뜨는 감정은 바닥이 쩍쩍 갈라지도록 메말라버렸다.

 

그래서 우리 입에서 토해내는 말들도 늘 ‘짜증나, 힘들어, 못하겠어.’로 걸러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화나고 슬픈 감정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감정의 표현 방식에 문제가 있지 싶다. 어떤 감정이든 내 안에서의 분출을 목적으로 하기 보다는, 타인과의 ‘공감’을 먼저 생각하면 좀 더 쉬워질 수 있다.

 

요즈음 당신을 가장 설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필자의 질문에 갑자기 머리가 멍- 해진다면, 지금 당장 이 질문을 주제로 옆 사람과의 수다를 권하고 싶다. 답답하고 뻔하게 반복됐던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수만 가지 감정들이, 사소하고 작은 소통 속에서 낮선 두근거림으로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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