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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갑연 외 '인문고전읽기'] 동서양 아우른 13편의 고전 인문학 가치 찾아내다

   
 

인문학의 위기! 신물 나게 들어본 소리이지만, 언제 인문학이 위기가 아닌 적이 있었던가? 그렇다면 인문학은 무엇인가? 필자는 인문학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삶에 궁극적인 문제를 던지고 다양한 출구를 통하여 그것을 해소하는 과정과 관련된 학문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에는 결정된 답이 없다. 인문학이 인간의 삶에 관한 궁극적인 성찰과 해소에 관한 활동이라면 인문학은 몇 권의 인문학 서적을 읽고서 그것과 관련된 정보나 지식을 습득하는 교양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되고 자신의 일상적인 삶에 그것을 적용해보고 문제 해결에 다양한 출구를 스스로 제시하였을 때 인문학의 가치가 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전북대 출판문화원에서 출간한 〈인문고전읽기〉는 전북대 인문대학 재직 교수와 강의전담교수 13인에 의해 저술된 교양강의 교재이다. 흔히 고전에 인생의 답이 있다고 하지만, 절대 한 권의 고전으로서는 만족할 수 있는 답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몇 권에서 찾아야 하는가? 이는 숫자 놀음이 아니다.

 

〈인문고전읽기〉는 한 학기 강의 분량에 맞추어 저술되었기 때문에 소개된 고전이 많지는 않다. 동서양 고전을 6대 7로 구성하여 철학과 문학을 위주로 총 13권의 고전을 소개하였다. 모든 고전 소개에 동일한 형식을 제시하였다.

 

우선 강의교재이기 때문에 학습목표를 소개하고, 다음 주요 용어·작가의 생애와 시대배경·텍스트해제·더 읽어 볼 거리·더 생각해 볼 거리·참고문헌 순으로 소개하였다. 텍스트해제에서 고전의 중핵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만을 보아도 그 고전의 핵심 내용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소개된 고전은 다음과 같다. 〈맹자〉(맹자)·〈채근담〉(홍자성)·〈오디세이아〉(호메로스)·〈소크라테스의 변론〉(플라톤)·〈하이쿠 기행〉(바쇼)·〈당시 삼백수〉(손수)·〈태평천하〉(채만식)·〈삼국연의〉(나관중)·〈돈키호테〉(세르반테스)·〈햄릿〉(셰익스피어)·〈젊은 베르터의 고통〉(괴테)·〈변신〉(카프카)·〈이방인〉(카뮈).

 

1학기 강의 직후 강의만족도 설문조사를 해보니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가장 인기가 높은 고전은 그리이스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귀향 모험기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였다. 그런데 오디세이아에 관한 이해 수준은 가장 낮았다. 왜 그럴까? 만화 그리이스 로마 신화의 영향 때문인 것 같다.

 

만화로 그려진 그리이스 로마 신화는 재미있지만, 신화 속에 내재된 서양인들의 가치관에 대해서는 올바르게 파악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우선 오디세이아에는 아레테(arete), 즉 덕이라는 개념이 출현하는데, 일반적으로 동양인들이 갖고 있는 개념과는 상당히 다르다. 아레테는 인간뿐만 아니라 사물 일반의 훌륭한 혹은 좋은 상태를 의미한다. 훌륭한 전투 기능을 발휘하는 전사도 덕을 갖춘 사람이고, 직물을 잘 짜는 사람도 역시 덕을 갖춘 사람이다. 이러한 덕을 통하여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담당하는 사람이 바로 영웅인 것이다.

 

다음으로 학생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던 작품은 바쇼의 하이쿠였다. 하이쿠는 일본어 5,7,5음의 총 17음으로 된 일본의 정형 서정시이다. 가장 짧은 시이지만, 단순하고 쉬우면서도 계절과 감정 그리고 풍물 등을 간결하게 묘사한다. 이러한 하이쿠는 우리말에도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로는 더욱 짧게 묘사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통하여 학생들의 어휘 사용능력을 제고할 수도 있다.

 

가장 비인기 고전은 〈당시 삼백수〉였는데, 원인은 딱 한 가지이다. 즉 한자의 고통 때문이다. 사실 한자는 인문학의 전유물로 생각하지만, 자연과학과 너무나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과학의 원리와 법칙은 모두 한자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한자의 의미만 알고 있어도 자연과학의 원리와 법칙의 개괄적인 의미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크라테스의 변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인문고전읽기〉에서는 ‘변명’ 대신에 ‘변론’으로 수정하였다. 변명은 사실관계를 회피하는 인상을 주지만,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자신에게 제기된 고발과 고소인 그리고 아테네 시민들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삶과 철학을 개진하면서 자신에게 부과된 죄목들을 하나하나 반박하였다. 따라서 당연히 변명이 아니라 변론이어야 한다. 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작품도 이곳에서는 〈젊은 베르터의 고통〉으로 표기하였다.

 

사실 고전은 현대 우리의 삶과 결코 격리되지 않았다. 진리와 가치는 본래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맹자의 교우 관계를 보면 이점을 바로 알 수 있다. 맹자는 당시 천하에서 교우할만한 사람을 찾지 못하면 옛사람의 서적으로 통하여 그와 교우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을 맹자는 상우(尙友)라고 하였다. 이처럼 고전은 우리의 가까운 벗의 교훈 혹은 인생담인 것이다.

 

필자는 고전을 읽으면서 해석의 적부(適否) 문제에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음을 강조하고 싶다. 동양고전만을 보더라도 학술회의장에서 오역 문제로 가끔 다투기도 하지만, 이는 전문학자 혹은 주석(註釋)쟁이의 몫이고, 고전에서 독특하게 계발 받은 것이 있다면 그것이 고전에 대한 자신의 이해인 것이다. 물론 바뀔 수는 있지만,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자신과 고전이 그 방식에 따라서 교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전의 매력이다.

   

△대표 집필자인 황갑연 교수는 중국유가철학을 전공한 전북대 철학과 교수다. 한국양명학회 회장과 전라문화연구소장을 지냈으며, 전북대출판문화원장 보직을 맡고 있다. 〈동양철학과 문자학〉 〈공맹철학의 발전〉 등의 저서와, 〈심체와 성체(心體與性體)〉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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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용 kimwy@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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