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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김수영을 읽으며

 

“역사(歷史)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追憶)이/ 있는 한 인간(人間)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신동엽 시인과는 대조적으로 서구모더니즘에 경도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김수영 시인은 우리의 역사와 전통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토로한 바 있다

 

물론 여기서 시인이 더러운 역사와 전통을 그 자체로 좋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리라. 사회의 발전은 역사와 전통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역사의 뿌리가 없으면 진정성도 없고 진실 없는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전통이 없으면 지붕위의 바이올리니스트처럼 위태롭다.”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을 때 그 위에서 문화가 싹트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사랑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역사와 전통을 아끼는 ‘반동’으로 잠시 주목을 받고 있는 전주지역에 어느새 불온한 역풍의 징후가 도저하다. 이제 그만큼 했으면 됐다는. 세상이 급변하고 있는데 아직도 전통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한물 간줄 알았던 유행가 가락이 다시 들려오고 있다. 잘난 외국인 전문가들 모셔다 놓고 “전통에 매달려야 하나? 새로운 흐름에 힘을 실어야 하나?” 그들 듣기에는 해괴한 질문을 해대면서. 전통과 역사의 단절을 겪어보지 못한 그들에게는 현재 ‘노는 물’이 역사요 전통이다. 그러니 기왕의 ‘노는 물’을 새삼 챙길 필요가 없다. 전통에 연연하지 말라고 쉽게 권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창씨개명에까지 이른 철두철미한 일제식민통치와 미군정 반세기를 겪으면서 우리의 뿌리가 무엇인지 다 잊었고 잃어버렸다. 학문이나 공부에서도 성균관, 향교, 서원 그 어느 맥도 잇지 못했다. 아니 그곳이 무엇 하던 곳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 땅의 학생이요 교사요 교수다. 음악이나 미술 분야도 마찬가지고 문학에서조차 그 전통이 개화기를 넘지 못한다. 농민혁명조차 쿠데타로 이어받지 않았던가? 그들의 고상한 조언을 액면 그대로 수용할 수 없는 까닭이다.

 

아직은 반동이 더 필요할 때다. “내 땅에 뿌리박은 거대한 뿌리”의 전통을 확인할 때까지는. 그 뿌리의 기운을 조금이나마 빨아들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때까지는, 그나마 전통문화의 명맥이라도 희미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는 이 지역에서는 특히나 더. 그래야 그것을 터 삼아 혁신이든 창조든 융합이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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