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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마고의 주민 헌장

‘팔지 않는다. 빌려주지 않는다. 부수지 않는다.’ 일본 중부 나가노현에 있는 작은 마을 ‘쯔마고(妻籠)’이 내건 구호다. 쯔마고는 에도시대, 교토에서 도쿄를 잇는 나가센도(中山道)에 형성된 여관마을이다. 나가센도는 전체 길이가 530km에 이르는데, 그 사이에 역의 기능을 하는 69개의 마을이 만들어졌다. 자연히 사람들이 묵어갈 수 있는 여관이 마을마다 많이 생겨나게 되어 사람들은 이 마을들을 역참마을, 혹은 여관마을이라고 불렀다.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더러는 없어지고 더러는 옛 모습을 잃었지만, 이중 6개 마을이 ‘중요전통적건조물보존지구’로 지정되어있다. 그만큼 보존이 잘되어 있다는 증거다. 그중에서도 쯔마고는 최고로 꼽히는 마을이다. 1601년에 조성되었다고 하니 마을의 역사는 400년을 넘어선다.

 

한두 시간 돌아보면 족할 정도로 마을은 아주 작지만, 이 마을을 지켜낸 주민들의 열정이 예사롭지 않다. 그 결실은 마을의 역사를 온전히 만날 수 있는 마을자료관에도 있다. 자료관은 역이었던 ‘쯔마고혼진(妻籠宿本陳)’을 복원한 공간이다. 흑백사진이나 민속자료는 대부분 1960년대부터의 것이지만 마을의 오랜 역사는 영상을 비롯한 다양한 기록으로 만날 수 있다.

 

알려지기로는 쯔마고가 오늘의 모습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마을의 민속자료를 수집하던 ‘쯔마고를 사랑하는 모임’의 활동 덕분이다. 쯔마고 주민들은 1971년 ‘주민헌장’을 제정하고 ‘팔지 않고 빌려주지 않고 부수지 않는다’는 구호를 만들었다. 이 모임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위원회의 역할도 흥미롭다. 식당위원회, 숙박위원회 등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위원회가 있는가 하면, 건축물 보존을 위한 ‘통제위원회’나 행사와 축제를 관리하는 ‘문화위원회’도 있다. 주민 스스로 다양한 규약을 만들어 지키며 마을을 보존해낸 사례는 일본 안에서도 시민운동의 모범으로 꼽힌다.

 

일본 정부는 1976년 쯔마고를 보존지구로 지정했다. 일본의 첫 지정마을이다. 지정구역도 마을 공간 뿐 아니라 주변부를 포함시켜 그 넓이가 1,2454ha나 된다. 쯔마고는 1983년 보존재단을 설립해 더 적극적으로 마을 보존 활동을 해오고 있다.

 

지난 7월에 찾아간 작은 여관마을은 아름다웠다. 시간이 멈춘 듯, 에도시대 건축물이 이어지는 마을 곳곳에서는 쯔마고 주민들의 의지가 빛났다. 허투루 지나칠 수 없는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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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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