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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음악]음악문화 전달자이자 창조자인 집시

인도·중동·유럽 등 이동…주로 기타 사용 '플라멩코' 탄생 / 각 지역서 음악 변형 발전…2010년 '티티로빈' 팀 그리워

▲ 집시밴드 음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다뉴브강변의 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을 때였다. ‘젊은 포수가 깊은 산 속에서 잡은 큰 토끼의 앞다리 살’이라는 기다란 이름의 지비에(gibier) 요리를 기다리며 레스토랑 앞쪽 무대에서 집시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요리가 나온 뒤 와인 몇 잔과 지비에를 반쯤 먹었을 즈음에 집시(Gypsy)밴드가 테이블 앞에서 연주했다. 중년의 잘생긴 바이올린 연주자의 현란한 연주에 넋을 잃었다. 레스토랑을 나갈 때 계산대에서 그 집시밴드의 CD 몇 장을 구입했다. 나중에 보니 헝가리 최고의 집시밴드 연주를 코앞에서 라이브(live)로 들었던 것이었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에 있는 말라가, 이 해변의 깊숙한 골목길에 위치한 작은 플라멩코(flamenco)클럽을 찾았다. 세비야나 마드리드의 큰 공연장에서 관람했던 쇼적인 플라멩코 말고 진정한 집시 플라멩코 공연을 보고 싶어 물어물어 찾은 공연장의 맨 앞줄. 바로 앞에서 검은 무용복을 입은 남녀 무용수의 비장한 얼굴 표정과 엄숙하면서도 격렬한 몸짓의 춤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날 밤의 전율스런 플라멩코 연주와 춤은 지금도 매우 생생하다.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 네바(Neva) 강 위의 유람선. 강변의 유명한 건축물과 풍경을 설명하던 40대의 남자 가이드가 노래를 부른다. 웅장한 저음의 목소리로 애잔한 집시음악의 선율을 무반주로 노래하는데 붉은 노을에 물든 강물을 바라보면서 감격해했다.

필자가 경험한 세 곳의 유럽 풍경은 모두 집시의 후예이거나 영향을 받은 연주자다. 집시는 일찍이 유럽전역에 그들의 음악적 DNA가 가득 찬 씨앗을 고루 뿌렸다. 인도 북서부에서 유랑의 길을 떠났던 집시는 중동을 거쳐 유럽의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다. 타고난 음악적 재능과 끼를 지니고 있는 집시들은 떠돌며 곳곳의 음악적 자양분을 축적했고 전달했다. 중동에서 다시 유럽으로 이동한 이들은 스페인에서 기타를 주로 사용하는 연주와 춤, 노래를 발전시킨 플라멩코를 탄생시켰다. 동유럽에서는 바이올린, 발칸반도에서는 금관악기, 러시아에서는 성악을 주축으로 그 지역의 음악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집시음악을 변형 발전시켜 나갔다.

이처럼 전달자(Messenger)이면서 창조자(Creater)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던 집시의 음악적 재능은 정말 뛰어나다. 중동이든 유럽이든 나라의 집시음악을 들어보면 느낌은 조금씩 다르지만 ‘아, 이것은 집시음악이구나!’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들이 새로운 음악문화를 수용하면서도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올곧게 지켰기 때문에 가능했다.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는 그동안 다양한 집시음악을 소개해왔다. 그 중에서 지난 2010년 축제 때 초청한 프랑스 집시기타 연주자 티티로빈(TiTi Robin)이 잊히지 않는다. 영국의 BBC 월드뮤직 프로그램에서는 티티로빈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인이며 선지자 중 한 사람’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유럽에서는 잘 알려졌다. 그는 각 지역의 다양한 집시음악을 연주했다. 중동의 집시음악은 ‘우드(oud)’라는 아랍 전통악기로 진지하고 품격 있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티티로빈은 다른 집시음악 연주자와는 다른 차원의 아카데믹하면서도 수준 높은 연주로 한국의 집시음악 마니아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다. 올해는 아쉽게도 소리축제에 집시음악 연주팀이 보이지 않아 티티로빈(TiTi Robin)이 더욱 그리워진다.

▲ 채광석 음악여행가

※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 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 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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