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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북무형문화재 추가 지정 3인 - ③승무 문정근 명인

교사 그만두고 무용의 길로 / 2004년 전라삼현승무 복원 / 불교 범패작법 예술화 고민 / 궁중무용 '정재' 연구 열망도

▲ 손목에 압박 붕대를 두른 채 연습에 열중인 문정근 명인.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니 왼쪽 손목에 감긴 베이지색 압박 붕대가 눈에 띄었다. 많이 아프시냐고 물었더니 왼쪽 무릎을 내민다. 그러자 이번에는 몇 곱절은 큰 파란색 압박 붕대가 눈앞에 나타난다.

 

무슨 소리를 들어도 거슬리지 않는다는 이순(耳順)을 넘긴 나이였다. 그러나 전북무형문화재 제52호 전라삼현승무 보유자 문정근(61) 명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세월의 흔적은 손목과 무릎에 자리한 압박 붕대뿐이었다.

 

그는 지금도 무대에 서고 싶다. 한 작품을 끝내고 무대에서 내려오면 다음 작품을 구상한다. 늘 연구하고 공부한다. 그래서 혹자는 그를 ‘공부하는 무용인’이라고 칭한다.

 

그는 옅게 웃으며 말했다. “이게 문제예요. 자꾸 머릿속에 춤이 떠올라요.”

 

최근에는 불교 의식에서 재를 올릴 때 부르는 노래와 춤을 뜻하는 ‘범패 작법’의 예술화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불교예술의 의식무를 오늘날에 맞게 풀어내 무대예술로 승화하고자 하는 의도. 또 궁중무용인 ‘궁중 정재’는 왕을 대상으로 대궐 안의 잔치 때 벌이던 춤과 노래였지만, 이제는 국민을 대상으로 선보이는 궁중 정재에 대해 연구하고 싶은 열망을 갖고 있다.

 

그가 복원한 ‘전라삼현승무’도 전북의 독특한 음색과 춤사위를 전승하고 싶은 연구 정신의 결과물이다. 2001년부터 시도한 전라삼현승무 복원 작업은 2004년께 재현됐다.

 

전라삼현승무란 관아에서 하던 삼현(거문고, 가야금, 향비파)인 전주 농삼현을 반주 음악으로 사용해 미적 감각을 표출하는 춤사위를 말한다. 춤 동작은 투박하고, 속세를 내려다보면서 번뇌하는 파계승의 느낌이 강하게 묻어난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대부분의 승무 반주 음악은 경기 삼현음악을 쓰고 있지만, 전북의 승무는 전라 삼현음악을 사용해 다른 승무들과 판이한 차이를 지닌다.

 

그의 전라삼현승무는 역사적인 측면에서 정자선, 정형인, 정소산, 박금슬의 계보를 잇고 있다. 그는 1977년 박금슬 선생에게 승무와 살풀이를 기본으로 많은 춤사위를 배웠다. 2002년에는 제27호 승무(이매방) 이수자가 돼 폭넓게 활동했다.

 

춤을 추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고 말하는 그에게 춤은 인연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무용을 시작했지만 전주교육대에 입학해야 했다. 1975년부터 7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지만 끝내 무용의 뜻을 버리지 못했다. 이후 한성대 무용과를 졸업하고, 경희대 대학원 무용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본격적인 무용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25년간 국립국악원 무용단원을 비롯해 서울시립무용단, 전북도립국악원 무용단 상임안무자, 국립무용단 지도위원, 전북도립국악원 무용단장 등을 거쳤다.

 

“최고의 선생님들 밑에서 공부할 수 있는 축복을 받았어요. 스승님들은 전통이란 삶의 필요에 따라 변하는 것이라 가르쳐주셨죠. 이제는 제가 전라삼현승무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전북 전통 예술에 대한 학술 연구 자료를 축적할 차례에요. 정서나 내용을 변질하지 않고 많은 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무대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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