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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마사

갑오년 말띠해가 저물고 열흘 후면 을미년 양띠해다. 말은 진취적이고, 활동적이다. 양은 조용하고 차분하며 내성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연말을 맞아 지나온 1년을 뒤돌아보며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

 

갑오년 말띠해가 저무는 길목인지라 말과 관련된 사자성어가 눈길을 끈다. 우생마사(牛生馬死)다. 소와 말은 물에 빠져도 헤엄을 쳐서 뭍으로 나올 줄 안다. 실제로 저수지에 빠진 소와 말은 헤엄쳐 나오는데, 말이 소보다 훨씬 빠르게 헤엄쳐 나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말은 땅에서 뿐 아니라 물 속에서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다리를 움직여 물살을 헤치는 능력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급류가 형성된 강에 빠진 상황에서는 수영선수 말의 생존을 장담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폭우가 쏟아져 물이 크게 불어나면 소나 말도 강물에 휩쓸린다. 재주가 많은 사람도 휩쓸려 익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나 말은 익사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이 되면 소는 살지만 말은 죽는다는 것이 우생마사 이야기다.

 

물속에서 헤엄을 잘 치는 말이 급류에서 익사하는 이유는 말의 그릇된 판단 때문이다. 수영을 잘하는 말은 물살에 떠밀리지 않기 위해 네 발을 마구 저으며 물살을 벗어나려고 한다. 그런데 그 방향이 문제다. 물을 거슬러 헤엄을 치는 것이다. 물살이 약한 상황이라면 문제없이 거슬러 올라가겠지만, 급류에 빠진 말은 약간의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제자리를 맴돌 뿐이라고 한다. 결국 탈진해 익사하고 만다.

 

하지만 소는 바보스럽게도 물살에 몸을 맡긴 채 떠내려간다고 한다. 말처럼 급류를 벗어나기 위해 온힘을 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떠내려 가다 보면(폭포 등 위험구간이 없는 한) 조금씩 조금씩 강가에 접근되고, 얕은 곳에 닿게 됐을 때 빠져나온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다는 이야기처럼, 느림보 소가 빠른 말을 이기는 것이다.

 

인터넷, 스마트폰, 자동차, KTX, 비행기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빠름의 미학에 빠져 산다. 100세 시대가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노후를 대비한 건강과 돈도 챙겨야 한다며 마음이 급하다. 겉으로 ‘슬로시티’를 말하지만 각박한 현실에서 30년 이상을 늙은이로 살아야 하는 서민들에게 느림의 미학은 허세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새옹지마고, 우생마사다. 말처럼 빠르게 앞서간들 종착역은 같다. 3세녀를 고속승진시킨 대한항공 오너 집안이 요즘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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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 jhkim@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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