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은 나이 들어도 비교적 생생하게 기억한다. 호기심 많고 가슴 설레이던 시절, 모든 게 새로운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 들기 시작한 언제부턴가 시간은 미친듯이 빠르게 흘러갔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상이 반복되기 때문에 기억될 게 별로 없다. 정신 없이 바쁘기만 했지 기억할 게 없으니 시간은 빛의 속도로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올 한해도 미친 듯이 흘러갔다. 수능 대박에다 결혼·취업 걱정 다 날려버리고 승진·로또 당첨· 금연· 건강 다짐도 했을 법 하다. 전· 월세시대를 마감하고 반듯한 아파트 한 채 장만하겠다는 것도 서민의 소박한 꿈이다. 그런데 이룬 것도 없이 일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고들 한탄한다.
청마의 해인 올해 사회 어느 구석에서도 말의 진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교수신문은 올해 사자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를 꼽았다. 사슴을 가리켜 말로 우긴다는 뜻이다. 시비곡직이 뒤죽박죽 된 걸 이르는 말이다. 세월호 참사를 나타내는 ‘참불인도(慘不忍睹)’도 수위에 꼽혔다. 세상에 이런 참혹한 일을 겪었어도 세상은 달라진 게 없다.
또 직장인들이 뽑은 사자성어는 ‘다사다망(多事多忙)’, 구직자들은 ‘간난신고(艱難辛苦)’를 사자성어로 뽑았다. 취업난 속에서 매우 힘들고, 괴로운 한 해를 보냈다는 뜻이겠다. 중소기업인들이 선택한 사자성어는 ‘필사즉생(必死卽生)’이다. 생존의 기로에 서 있는 중소기업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인생은 ‘고(苦)’다. 세상 쉬운 게 하나도 없다. 행복은 목표로서 나타나는 게 아니다.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 있다고 한 이는 괴에테다. 과정을 즐겨야 한다. 미친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방법도 간단하다. 기억할 일은 자꾸 만들면 된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것을 시도하며 살으시길 권한다. ·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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