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피랑은 도심에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가난한 마을이었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지난 2006년이다. 마을 꼭대기에는 조선시대 통제영의 동포루가 있었는데 통영시는 이 동포루를 복원하고 일대를 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었다. 마을의 주택들을 철거해야만 가능한 사업이어서 주민들은 보상비를 받고 마을을 떠나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지역 사회단체인 ‘푸른통영 21’이 나섰다. 마을을 살리기 위해 주민들과 함께 만든 사업이 벽화사업이다. 2007년 동피랑 벽화전이 열렸다. 공공미술사업이 유행처럼 각 도시를 휩쓸었던 즈음, 동피랑 벽화사업도 그 중의 하나였지만 추진과정은 다른 도시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지역의 몇몇 단체나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대부분의 공공미술사업과 달리 전국적으로 문을 열고 미술 전공자들은 물론 개인도 참여할 수 있도록 폭을 넓혔다. 전국에서 찾아온 참가자들이 알록달록 아름다운 색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은 벽화로 마을을 채웠다. 동피랑의 벽화를 널리 알린 것도 참가자들이었다. 입소문과 SNS 홍보효과가 주효했던 덕분에 동피랑 벽화마을은 새로운 명소가 되었다. 통영시도 마을 철거 계획을 거둬들였다.
벽화마을 동피랑이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지 8년째. 동피랑은 지금도 건재하다. 벽화사업은 한동안 도시와 농촌마을을 가리지 않고 벌어졌지만 한두 해 지나면 본래 모습을 잃게 되는 벽화의 특성 때문에 지속적으로 그 취지를 살려낸 사례는 많지 않다.
동피랑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년마다 공모전을 열고 벽화의 생명을 지켜왔다. 동피랑을 주목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지난해 동피랑 벽화공모전은 ‘벽화비엔날레’로 이름과 형식을 바꾸었다. 135개 팀이 지원해 68개 팀을 선정했다. 프랑스 독일 일본 태국 이집트 등 외국의 작가들도 참여했다니 비엔날레로서의 가능성이 보인다.
부러운 것은 가난한 동네의 화려한 변신이 아니다. 동피랑을 지키는 주민들과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시민활동가들의 진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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