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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광은 간신이 아니다

▲ 윤영근 예총 남원지회장
조선 500년 역사 속에서 유자광 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도 드물 것이다. 스스로를 추천하는 상소를 올려 세조에게 발탁되어 벼슬자리에 나간 이후 유자광은 항상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그리고 소용돌이가 끝났을 때 유자광은 토사구팽을 당하여 온갖 모함과 질시를 받았는데, 그것은 그가 양반출신이 아닌 서얼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종실록의 어디에도, 무오사화나 갑자사화를 기록한 조선실록의 어디에도 유자광을 간신으로 몰아붙일 근거는 없다.

 

유자광 하면 간신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를 만큼 희대의 간신으로 낙인이 찍혀 있는 것은 남이의 친척인 남곤이라는 이가 쓴 ‘유자광전’이라는 한 편의 소설 때문이다. 남곤에게 유자광은 자신의 잘난 친척 하나를 죽게 만든 철천지 원수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따라서 남곤의 ‘유자광 전’은 악의적인 모함으로 가득 차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후세의 드라마나 시나리오 작가들은 남곤의 ‘유자광전’에 의지하여 유자광을 간신으로 표현하는데 온갖 열성을 다 바쳤다. 그것은 유자광을 충신이 아니라 간신으로 그려내야 더욱 이야기가 흥미 있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드라마나 영화 시나리오 작가, 혹은 감독들이 유자광시대의 조선왕조실록을 한번이라도 읽었다면 결코 그를 간신으로 등장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종실록을 보면 남이의 역모사건에 유자광이 모함한 부분은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으며, 항간에 떠도는 ‘남아이십미평(平)국’이면 이라는 부분에서 ‘평’자를 ‘득(得)’자로 고쳤다는 얘기도 나오지 않는다. 두 번의 사화에서도 유자광은 임금의 명으로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해 냈을 뿐, 자신의 의지로 사림을 죽음으로 몰아넣지는 않았다.

 

그런데 조선실록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근거도 없이 유자광을 간신으로 낙인찍어 버린 것이다.

 

며칠 전에(2015년 4월 21일 자) 전북일보의 ‘오목대’란에 남원의 ‘고전문화연구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유자광교, 유자광도서관’을 가지고 ‘공연히 간신의 고장이란 불명예만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글을 실었다.

 

그 칼럼의 내용을 보면 필자는 유자광을 간신으로 단정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남원의 뜻있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유자광의 유적지 발굴사업이나 유자광에게 둘러씌워진 간신이라는 족쇄를 풀기위한 노력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원 사람들, 또는 전라북도 사람들까지도 유자광을 간신으로 인정해 버린다면 유자광은 진실과는 상관없이 세세년년 간신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이제는 이 지역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이다. 조선왕조실록의 근거를 가지고 유자광이 결코 간신이 아님을 적극 밝히고 나서야 할 때인 것이다. 그 누명을 벗겨내야 간신이 탄생한 고장이라는 남원의 오명도 벗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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