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종 씨 생애 첫 전시회 / 94세에 크레용 처음 잡아 / 꽃·새·나무 등 50여점 작품 / 달력 제작 수익금 노인돕기
“나는 이 까치가 이뻐, 참 이뻐”
나이가 들면 어린이로 돌아간다는 말이 맞나 보다. 97세 할머니의 작품에는 동심이 물씬 묻어났다.
한선종 할머니가 100세를 바라보는 연세에 첫 전시회를 열어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지난달 25일부터 전주 동문사거리 인근의 써드월에서 갖는 전시회 이름은 ‘할머니와 크레용’. 그동안의 ‘끼’를 어떻게 감추고 살았을까. 그림을 배운 적도 없고, 전업 주부로 살다가 94세의 나이에 크레용을 처음 잡은 ‘화가’라는 게 믿기지 않다는 게 관람자들의 관전 평이다.
‘할머니 화가’는 4년 전 손자가 쓰던 크레용으로 심심풀이 삼아 ‘그림놀이’를 시작했다. 스케치북도 아닌, 달력에 습작 삼아 그렸다. 그림은 그에게 놀이였다. 그의 그림놀이는 가족들도 크게 눈여기지 않았다. 할머니가 다니는 미장원 원장이 그 가치를 알아주었으며, 첫 전시회로 연결되는 계기가 됐다.
전시회 출품작은 4년간 그린 50여 점의 작품. 꽃과 새, 동물, 나무들이 주된 소재다. 진안 안천이 고향인 할머니는 어린 시절 고향에서 보고 느낀 풍경과 추억을 그림에 풀어놓았다.
“장인 어른이 돌아가신 후 심심하니까 집에서 달력 뒤에 손주들이 쓰던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셨습니다. 가족들 누구도 전시회를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전시회까지 갖게 됐습니다. ”
둘째 사위인 조순구 전북대 교수(전 전북대 부총장)는 장모님의 전시회가 어버이날을 앞두고 좋은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직접적으로 돕지는 못했지만, 조 교수 외에 또따른 사위인 김도종 원광대 총장·유철종 전북대 교무처장 등과 딸 유옥순 전 군산대 교수·아들 유신근 한의원 원장 등이 전시회를 응원했다. 유 교수는 한국화를 전공했으며, 유 원장은 유화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네째 딸은 펜화를 공부하고 있다. 어머니의 타고난 재능을 자녀들을 통해 거꾸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2남6녀 중 박사·교수가 6명일 만큼 ‘자녀 농사’에 성공한 할머니가 뒤늦게 자신만의 세계를 그림으로 세상에 내놓은 셈이다.
할머니의 그림은 첫 전시회와 함께 탁상용 달력으로 제작됐다. 할머니는 제작된 달력으로 생기는 수익금 전액을 홀로노인들에게 지원할 계획이다.
할머니의 소박한 그림놀이에서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시회를 기획한 써드월은 소개했다. 전시회는 15일까지 이어진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