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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소한 두발자유

담임에 가위를 건넨 순간 친구의 머리카락이 '싹둑'…죄책감·미안함이 앞선다

▲ 공현 청소년 인권운동가
그때 담임교사는 나에게 가위를 달라고 했다. 아마 내가 앞자리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에이 설마 진짜 자르겠어.’ 망설이면서도 교사의 말을 잘 거역할 줄 몰랐던 나는 가위를 건넸다. 싹둑. 구레나룻이었던가 앞머리였던가. 길고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경고를 받았던 어느 학생의 머리카락이 그렇게 잘려나갔다. “이 길이 맞춰서 내일까지 잘라와.”라며. 평소에는 온화한 담임이었고 설마 진짜 자를 줄은 몰랐다고 해도 비겁한 변명일 것이다. 고2 때의 일이었다.

 

그 이듬해인 2005년, 두발 자유화를 요구하는 서명운동과 거리집회 등이 일어났다. 두발자유는 인권이며 머리 길이를 몇 cm까지 허용할지 말지 그런 식으로 타협할 문제가 아니라고 외쳤다.

 

안전과 위생을 위해 작업복을 갖춰야 하는 특별한 일에 종사하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의 머리카락이나 용의복장을 규제하는 것에는 아무런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비판했다. 두발자유가 헌법상 기본권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공식 판단이 나온 것도 그 무렵이었다. 딱 10년 전, 봄기운이 짙고 조금 더운 5월이었다.

 

10년간, 두발자유를 이야기해오며 마음속으로 내가 가위를 건넨 그 순간을 돌이켜보곤 했다. 내가 다르게 할 수 있었을지, 과연 어떻게 했어야 했을지. 지금도 그때 교사의 폭력에 협조한 것에 대해 머리카락을 잘렸던 그 사람에게 미안하다. 그가 이 글을 읽을 가능성은 얼마 없겠지만 우선 사과부터 전하고 싶다.

 

다니던 학교가 특별히 두발규제가 깐깐했던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두발규제가 있는 것만으로도 문제는 많았다. “머리카락 같은 사소한 것에 매달리지 마라” 같은 소리를 들으면 화가 났다.

 

왜 그 사소한 것 때문에 나는 숨 막히는 기분을 느끼고 단속과 폭력을 당하며 몇 년을 보내야 한단 말인가. 왜 그 사소한 것 때문에 나는 가위를 건넨 죄책감을 안아야 했는가. 그게 그렇게 사소한 것이라면 그냥 두발 자유화 좀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제12조(개성을 실현할 권리) ① 학생은 복장, 두발의 길이·모양·색상 등 용모에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가진다.…③ 학교의 장은 교육 목적상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학교의 규정으로 제1항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

 

전북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이다. 다른 학생인권조례와 달리 두발규제를 폭넓게 허용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그 사소한 두발규제에 비상한 집착을 보이는 대한민국 교육부 덕분이다.

 

교육부는 2012년, 학교가 용의복장규제를 학교 규정으로 정할 수 있다고 시행령까지 개정해가며 학생인권조례에 훼방을 놓았다. 민폐, 진상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는 짓이었다. 솔직히 나는 두발자유를 제대로 담지 못한 전북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조례”라고 부르기가 망설여질 정도다. 한시 바삐 고쳐야 할 문제점이다.

 

머리카락이나 복장처럼 개인이 알아서 할 부분을 함부로 규제하는 악습을 없애려 하는 것은,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것은 사소한 것이 아니다. 두발자유는 한국 사회가 중고등학생을, 청소년을 신체와 사적 영역까지 모두 통제해야 할 관리대상으로 보는지 아니면 존엄과 자유를 가진 인간으로 보는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상징과도 같은 문제다. 한국의 정부와 학교들이 그 ‘별 거 아닌’ 두발규제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두발 자유화가 된다면, 아마 나도 고2 때 나의 ‘사소한’ 불의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을 조금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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