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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귀향

정동영 전 의원이 지난달 고향인 순창으로 조용히 귀향했다. 출생지인 구림면 율복리가 아닌 가인 김병로 선생의 생가가 있는 복흥면 답동리 하리마을에 집을 얻어 부인과 함께 정착했다. 그의 순창 귀향을 놓고 정치권에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내년 총선 때 남원·순창에서 재기를 노리기 위한 것 아니냐, 호남 신당 창당 등 내년 총선을 겨냥한 포석 아니냐 등등.

 

정동영의 이번 귀향은 예전처럼 주목받지 못했다. 그의 정치적 귀향은 이번이 3번째다. 첫 번째 귀향은 지난 1995년 15대 총선 때다. 당시 MBC 간판앵커였던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전주 덕진에 출마하면서 정치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9만7858표, 89.9%로 전국 최다 득표와 전국 최고 득표율 2관왕을 차지하면서 화려하게 정계에 데뷔했다. 16대 총선에서도 헌정사상 최초로 2회 연속 전국 최다·최고 득표의 영광을 안으면서 전북의 아들로 우뚝 섰다. 그는 당시 선거 유세 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3년 워싱턴 D.C의 링컨기념관 앞에서 대중을 향해 연설했던 ‘I have a dream’을 외치며 대권을 향한 자신의 꿈을 설파했다. 최연소 최고위원 열린우리당 초대 의장 통일부장관 등 승승장구하던 정 전 의원은 정치입문 12년만인 2007년 집권여당 대선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17대 대선에서 500만표 차이로 낙선한데 이어 18대 총선에서도 서울 동작을에서 고배를 마신 뒤 미국으로 떠났다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2번째 정치적 귀향을 선택했다. 2009년 4월 전주 덕진 재선거를 앞두고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고향을 찾은 그를 전주시민은 72.3%라는 압도적 지지로 반겼다.

 

그러나 2012년 19대 총선 때 서울 강남 을에서 패배한데 이어 지난 4·29 재·보선 때 다시 새정연을 탈당해 서울 관악 을에 출마했지만 낙선의 고배와 함께 야권분열의 책임론까지 뒤집어쓰고 말았다.

 

4번의 탈당과 4차례 낙선으로 정치적 입지를 상실한 정 전 의원은 이제 마지막 귀향을 선택했다. 탯줄을 묻은 고향에서 마지막 재기를 노리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부활은 여의치 않다. 한 때 ‘전북의 희망’이었던 그가 도민들에게 안겨 준 좌절감과 이반된 민심을 어떻게 극복해낼지가 관건이다. 값싼 동정심 대신 스스로 전북의 희망과 대한민국의 비전을 만들어가는 것도 그의 몫이다. ‘국민모임’과 같은 무기력한 패착이 아니라 열린우리당 창당 때처럼 몽골기병식 역동성의 회복여부도 관심사다. 광주의 천정배가 화려하게 재기한 것처럼 정동영의 부활에 이목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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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택 kwon@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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