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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돼도 기자가 안돼서

▲ 정 상석 대학언론협동조합 이사장

기자가 되고 싶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어느 대학교의 건학이념을 가슴에 품고 다녔다. 진리에 가장 가까운 직업은 기자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지적으로 오만한 고등학생이 생활기록부 장래희망에 써넣기에도 기자는 퍽 그럴싸했다. 대학에 오자마자 대학신문에 지원했다. 기자가 되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그때는 그렇게 여겼다.

 

■ 진실 추구, 신념대로 행동하려고

 

기자 3년차 되는 해에 편집장이 됐다. 편집장으로 사령이 난지 한 달이 됐을 쯤, 총장이 사고를 쳤다. 총동아리연합회 발대식 ‘해오름식’에서 축사 대신 특강을 했다. 특강은 ‘동아리 활동 어지간히 해라’, ‘취업 준비나 열심히 해라’, ‘우리학교 부실대 선정되면 너희만 손해다’류의 내용으로 채워졌다. 55분쯤 했던 것 같다. 애초에 총장에게 주어진 시간은 5분이었다. 행사는 전부 뒤로 연기됐다. 2000여 학생들은 반 토막 났다. 나는, 모든 내용을 기사로 썼다. 제목은 ‘총동연 해오름식, 졸지에 해내림식’이었다.

 

편집 당일, 주간교수가 찾아왔다. 기사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이대로는 내보낼 수 없다고 했다. 제대로 취재했냐고 물었다. 제대로 취재했다고 답했다. 어쨌든 이대로는 안 된다고 했다. 여러 차례 실랑이가 있었고, 누군가에 의해 고쳐진 기사가 지면에 실렸다. 이해할 수 없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끝까지 항의하지 못한 나였다.

 

한 달 뒤, 다른 기사 취재 때문에 총장실에 갔다. 취재가 끝나고 총장은 나를 불렀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두커니 서서 총장의 일대일 맞춤형 연설을 들었다. 한 시간쯤 했던 것 같다. ‘언론의 역할은 비판이 전부가 아니다’, ‘대안을 제시해야 제대로 된 기사다’, ‘앞으로 지켜보겠다’ 등등. 대답을 할라치면 끊고 할 말만 했다. 위압감에 짓눌렸다.

 

그때부터, 편집권 문제를 제기하면 신문사 조직 전체가 무너질 것이라는 피해의식이 생겼다. 민감한 기사는 빼고 무난한 기사를 올렸다. 빼앗긴 자존감은 총학생회를 까면서 회복했다. 끝없는 정신승리와 자기합리화. 나는 그렇게 기레기가 되었다. 편집장을 마쳤을 때, 대학신문사는 대학 본부로부터 우수 부서상을 받았다. 담당 간사는 심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나는 그것이 총장이 내게 보내는 조롱이라고 느꼈다. 기자가 자유와 이성의 상징이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나는 굴종의 상징이었다.

 

우수 부서상을 받은 다음날, 새벽 두 시에 전화가 왔다. 외대학보 편집장이었다. 잘렸다고 했다. 학교가 쓰지 말라고 한 기사를 냈다는 이유였다. 심히 이례적으로 부끄러웠다. 열등감이 느껴졌다. 동시에 KBS, MBC, YTN에서 언론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기자들이 떠올랐다. 그런 투쟁은 어른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굴종하는 내가 나중에 기자가 되어서, 같은 상황에 과연 굴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대학언론인들 모아 단체 만들어

 

칼럼니스트 김현진의 책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남자는 스물다섯이 넘으면 꼰대가 된다. 그쯤부터 사람이 안 변한다.” 그 때 내 나이가 스물셋. 바로 군대를 다녀오면 스물다섯. 이대로의 나는, 기자가 돼도 이성과 합리,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기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신념대로 행동하고 싶었다. 다시는 나 같은 기자가 나오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 곧장 서울로 올라왔다. 대학언론인들을 모아 단체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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