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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의 가려움

▲ 임주아 우석대 대학원 재학
‘단군 이래 정부 최대 대학 지원 사업’이라 불리는 ‘프라임 사업(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 계획서 마감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정원 감축 등 구조조정에 따라 재정이 얄팍해진 상황에 등록금 인상 상한선(1.7%)을 조금만 올려도 각종 재정지원 사업평가에서 불이익을 받게 돼 동결할 수밖에 없었던 대학들은 정부의 파격적인 ‘당근’지원사업에 또 을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해 대학구조개혁평가로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다시 거대한 사업을 맞이한 당혹과 혼돈을 느낄 새도 없이 전국 대학들은 짧은 기간 동안 어떤 창조력을 발휘하고 있을까.

 

사회 인력 수요에 맞춘 대학 학과 조정

 

단일 사업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인 6000억원(3년)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하는 프라임 사업은 사회의 인력 수요에 맞춰 대학 학과별 인원을 조정하라는 것이 골자다. 구체적으로 인문·사회·예술과 사범대학 등 이미 사회수요를 넘어선 학과의 인원을 줄여 실용 학과 위주로 구조조정 하라는 의미에 가깝다.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2014~2024년 대학 전공별 인력수급 전망’ 자료가 사업의 명분이자 주재료다. 저출산과 인력 초과 영향으로 공학계열의 공급부족과 공학을 제외한 기타 계열의 공급 과잉이 우려된다는 ‘전망’이 프라임 사업의 무쇠 오른팔이 되어주었고, 전국 대학이 앞 다투어 뛰어들고 있는 거대한 당근 게임 카운트다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성격은 다르지만 DNA는 같은 ‘코어 사업(대학 인문역량 강화사업)’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사회수요에 맞게 융합하라는 주문이 들어 가 있다. 코어사업의 5개 항목 중 ‘인문기반 융합전공 모델’ 예시를 보면 ‘인문학과 다양한 학문이 결합한 융합전공 개발을 통해 창의·인문 인재 양성’이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러한 부분이 인문학의 본질을 흐리게 할 ‘짬뽕’학과의 개설을 부추긴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기본계획안에 ‘국공립대 총장직선제 폐지’ 등 사업과 무관한 과제까지 심사기준에 들어가 있다는 것도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정부는 사회 수요와 대학 교육 간 ‘미스매치’를 해소하고 청년 실업난을 완화하기 위해 전공별 수급을 고려한 대학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언뜻 보면 정말 불가피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 속에는 청년 실업난을 해결해야할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대학’이라는 확신이 짙게 깔려 있다. 지원 사업이란 명목 아래 대학을 취업교육학교로 규정하고, 확실하지도 않은 전망을 미끼로 학생들의 미래를 뒤흔들며, 주어진 기간 안에 대학 구성원들과 합의까지 원만하게 끝내라는, 세상에 없는 수를 두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길들이기식 태도 학생들 피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사업을 시행한다면서도 정식으로 공고가 난 것은 3개월 전에 불과한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일찍이 지원 사업 소식을 듣고 셀프 구조조정에 들어간 대학도 적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길게는 1년, 짧게는 3개월 기간 동안 어느 착한 대학이 구성원들과 모여 자율적으로 논의하고 방향을 결정 지으려 하겠는가. 학과 통합과 폐지에서 언제나 빠져있는 논의의 대상, 정부의 길들이기식 태도가 전염병처럼 대학에 퍼져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되물림되고 있는 현실.

 

불확실한 전망만 믿고 대학의 존재 이유 자체를 쥐고 흔드는 막대한 재정지원사업의 진짜 전망은 ‘복종’아닐까. 복종, 그것은 또 다른 지원사업 세계의 문을 연 한국형 인공지능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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