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차례 옥고 순창 김일두 지사 후손 등 / 도내 자체 행사조차 없는 현실에 울컥
“4월13일이 국회의원 선거만 하는 날인가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조력했던 전북지역 선열들의 후손 사이에 오가는 우스갯소리다. 1919년 4월13일 중국 상해(上海)에서 울렸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그날의 함성’이 정작 총선 유세에 묻힌 오늘의 현실을 아쉬워하며 하는 말이다.
12일 오전 11시 전주시 금암동 대한광복회 전북지부 사무실에서 만난 전북 출신 임시정부 수립 활동자의 후손들과 대한광복회 관계자들의 얼굴에는 씁쓸한 표정이 번졌다.
대한광복회 전북지부 이강안 지부장은 “전북은 지역세에 비하면 애국지사들을 굉장히 많이 배출한 뜨거운 애국의 고장”이라 들고 “오늘 오신 후손들의 선열들이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국가(國家)’가 있을 수 있다”며 참석자들을 환영했다.
1919년 4월13일. 이 날은 일제의 침략으로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오로지 나라의 자주독립과 겨레의 자존을 위해 ‘나라를 되찾겠다’는 정신 하나만으로 애국지사들이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 날이다.
전북 지역에는 김일두(1891~1967), 소내원(1890~1967), 김연환(1879~ 1947), 황종관(1868~1953), 노진룡(1894~1950), 강태동(1889~1946), 윤건중 지사(1898~1987) 등 7명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유공자가 있다.
순창 출신인 김일두 지사의 손자 김산곤씨(70)는 “할아버지께서는 1919년부터 1년간 상해 임시정부의 통신원으로서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렀고, 1926년 7월에는 김제군 원평에서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다가 체포돼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또다시 옥고를 치렀다”고 말했다.
김일두 지사의 애국 운동은 19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도 원주 진위대 특무정교 민긍호(1865~1908)의 의병진에 가담, 강원과 충북·경북지방에서 일본군 수십 명을 사살하기도 했다. 1910년에는 대한유생독립단을 조직, 단장으로서 독립운동을 적극 추진했다.
완주 출신인 윤건중 지사의 아들 윤필립씨(81)는 “아버지께서는 1919년 3월1일 서울 파고다(현 탑골)공원의 독립선언서 선포식에 참석하셨고, 전주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면서 “1920년 3월 상해로 망명, 이승만 등과 활동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 참사로 임명돼 활동하셨다”고 설명했다.
윤 지사는 「독립선언문」을 자전거 뼈대 속에 숨겨 전주로 탁송, 장날을 기해 만세시위를 주도했으며 지난 1954년 5월 제9대 농림부장관으로 임명된 바 있다.
전북 지역은 상해에서 제 살 깎는 고통을 감내하며 독립운동을 모색한 독립유공자가 50여 명에 달한다.
당시 독립운동에서 신변이 노출되면 안 되기 때문에 재판과정에서 본명을 숨기고 가명과 별명으로 활동한 애국지사가 태반이었다.
강태동 지사의 손녀 강순녀(52)씨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란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우리 사회가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아 많이 안타깝다”면서 “그때 있었던 일들을 우리 후손이 잊어서는 안 된다”며 눈물을 훔쳤다.
전날 중국 상해를 다녀왔다는 이강안 지부장은 “하얼빈(哈爾濱)에서 다롄(大連)까지 고속열차를 타고 가면 3시간 거리인데, 일본 강점기 때 선열들이 며칠을 숨고 도망다니며 다녔다고 생각하니 울컥했다”고 말했다.
이 지부장은 “총선에 묻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을 기념하는 도내 자체 행사가 없는 것이 아쉽다”고 지적했고, 활기차던 분위기가 다시 한 번 숙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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