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공무원들의 업무추진 과정에서 가장 부담이 되고 우선시 되는 업무가 자치단체장의 공약사항 추진과 의회에 대한 보고와 처리결과 작성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지역의 발전을 위한 선의의 주제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들 선출직의 요구나 약속이 표의 속성상 현실이나 근접미래에 치중될 수밖에 없다보니, 지방행정을 눈뜬 봉사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예측할 수 있는 인과관계의 진단이 간과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방행정의 과학적 자기관리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과학이란 말에 스트레스를 받는데 이는 생각해가면서 우리 스스로 예견할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 가자는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그 하나가 바로 지역의 미래를 준비할 지역 아젠다 발굴이다. 그 주체가 지방자치단체가 되어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미래의 의제를 발굴해 내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과거를 되풀이하는 현재에 머물러있는 것이고 그 해법을 찾다가 다시 현재가 과거가 되는 비효율적인 시간들이 되어가고 있음이 우리의 현실이다. 자치 민주주의를 하자고 했던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지역사회의 돌아가는 상황을 오불관하거나 오로지 지역에 대한 연고 하나로 현재를 과거에만 묶어두려 한다면, 이는 결국 미래를 도외시 하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시행착오가 아닌가. 지역의 자랑이나 조상들의 선비정신만을 전가의 보도처럼 차고앉아 수염만 만지작거리면서, 정치를 속물들이나 하는 것처럼 외면한다면 지역의 희망을 기대하기 어렵고 溫故(온고)를 “新(신)”으로 꿰어가지 못하면서 선현들의 지혜를 운운하고 우리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자가당착의 오류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新(신)의 의제도 없이 어떻게 溫故(온고)를 빗대려고 할 것인가. 당장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문제를 미래행정의 의제로 삼기 위해 주민들과 지방자치단체가 머리를 싸매야 할 때이다. 10년 안에 우리는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 농촌마을마다 한 두 개씩 만들어져 있는 경로당의 활용 방안을 놓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고령화로 인해 늘어나는 지방재정수입 감소와 무료관광에 대한 대책은 물론 이에 따른 행정력 불균형으로 지방자치단체 규모와 자격에 관한 기준을 다시 설정해야 할지 모른다. 또한 농업 종사인구의 점진적인 감소와 관련하여 그동안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덧씌운 농로들을 맨 흙으로 복구하는 생태복원의 문제가 지방재정운용의 우선순위로 등장할 것으로 사료된다. 그렇다고 하면, 자치단체의 예산은 건립보다는 해체에 따른 비용으로, 마을의 보전을 위한 신공동체 모델개발 비용으로, 흙을 숨 쉬게 하는 생태복구에 상당부분이 투입될 것이다.
이쯤 되면, 지방의원들의 공약도 제발 우리 지역의 것을 먼저 해체해 달라는 선심성 미끼로 바뀔지 모른다.
이 사소한 사례들이 지금 당장 논하기엔 귀찮고 당면한 사안들이 아닐 수 있지만, 입으로는 지속가능성을 말하면서 정작 미래의 아젠다를 찾아내지 않는다면, 온고지신은 그저 고서에 나오는 고리타분한 한자어에 불과할 것이며 우리의 현재는 영원히 또 한도막의 과거로 남게 될 뿐이다.
“앞으로 가는”인문학에 대한 주민들과 지방자치단체의 관심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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