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검사(Literacy test). 당신이 투표권을 행사하는데 문맹검사를 한다면 상상이 되는가. 이 제도는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한 세기도 지나지 않은 미국 역사의 상처다. 적법한 유권자라면 정치·사회 현안에 기본 소양이 있어야한다는 논리다. 1965년 린든 존슨 대통령이 연방 투표권법에 서명하기 전까지 남부 대다수 주에서는 흑인이 투표권을 행사하기 어려웠다. 모두 소수자 억압의 아픈 기억이요 민주주의 진보의 역사다.
민주주의 진보는 참정권 확대의 역사
어느 나라든 참정권 확대는 민주주의의 발전과 그 결을 같이한다. 여성·흑인의 참정권 부여부터 선거 연령 인하까지. 참정권은 한걸음씩 전진해왔다. 미국처럼 투표권 쟁취를 위해 유혈을 동반한 국가도 있었다. 우리나라도 1950년대까지만 해도 21세 이상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했다.
오늘날 대한민국도 선거권 하향 조정이 정치권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나는 지난 6월 18세 선거연령 인하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리고 많은 우여곡절 끝에 해당 법안이 1월 9일 국회 안정행정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선거권 부여가 9부 능선을 넘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했던가. 여당의 반대와 바른정당의 좌고우면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청소년 투표권 부여가 바람 앞의 등불 처지가 됐다. 18세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것은 진정 요원한 길인가.
일각에서는 청소년 선거권 부여가 포퓰리즘라고 주장한다. 18세 청소년은 미성숙하기 때문에 선거권을 줘서는 안 된다고 한다. 교육 현장이 정치화된다는 논리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모두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일종의 정치적 수사다. OECD 가입 34개 국가 모두 18세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청소년은 유독 미성숙해서 선거권을 가질 수 없다는 말인가. 우리 스스로 대한민국 18세 국민이 미개하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이미 대한민국의 18세 국민은 병역의 의무와 납세의 의무를 진다. 운전면허와 혼인, 공무원 시험 응시도 가능하다. 일각의 주장대로라면 미성숙한 국민에게 이러한 의무와 권한을 주는 게 더 위험한 것 아닌가. 아니면 18세 국민에게 21세기 대한민국판 문맹검사라도 해야 하나. 이제라도 18세 국민이 짊어지는 책임과 권리를 동등하게 맞춰야한다.
민주주의의 진보는 참정권 확대의 역사였다. 청소년 선거권 부여도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일보 전진시키는 길로 봐야한다. 선거연령 인하는 정치적 유불리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다. 전 세계 232개국 가운데 92.7%인 215개국의 선거 가능 연령도 18세다. 나는 대한민국이 투표 연령 한 살을 내리는 것도 두려워할 정도로 포용력이 없는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청소년 스스로 미래 짊어지도록 해야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문맹검사가 있던 시절 링컨 기념관 앞에서 섰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그는 이 연설로 미국 민주주의 역사를 진일보시켰다. 이 연설이 2017년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재현된다면 이렇지 않을까. “나의 벗들이여.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비록 오늘과 내일 시련을 겪을지라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18세가 시민으로 불리는 국가입니다. 나는 그들의 미래를 그들 스스로 짊어질 수 있는 나라에서 살게 되리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회여 18세 시민에게 정치를 허하라.
△김관영 의원은 19·20대 국회의원이며 국회 탄핵소추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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