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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스 룰'의 오해

빌리 그레이엄 목사(1918년~2018년)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개신교 전도사였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과 교류하면서 놀라운 정치력을 발휘해 주목을 받기도 했던 그는 1950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복음협회를 설립해 본격적인 복음 활동에 나선 이후 대부분의 삶을 전도하는 일에 바쳤다. 그가 찾아다닌 나라만도 185개국에 이른다고 하니 그의 생애에 얼마나 많은 복음집회를 주도했을지 짐작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1948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집회때 그가 발표한 선언이 있다. 기독교인의 사역에 관한 내용을 담은 ‘머데스토 선언’이다. 이른바 크리스천의 윤리기준이 된 이 선언은 돈과 섹스, 권력, 거짓의 유혹을 떨쳐내고 정직을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특히 강조한 것이 성적 부도덕을 경계하라는 것이었다. 그 자신도 이를 위해 일종의 규칙을 만들었다. 아내가 아닌 어떤 여성과도 단둘이 만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남성들이 자신의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 단둘이 있을 때 성적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생각했던 그는 이 규칙을 평생 지켰다고 한다. 오늘날 ‘빌리 그레이엄 룰’이라고 불리는 규칙이다.

최근 ‘미투(Metoo)’ 운동이 확산되면서 그 대응법(?)으로 등장한 용어가 있다. ‘펜스 룰’이다. ‘펜스 룰(Pence Rule)’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 2002년 미국의 의회 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는 단둘이 식사 하지 않고 아내 없이는 술자리도 참석하지 않는다’고 말한데서 비롯된 용어지만 그 원전은 ‘빌리 그레이엄 룰’이다.

이 규칙들을 들여다보면 그 취지는 성직자의 본분을 지키고 성적 유혹에 빠지지 않겠다는 약속(빌리 그레이엄 룰)이거나 정치인으로서 언행을 조심하겠다는 약속(펜스 룰)이다.

그런데 ‘미투’ 운동과 맞물려 최근 우리 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펜스 룰’은 그 조짐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아예 여성을 멀리하겠다거나 대화조차도 조심해서 해야겠다거나 접촉의 기회를 차단하겠다는 ‘펜스 룰’은 교류의 단절로 이어지고 또 다른 성차별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펜스 룰 지지’ 관련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되고 있다. ‘펜스 룰의 합법화는 남성들의 최소 방어권’이라고 주장하는 청원까지 올랐다고 한다.

‘미투’ 운동의 확산과 함께 ‘펜스 룰’의 확산이 새로운 과제로 부상한 형국이다. 정의롭고 도덕적인 사회로 이르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라면 피할 이유가 없겠지만, 성평등을 가로 막는 방어기제로 ‘펜스 룰’이 작동된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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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oo #미투 #펜스룰 #Pence Rule
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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