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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립 '대동사상' 널리 널리… 전주 정여립로에 동상 세운다

대동사상기념사업회, 기금 마련

▲ 정여립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꿈꾼 조선시대 혁명가 정여립(1546~1589)을 기리는 정여립 동상 건립이 추진된다.

지난달 발족한 대동사상기념사업회는 ‘정여립 동상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전주 정여립로에 정여립 동상을 세우기 위한 기금 마련에 나섰다. 정여립이 대동사상을 주창한 전주야말로 ‘민주주의의 효시’라는 것을 알리고, 대동사상을 널리 전파하겠다는 의도다.

정여립은 전주시 남문 밖(현재 완주군 상관면 월암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불합리한 시대 상황에 환멸을 느껴 벼슬을 그만두고 모악산 자락으로 낙향했다. 그리고 김제 금평저수지 부근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며 ‘대동계’를 조직했다. 진안군 죽도와 전주시 일대에서 군사를 조련하고 대동사상을 펴던 중 전주부윤 남언경(양명학자)의 요청으로 남해에 침략한 왜구를 물리치기도 했다. 그러나 정철과 송익필 등 서인 측은 정여립이 황해도 지역과 전라도 지역의 민중들을 모아 모반을 꾀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정여립이 의문사하면서 정여립 모반사건이라고도 불리는 ‘기축옥사’는 기정 사실로 굳어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조선의 지식인 1000여 명이 희생됐다.

“천하는 공물인데, 어디 일정한 주인이 있는가?” 이는 정여립이 남긴 유일한 말이다. 그는 천하의 제위가 혈연이 아닌 능력에 따라 이뤄지고, 임금과 신하의 관계가 절대적 충성심에 따른 수직적 구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특히 국가(천하)가 공물이라고 주장해 그 주인이 군주가 아니고 민중이라는 것을 주장했다. 이런 측면에서 정여립은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1599~1658)보다 60년 앞선 최초의 공화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대동사상기념사업회 신정일 이사장은 “정여립의 대동사상은 허균의 호민론과 정약용의 탕무혁명론 등으로 면면히 이어졌고, 근현대사의 출발점인 동학농민혁명으로 분출됐다”며 “물질만능시대에 대동사상은 갈수록 희박해지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판치는 이 시대에 정여립로에 정여립 동상을 세워 대동사상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정여립동상추진위원회 발기인들은 1계좌에 10만 원, 상한선 10계좌까지 모집하기로 했다. 일반 참가자들의 기금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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