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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비 내리는 청도리 고갯길

▲ 최상섭 시인·수필가
전주시 중인동 삼거리 로타리를 막 돌아서 금산사 가는 쪽으로 차를 몰면 마중물이라는 야생화 화원이 나온다. 나는 이곳에 가끔 들러서 요즘 새로 나온 봄꽃이며 우리 풀꽃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더러는 희귀종이거나 변이종의 품종이 눈에 띄면 값을 따지지 않고 구입을 한다. 우리 풀꽃에 대한 선호도의 깊이는 자제력을 상실한 지 오래이다. 이렇게 무작정 사서 그 꽃을 보고 감상하는 기쁨도 크지만 관리의 부실이나 생장의 특이성을 미처 파악하지 못해 잘 키우지 못한 풀꽃들도 부지기수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겨울철 관리에서 실패를 해 아까운 꽃나무들을 고사시킨 예가 한 두 번이 아니면서도 나는 새로운 풀꽃을 보면 이성을 잃기가 일쑤다.

 

그런데 시방은 금산사 가는 길의 가로수로 심어놓았던 벚꽃나무들과 꽃이 만개하여 새삼 일본 도쿄의 나카메구로 벚꽃길이 이곳인가 착각할 정도로 삼십리 벚꽃 길은 화려하고 산뜻하여 꽃길의 빼어난 진수를 이룬다. 금산사 미륵전의 추녀 끝 와당에도 저 꽃물이 넘실거리리라는 기대감으로 차를 몰다보면 열세구비의 청도리 고갯길이 나오고 시방은 도로를 확장하여 그 열 세구비의 고개가 줄어든 상태이다. 나는 이 길로 매일 출근하며 천상열차를 타고 벚꽃 터널을 지나 중국의 진나라 때 있었다는 무릉도원이라는 미지의 세상으로 여행하는 느낌이다. 얼마나 좋은지 가슴이 터질듯 한 이 호시절의 벅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 표현할 수 없는 글재주를 원망한 적이 몇 번인지 모른다.

 

그 청도리 고갯길에서 눈을 들어 모악산 산자락을 바라보면 마치 하늘의 은하수와 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 연두색 속잎과 흰 산벚꽃의 조화는 천상열차의 최고의 환상적인 구경거리이다. 아아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찬사가 절로 나온다. 차를 멈추고 몇 걸음 풀숲으로 들어가 실례를 할라치면 왕눈이 개구리가 두 눈을 부릅뜨고서 안 돼요 한다. 이 벚꽃 길의 수려한 장관은 딱 1주일 간이고 이제 시원한 바람에 꽃비가 내린다. 새삼 매창 시인의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의 시어가 절로 나와 나는 달 구름을 잡으려 고갯길 정상에 차를 세운다. 흘러가는 세월의 발목을 잡아 묶어두고픈 마음만 간절하다. 나는 이곳에서 드물게 오래 살았다는 고희(古稀)의 나이인데도 직장에 나가 봉사할 수 있음도 또한 홍복(洪福)이 아닌가 생각을 해 본다.

 

맑은 하늘의 미풍에 떠나가는 저 세월 속의 낮달을 마음에 담으며 차에 시승하면 한 생애를 숨어 살았던 여인의 삶을 그린 소설가 양귀자의 ‘하얀 꽃’의 무대인 귀신사(歸信寺)가 나온다. 임진왜란 때 조선의 3대 승병장이었던 처형대사가 승군을 훈련했던 사찰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지금은 비구니 무여 승의 목탁소리가 유독 은은하게 산사에 메아리친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되소서 되소서 그리 되소서. 부처의 도(道)가 금산사 미륵전(彌勒殿)의 용화지회(龍華之會) 현판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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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섭 chungds@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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