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농악 상쇠 예능보유자
여성농악단 부흥 이끌어 후학 양성에도 힘 쏟아
여성 최고 상쇠로 손꼽히는 나금추(본명 모녀) 명인이 향년 80세로 별세했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부안농악 상쇠 예능보유자인 나 명인은 여성농악단을 부흥시킨 주역으로 전북 여성 농악의 역사와도 같다.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이 시대의 참스승이기도 하다.
나금추 명인이 11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그는 최근 희귀질환을 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1938년(호적 1941년) 전남 강진군 강진읍 동성리에서 8남 8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1957년 임춘앵 여성국극단의 공연을 보고 국악의 매력에 빠져 같은 해 광주국악원, 이듬해 남원국악원에서 판소리를 배웠다. 1959년 최초 여성농악단인 춘향여성농악단 상쇠로 3년간 활동하면서 전국 순회공연을 하는 등 여성농악단 부흥을 이끌었다. 1963년 전주아리랑여성농악단 상쇠로 합류했고, 그해 남편 장금동과 혼인해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전주아리랑여성농악단의 전신인 한미여성농악단, 정읍여성농악단 상쇠로 활동하면서 전국적으로 전북 여성농악단의 명성을 떨쳤다.
이후 여성농악단 활동을 접고 정읍감곡초, 군산동중, 전주농림고, 김제농림고 등에서 농악을 지도하는 등 가사와 교육 활동에 전념한 시기도 있었다. 1983년에는 제9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에서 판소리일반부 장원, 1985년에는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이리농악단 상쇠로 출전해 단체 종목 대통령상과 개인연기상을 동시 수상해 절정의 기량을 펼쳤다.
1987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7-1호 부안농악 상쇠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1987년부터 2001년까지 전북도립국악원 민요반과 우도농악반 교수를 역임하는 등 교육적 열정을 쏟았다. 전북도립국악원에서 정년퇴직한 뒤 전주, 부안, 고창 등지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 전념했다. 2009년 제자들로 구성된 금추예술단, 2014년 부안우도농악보존회가 발족해 고문으로 활동했다. 2016년 결성된 부안군립농악단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나 명인의 지근거리에서 함께한 고창농악보존회 이명훈 회장은 “제자들에게 골고루 사랑을 나눠주었던 최고의 스승이자 최고의 상쇠였다”며 “인간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모든 면에서 모범을 보였던 분”이라고 고인을 기억했다.
빈소는 부안호남장례식장(부안군 행안면 부안로 2563)에 마련됐다. 발인은 13일 오전 9시, 장지는 정읍 화신공원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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