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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시의 진화

예술가들에게 창작 생활공간을 지원해 작품 활동을 돕는 사업, 레지던시(residency)가 진화하고 있다. 공공기관과 기업 뿐 아니라 사설미술관과 단체까지 레지던시를 주도하고 있는 덕분이다. 전북 지역도 예외가 아니어서 불과 3-4년 전 만해도 어려움을 겪었던 입주자 모집 여건은 넘쳐나는 신청자들로 이미 반전되었다. 지역의 한계를 넘어 외국작가들의 참여도 해마다 늘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예술가가 특정 공간에 거주하면서 재정적인 지원을 받고, 다른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창작 활동을 지원을 받는 레지던시는 유럽을 비롯해 예술가 지원이 활성화된 나라에서는 좀 더 일찍 시작된 제도지만 그것이 세계적으로 확산된 것은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다. 국내 도입 역시 그즈음인데 공공기관 보다는 기업의 예술가 지원 사업이 오히려 레지던시 환경을 북돋아온 경향이 짙다.

사실 레지던시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 않다. 시작은 독일의 창작공간 퀸스틀러하우스 베타니엔(Kuenstlerhaus Bethanien). 세계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예술가 스튜디오이기도 한 이 공간은 병원 건물이었으나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의료시설로서의 기능을 잃고 훼손되어 폐허가 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것을 예술공간으로 재생시킨 것이다. 베타니엔이 본격적인 창작 지원 공간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75년, 본격적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부터다. 이후 40년. 지금 베타니엔은 세계 각국 작가들이 상주하면서 실험정신과 창조적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세계적인 창작 실험실이 됐다.

눈여겨보게 되는 것이 있다. 베타니엔의 명성을 높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우선 특별한 것은 입주작가의 자격. 자국의 작가들이 아닌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젊은 외국 작가들이 대상이다. 국제예술교류를 지향하는 이 프로그램을 위해 베타니엔은 세계 각국의 대표적인 공공예술단체와 협약을 맺고 해마다 추천을 받아 입주 작가를 선정하고 1년 동안 창작공간과 전시공간, 활동비를 지원해준다. 그러면서도 창조적 관점을 지켜 생산 결과보다는 그 과정을 중시하는 덕분에 입주 작가들은 1년 동안 오로지 작업에만 전념하면서 실험적이고 전위적이며 창의적인 작업을 마음 놓고 펼치게 된다.

근래 이어지고 있는 우리의 레지던시를 들여다보니 형식과 내용이 거의 똑같다. 게다가 유독 미술 분야에만 편중되어 있다. 지역적 특성으로도 문학과 공연 등 분야의 확장이 아쉽다. 이대로는 레지던시의 건강한 진화가 멀게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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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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