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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정신 되살리는 계기로 삼자

전주역사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된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유골이 다음달 1일 전주 완산공원과 곤지산 일대에 조성된 동학농민혁명 추모공간에 안치된다. 1996년 일본에서 유골이 봉환된 후 23년만이다. 봉환 후 안장까지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쳤지만 이제라도 안식처를 찾아 다행스럽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에 대한 명예회복이 이뤄지고, 국가기념일까지 제정되는 상황에서 그간 농민군 지도자의 안식처를 마련하지 못한 채 이리 오랫동안 방치했다는 건 또 하나의 부끄러운 역사다. 혁명의 정신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정작 혁명을 이끌었던 지도자 한 분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던 것이다.

농민군 지도자 유골의 봉환과 안장이 이루어지게 된 데는 동학 관련 단체와 전주시의 노력이 뒷받침 됐다. 해당 유골은 일본 북해도 대학의 한 표본 창고에 90년 동안 방치됐던 것을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천도교·동학혁명유족회 등이 공동으로 봉환위원회를 구성해 이듬해 봉환식을 갖고 한국으로 봉환했다. 유골 봉환 후 안장 장소로 여러 곳이 거론됐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유골의 주인공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진도 출신의 동학농민군지도자라는 사실이 문서로 남아 있어 봉환 초기에는 진도가 안식처로 유력하게 거론됐다. 그러나 진도 지역사회의 호응이 없어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기념공원이 있는 황토현과, 무명 농민군 묘역이 있는 김제 구미란 등이 거론됐으나 전적지의 성격과 예산 등의 문제로 유야무야 됐다.

오갈 데 없이 표류하던 유골 안장에 손을 내민 곳이 전주시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주는 전라도 수부였으며, 농민군과 전라도 관찰사간 화약을 맺고 집강소를 설치했던 역사적 장소다. 전주시가 그 의미를 살려 농민군과 관군간 전투가 벌어진 곤지산 일대에 새로 추모공간 ‘녹두관’을 마련한 것이다. 한 명의 농민군 지도자 유골을 안치하는 것을 계기로 동학농민혁명 역사문화벨트 사업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인근 한옥마을, 전라감영, 서학동 예술촌 등과 연계한 새로운 공간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 아래서다.

동학농민군 최고 지도자였던 전봉준 장군을 비롯해 제대로 안장된 농민군 지도자들이 거의 없다. 이름 없이 스러져간 농민군들 역시 마찬가지다. 농민군 지도자의 전주 안장을 계기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일깨울 수 있도록 희생자의 유해 발굴과 묘역 조성, 추모공간 정비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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