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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정숙인 소설가 - 한창훈 장편소설 '꽃의 나라'

“마침내 총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더 이상 싸울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슬픔마저 무성영화처럼 비어버린 적막. 이팝꽃 흐드러진 5월의 광주, 바람결에 푸르게 빛나던 잎사귀들의 소란스러움을 떠올리는 것마저도 이상한 계절, 1980년의 봄이었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이 된 2020년 5월, 우리가 한창훈의 <꽃의 나라> 를 찾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복되는 재생에서 멈춰버린 흑백의 기억을 ‘나’만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미워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래지 않아, 사령관은 대통령이 되었다. 내 기억은 거기까지이다.”

<꽃의 나라> 의 마지막은 그렇게 끝난다. 한창훈이 굳이 열일곱 살에서 열여덟 살의 ‘나’의 성장을 통해 정말 이상한 1980년 5월을 진술한 이유는 작가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는 ‘희망’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누렇게 삭아버린, 한 번도 지키지 않았던 생활계획표 같은 것이다. 내가 믿는 것은 미움이다. 미움의 힘이다. 우리가 이렇게 앓고 있는 이유는 사랑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보다, 미워할 것을 분명하게 미워하지 않아서 생긴 게 더 많기 때문’이라고.

한창훈의 <꽃의 나라> 1부는 온통 이상한 사람들 투성이인 ‘나’의 세계를 다룬다.

2부는 1980년 5월의 진실을 담고 있다. ‘나’가 열여덟 살이 되는 2부의 봄에서, ‘최소한 자신의 말과 행동이 일치한 어른’인 생물교사에게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라고 묻는다.

교사는 다시 그의 선생님을 찾아가 ‘알래스카 개’의 이야기를 듣는다. ‘사람들이 물러가라고 외치는 사령관이 만들어낸 짓’, ‘그 사령관에게 필요한 공포와, 그것을 만들어내는 혼란’을 겪는 동안 ‘나’는 그들이 원한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 숱한 죽음의 공포는 죽음을 일상의 풍경으로 만들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싸우게 한다. 슬픔도 애도도 사라진 극한의 공포는 글의 마지막까지 슬픔을 허락하지 않는다. 진실을 진술하며, 감상에 빠진 감정의 피로함만으로는 이상한 역사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듯.

 

* 2017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으로 등단한 정숙인 소설가는 역사를 마주보는 소설 쓰기에 관심을 갖고 있다. 작품으로는 단편소설 ‘백팩’과 ‘빛의 증거’와 채록집 <아무도 오지 않을 곳이라는, 개복동에서>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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