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책상 서랍을 뒤지다가 발견된 사진 한 장, 뉴욕의 전위적 클럽에서 예술인들이 즉흥적으로 연주하며 노는 장면이었다. 벌써 3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르고 있었다.
1992년 나는 전남대에서 연구비 지원을 받아 뉴욕으로 향했다. 80년대 미국미술을 연구하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쟝 미셀 바스크아나 키이쓰 해링 같은 낙서 화가가 혜성처럼 떠올라 영향을 미쳤던 본거지를 찾아 실제 상황을 파악하고 싶었다.
마침 뉴욕에는 전위미술가 정찬승 선배가 체류하고 있었다. 여행으로 왔다가 불법체류로 남아 현지에 스튜디오를 내고 정크 아트를 본격적으로 시도하고 있었다. 그 선배의 안내로 나는 브루클린의 예술적 장면들을 속속들이 볼 수 있었다.
사진의 장면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젊은 마리아노가 폐 공장 건물에 전위적 클럽을 만들었을 때의 모습이다.
당시 내가 적은 글에는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브루클린에 사는 전위예술가 마리아노는 주목할 만한 사람이다. 그는 매주 벌이는 음식파티가 곧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각국의 문화는 각국의 음식을 맛보면서 깊게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리아노는 브루클린에 퍼포먼스 클럽을 만들었는데, 이곳에는 언더그라운드 계통의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누군가의 쇼를 보며 음식을 먹고 춤을 춘다. 공연장 내부는 마리아노가 좋아하는 금속성의 색채가 사방의 벽과 천장까지 발라져 있다. 그곳을 푸른 빛 나는 광선이 섬광처럼 비춘다. 음악도 전위적이다. 여러 개의 음악을 합성한 것이 그때그때 만들어져 들리는가 하면 동시에 다른 구석에서는 온갖 기물을 마구 두들겨대는 불협화음이 튕겨져 나온다.…’
예술적 자유와 실험을 만끽하던 뉴욕의 언더그라운드 작가들이 새삼 부럽게 다가온다. 이러한 기반이 있었기에 낙서화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떨치는 작가들이 나타날 수 있었다. 이러한 예술적 토대를 갖고 있었기에 뉴욕은 세계적 미술 중심지로 떠오를 수 있었다. 세계적 예술 중심지는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예술 인프라를 그럴 듯하게 구축해도 못하는 것이 있다. 예술적 자유를 만끽하며 심장을 뛰게 하는 강력한 창의적 동력은 제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기반을 키울 수 있는 아량과 눈에 보이지 않는 역량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나는 전주가 그러한 동력을 키울 수 있는 문화적 도시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직 그 마당이 너무 협소하고 미약하다. 마음 놓고 예술적 활동을 펼칠 수 있는 마당이 힘을 가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과감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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