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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진 기자의 예술 관람기]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

엘리자베스 1세 초상화 /사진제공=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
엘리자베스 1세 초상화 /사진제공=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

독일의 문호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실로 매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저자(著者)들 자신의 정신이다. 이 세계! 인간의 마음과 정신!”이라고 시대정신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럼 얼굴이란 무엇일까. 얼의 골짜기 또는 굴로서 한 인간의 정신과 넋, 혼이 담긴 오묘한 대상이다. 오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각 분야에서 인류사에 길이 남을 인물들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Icons and Identities)’란 제목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화 전문 미술관인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의 전시품 78점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특별전이다.

전시는 영국이 낳은 ‘한 시대가 아닌 만세를 위한’ 희곡작가 셰익스피어를 제일 앞에 내세웠다. 그는 뛰어난 시적 상상력과 넓고 깊은 인간성에 대한 통찰력, 놀라운 언어구사력과 다양한 무대를 형상하는 능력 등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극작가다.

영국의 걸출한 군주, 엘리자베스 1세를 빼놓고 인물을 논할 수는 없다. 부왕 헨리 8세의 잦은 재혼으로 불안정한 위치에 처한 엘리자베스 1세는 이 세상에서 아무도 믿지 못해 평생 가족을 만들지 않고 고독한 삶을 살다 갔다. 하지만 그녀는 열강의 위협과 종교적 갈등을 극복, 16세기 초 당시 유럽의 후진국이었던 잉글랜드를 세계 최대 제국으로 만드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녀의 초상화는 섬세하지만 무표정한 얼굴보다는 의복과 보석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의복의 색깔을 검은색과 흰색을 채택, 불변과 순수라는 이미지가 ‘처녀 여왕’과 잘 맞고, 불사조 모양의 보석을 착용하여 권력과 권위를 돋보이게 했다.

많은 인물의 초상과 사진 중에서도 근현대에 들어서면 입체파의 영향을 받은 초상화가 눈길을 끈다. 바로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 중 한 명인 T.S 엘리엇의 초상화다. ‘4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하는 시 ‘황무지’는 현대문학의 시금석이 된다. 그를 그린 화가 패트릭 헤런은 “위대한 작가의 회색 눈을 바라보며 우주에서 가장 인지력이 뛰어난 눈을 들여다보고 있음을 알았다”고 회상한 바 있다.

흑백사진으로 된 초상의 인물들도 눈에 띈다. 인종차별을 종식 시킨 남아프리카 대통령 넬슨 만델라, 60년대를 풍미했던 록 밴드 비틀즈, 명화 ‘로마의 휴일’로 일약 전 세계적인 스타가 된 젊은 오드리 헵번의 사진 등이 있다. 귀족보다 더 귀족적인 오드리 헵번의 모습이 그립다.

초상화를 본다는 것은 ‘그림 속 인물을 바라보고 만나는’ 시각적이고 심리적인 경험을 동시에 하는 일이어서 흥미진진했다. 사람을 만나면 얼굴과 눈을 깊이 들여다보는 습관이 최근에는 사라졌다. 매력적인 사람이 사라진 세상이 된 것일까. 아니면 매력을 느끼는 감각이 무뎌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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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진 bom@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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