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예이츠(Anna-Yates)
이 상황은 아마 코로나 시대 모든 공연자의 악몽이겠지요. 원래 계획된 공연은 촉망받는 소리꾼 정보권과 국립창극단 단원인 김준수·유태평양이 함께 하는 흥보가였는데, 두 소리꾼이 자가격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생기면 대개 공연을 포기했을 텐데 혼자서 무대에 서보겠단 정보권 소리꾼의 의지가 정말 대단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정보권의 눈대목 다섯바탕이 만들어졌습니다.
축제를 며칠 앞두고 급하게 만들어진 만큼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수궁가 중 토끼 잡아가는 대목은 자진모리 대목으로서 고수와의 합이 중요하지만, 다른 대목에 비해 살짝 합을 놓친 부분이 보였습니다. 그래도 정보권 소리꾼의 뛰어난 소리 실력과 훈련된 연기는 유감없이 발휘되었습니다. 특히 뺑덕이네 연기를 하이라이트로 뽑고 싶습니다. 무대 3면에 있는 관객 모두와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발림과 표정으로 어려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면서 함께 웃고, 울고, 즐기며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은 여기서 무대 연출이 살짝 아쉬운 면이 있었습니다: 큰 공연장이 아닌 곳에서 굳이 공연자 모습을 큰 배경으로 보여줄 필요가 없었던 것 같고, 오히려 공연 몰입에 방해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정보권 소리꾼은 본인 소리만으로 무대를 충분히 채울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는데, 배경을 좀 더 단순하게 구성했으면 좋았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연 형식은 처음에 조금 낯설었습니다. 이렇게 개인 생활과 생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이사이 소리하는 형식은 국악계에는 아직까지 그렇게 흔하게 사용하는 형식은 아닙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식으로 정보권 소리꾼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줘서 아주 좋았습니다. 앞으로 이런 무대를 통해 사람들이 판소리에 대한 두려움을 좀 덜어냈으면 좋겠단 마음입니다. 마찬가지 이 무대에서 한복이 아닌 양복을 입고 나타난 정보권 소리꾼의 모습이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2014년 저는 정보권 소리꾼처럼 처음으로 전주소리축제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때 새로운 실험을 선보인 <청 alive> 개막공연에서 화려하게 아이돌 의상을 입은 그의 모습이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7년이 지난 뒤 이렇게 양복을 입고 소리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느껴져 시대가 확실히 바뀐 것을 느낍니다. 청>
“판소리 하는 사람들도 현대 사람이다”란 메시지를 확실히 갖고 있는 공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통 방식으로 소리를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히 소리축제 같은 큰 무대에서 소리꾼들이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앞으로 다른 소리꾼들도 자기 발전을 위해 충분한 자극을 받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정보권, 김준수, 유태평양 세 소리꾼의 흥보가를 많이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다음 세대의 명창이 될 세 분의 시너지가 대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면서 소리에 대한 열정과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무대를 만들어낸 정보권 소리꾼에게 더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다음 무대를 기대하겠습니다.
안나 예이츠는...
2020년에 서울대 국악과 음악인류학 조교수로 임용됐다. 「오늘의 판소리:현대사회에서 전통과 창조성을 조화시키면서」란 논문으로 런던대학교 아프리카 아시아 연구원 (SOAS)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 민혜성에게 사사했으며, 판소리를 널리 알리고자 다양한 공연을 하며 유럽과 한국에서 활동 중이다. 한국전통음악의 보전과 진흥의 주제로 다양한 논문을 발표했고, 국악인과 젠더, 패션, SNS 활용방법 등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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