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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오은숙 작가 - 김다연 '우연히 잡힌 주파수처럼, 필라멘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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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연 - <우연히 잡힌 주파수처럼, 필라멘트처럼>/사진=교보문고 홈페이지

『우연히 잡힌 주파수처럼, 필라멘트처럼』을 읽고

나는 자주 부끄럽고 지난한 삶에 짓눌려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곤 한다. 지병이 되어버린 무기력증은 스무 살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젊은 날의 나는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어떤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으련다”고 고백한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을 외우며 무기력증을 떨쳐내곤 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시인의 고백은 내게서 힘을 잃었다. 무기력증이 엄습할 때마다 삶의 동력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몰라 버둥대다 바닥이다 싶을 때까지 내려간 뒤, 겨우 올라오기를 반복하였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무기력이 일상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어느 날, 김다연 시인의 시집 『우연히 잡힌 주파수처럼, 필라멘트처럼』을 만났다.

무얼 해도 기운이 나지 않았기에 시를 통해 어떤 영감을 받고 삶을 치유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책장에 꽂아져 있던 파스텔블루 표지의 『우연히 잡힌 주파수처럼, 필라멘트처럼』이란 시집이 제목처럼 내 손에 우연히 잡혔을 뿐이었다. 그렇게 펼친 시집에서 “머리와 가슴 사이/우물이 있다//생각은 짜고/감정은 차갑다//두레박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좋았으리,//그것만 퍼내면/된다”는 「시인의 말」을 접하고 순간, 멈칫했다. “두레박에서 떨어지는 물소리”, “그것만 퍼내면/된다”고 말하는 시인이 나를 꾸짖는 듯했다. 절망하지 않으려고 욕망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으려고 차가워진 감정. 해서, 무기력한 삶을 어찌하면 좋을 것이냐고 반문하는 것도 같았다.

어찌 살라는 것인데, 하며 다소 공격적인 마음으로 첫 시 「은행잎지전나비」를 읽었다. “새살이 밀어내는 딱지처럼 몸속의 푸른 독毒 뿜고서” 살아가고 있다 생각하면 더욱 무기력해질 뿐인데 시인은 “이 얼마나 눈부신 날개인가?”라고 말했다. “밤마다 가려운 쪽으로 기우는 나무,”가 나임을 알기에 뒤척임 없이 잠들었다가도 가려워 깨고 마는데 시인은 또 노래했다. “상처 아물리던 그늘이 날개였음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울컥’을 삼키자/코뚜레가 뚫렸다”로 시작하는 「38도9부」에서 시인은 내게 보여주었다. 살아 있어 느끼는 절망과 고통 속 열병 끝에 있는 것은 무기력이 아니라고. “손가락을 내 머리에 겨누는 버릇이 생겼”다 해도 “빈 총에 쓰러져줄 줄 아는 애인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 놓지 않으니 「방아쇠 증후군」은 희망이었다. 시집을 끝까지 읽고 난 후에는 무기력증이 사라졌고 “여그가 그라고 안 좋다 안 흡디요!”「뭐뎌」라며 다시, 삶을 긍정하게 되었다. 

만약에 당신이 나와 같다면, 시집을 펼치고 글자를 읽어 나가자. 오독(誤讀)하여 더욱 좋았던 「아카시아」를 비롯해 「한도를 초과한 말」, 「가라앉히다」, 「정지론」 등 많은 시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문신 시인의 해설과 김유석 시인의 추천 글도 당신을 맞을 것이다. 어떤 시는 분명, 당신의 삶에 『우연히 잡힌 주파수처럼, 필라멘트처럼』 생기를 불어넣으리라 믿는다.

오은숙 소설가는

202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납탄의 무게’가 당선돼 소설가로 등단했다. 공저로는 <1집 스마트 소설>,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은>, <2021 신예작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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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숙 #김다연 #우연히 잡힌 주파수처럼 필라멘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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