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군산에서 출생. 군산 중앙초 6년때 일본 후지코시 공장 강제동원
16일 코로나로 별세. 평소 고향인 군산에 안착하고 싶다고 전해
21일 군산시승화원 추모관 봉안 예정. 수양아들이 봉안 진행
최근 정치인들의 식민사관이 논란을 부르고 있는 가운데 군산 출신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인 김옥순 할머니가 끝내 한을 풀지 못한채 고향인 군산으로 돌아온다. 역사의 산 증인인 김 할머니는 코로나 등의 질병을 겪으며 지난 16일 향년 9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유가족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살아생전 고향인 군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천추의 한으로 여겼던 일본 전범기업 후지코시사와의 송사 결정을 끝내 보지 못한채 돌아가셨지만 유해는 군산시승화원 추모관에 안치된다. 수양아들로 불리는 민덕기씨는 19일 군산시와 승화원 안치를 협의했으며, 군산시는 역사의 산 증인인 김 할머니를 영원히 군산에 모시기로 했다. 수양아들 민씨는 사실 김 할머니의 친아들이라고 한다. 호적이 잘못돼 김 할머니는 혼자만 호적에 이름이 올라가 있고 아들인 민씨의 이름은 올라가 있지 않다는 것이다.
김 할머니는 19일 오전 10시 10분 서울에서 화장식을 진행할 예정이며, 유해는 오는 21일 오전 10~11시 사이 군산시승화원 추모관으로 옮겨져 봉안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군산시 조례에 따르면 군산 승화원은 군산시민이 아니면 유해를 안치할 수 없지만 강임준 군산시장이 조례에서 ‘시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인 예외규정을 들어 유해 안치를 결정했다. 끝내 세상을 떠난 뒤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김 할머니의 아픈 과거를 고향인 군산이 푸근하게 품겠다는 것이다.
1929년 군산 해망동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군산 중앙국민학교 6학년때인 1945년 4월경 근로정신대로 동원대 전범기업인 일본 후지코시 공장으로 강제 징용돼 항공기 부품과 탄피 등을 만드는 일을 했다. 근로정신대는 1944~45년경 아시아태평양전쟁 말기 일본이 노동력 부족을 충당하기 위해 군수공장에 강제로 동원한 미성년 여성들을 말한다.
당시 중앙국민학교는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제비뽑기를 했고, 김 할머니를 포함한 50여 명이 일본으로 징용됐다. 일본 후지코시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월급은 단돈 10원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게 민족문제연구소의 설명이다.
김 할머니는 2015년 4월부터 가해자인 후지코시를 상대로 다른 피해자 22명과 함께 한국과 일본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해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김 할머니가 소를 진행하며 억울하고 분해하셨다고 전했다.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019년 1월 18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으나, 피고인 후지코시 측이 상고해 3년 8개월째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김 할머니를 포함해 후지코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1~3차 소송의 원고(피해 당사자) 23명 중 13명이 별세해 현재 10명이 생존해 있다. 서울 종로구 돈의동 주민협동회는 종로구 돈화문로9가길 12-2번지에 분향소를 마련해 19일 오후 6시까지 운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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