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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가왕歌王 송흥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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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흥록 생가/사진=대한민국 구석구석 제공

송흥록은 조선 정조 때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비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나이에 비해 기골이 장대하고 재주와 슬기가 출중했다. 6세부터 서당에 다니며 글공부를 했는데 학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에게 판소리 춘향가를 배웠다. 당시 그의 명석(明晳)함을 아낀 서당 훈장은 “네가 양가에 태어났으면 장차 큰 인물이 될 터인데 참으로 아까운 일이다.”라고 총명함을 칭찬했으며, 판소리에서도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두서너 번 만에 소리를 듣고 모두 따라 했다고 전한다. 이에 서당에서는 그의 총기(聰氣)과 예술적 재주에 ‘신동(神童)’이라 불렀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가무보살의 시현(示現)이다’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송흥록은 12세 때 집에 우연히 들어온 탁발승의 조언을 듣고 출가하여 백운산 암자의 월광 선사에서 학습하게 된다. 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선사 아래 폭포수 암반에 앉아 춘향전을 수백 번 반복하며 학습하였고 선사에게는 틈나는 대로 한문을 배웠다. 그 당시 선사는 큰 가르침을 주었는데 <말과 음의 조화를 이루는 창법을 알아야 하고 귀성이 낀 소리, 맵시 있는 너름새, 오음(五音)과 육률(六律)을 명확하게 분별하는 이른바 득음(得音)을 완전하게 구사하며, 사설의 발음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연마를 하되 소리 밖의 소리가 있고, 장단 밖에 장단이 있으니 그 도리를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네가 지금 부르는 춘향전 사설이 너무 조잡하니 모든 가사를 정리하고 이를 집대성하라>란 큰 깨달음의 진언(眞言)이었다. 이에 송흥록은 크게 깨우치고 모든 춘향전 가사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더불어 자신이 지니고 있던 음악적 기교를 사설에 맞게 수정하며 스승의 가르침을 따른다. 또한, 고전에 전해오는 별주부전(수궁가), 변강쇠타령, 적벽가 등을 창작하고 집대성하여 큰 업적을 남긴다. 송흥록은 이렇듯 노력과 공력을 쌓아 입산한 지 10년 만에 득음 대성하였고 많은 권력가와 민초의 사랑을 받는 명창이 된다.

송흥록은 많은 전설과 신화를 남긴 명창이다. 그는 무슨 소리든 헛되이 듣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날아가는 새, 부는 바람, 흐르는 물, 달리는 짐승의 소리까지 귀를 기울이고 연구와 고민 그리고 연습을 반복했다. 즉 모든 만물이 평생 연구 대상이었다. 훗날 헌종 임금의 총애를 받았던 모흥갑도 송흥록을 가왕(歌王)이라 떠받들고 스스로 물러간 것만 보더라도 송흥록의 소리와 격조는 가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이라 하겠다.

송흥록은 어느 날 경상감영의 부름을 받고 선화당에서 <옥중가>를 부르게 된다. 그 당시 경상감영의 기생이었던 맹렬이란 기생이 있었는데 송흥록의 자태와 절세(絕世) 기예에 넋을 잃고 그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 다음 주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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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흥록 #가왕 #판소리 #월광선사 #전라북도 #남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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