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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카르텔과 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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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정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 공생문화팀장

얼마 전, 전국적으로 유례없는 홍수를 겪었다. 궁평 지하차도 참사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발생했다. 어릴 적 겪었던 한 철 ‘장마’가 아니라 ‘도시 재난’으로서 홍수를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이른바 ‘물의 재난’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 기분을 더 심란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정부의 대응이었던 것 같다. 홍수 직후 해외 순방에서 돌아온 대통령은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에 대한 보조금을 전부 폐지하고 그 지원으로 수해복구와 피해 보전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최근 들어 ‘이권 카르텔’에 대한 언급을 마주하면 피로감이 밀려온다. 노조·시민사회에 이어 입시까지 ‘카르텔과의 전쟁’에 휘말렸다. 가뜩이나 경제도 어려운데 ‘국민의 혈세’가 기득권 혹은 특정 세력에게 ‘남용’된다는 정부의 언급은 언론을 통해 자극적으로 소비됐다. 정부,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모두 마찬가지다. 그런 것을 보면 한편으로 ‘카르텔’이라는 의미를 대체 제대로 알고 쓰는 것일까 의문도 든다. ‘카르텔’의 사전적 의미는 이윤 극대화를 위해 경쟁을 제한하는 담합을 맺고 독점하는 형태를 말한다. 분야에 따라 특수한 카르텔이 있을 수 있지만, 지금 논란이 되는 정치 현안에서 카르텔을 운운하는 것이 적확한 표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자극적인 표현으로 서로를 공격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인정하지 않고, 비난하고 공격하기 위한 자극적인 말.

물론 이러한 문제는 비단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몇 가지 정치 사안이나 바뀌고 있는 운영방침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는 국가든 지자체든 정권이 바뀌면 모든 곳에서 규모는 다르지만 비슷하게 겪는 문제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데 있어서 원색적인 비난과 단호한 결단력만이 답일까? 과거 한때는 무조건 리더의 의지와 뜻을 관철하는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이 덕목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떠했나? 대부분 성장, 개발, 발전이라는 목표에 가려져 많은 갈등을 등한시했고 그때 해결되지 못한 것들은 상처로 곪아 첨예한 갈등, 불신과 같은 더 크고 새로운 문제를 야기했다. 

결국 우리가 문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진짜 필요한 것은 느리더라도 효과적인 해결책이다. 의사결정에서 배제되었다고 느끼는 주체들은 억울함과 불안함을 느낀다. 설문조사나 단발성으로 진행되는 형식적인 공청회는 이런 불안과 불만을 잠재우지 못한다. 지금까지 주민이나 주체를 단순히 어떤 정책의 수혜자, 결정에 필요한 숫자로 파악하는 형식적인 거버넌스는 해결 방법이 되지 못했다. 제시된 과학적 증거, 전문가의 견해, 계량화된 수치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탓하는 게 옳은 방법이었을까? 상호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아무리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해도 무력할 수밖에 없다. 첨예한 갈등일수록, 충분한 토론과 합의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이유다.

우리의 과제는 명확하다. 의사결정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아닌,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시민, 이해관계자들이 충분한 토론과 숙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기다려 주는 일이기도 하다. 이제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일수록 한 사람의 단호한 결단력, 자극적인 수단보다는 충분한 토론과 숙의, 느리더라도 효과적인 해결책을 선택해야 한다.

/오민정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 공생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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