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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여름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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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정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 공생문화팀장

아마도 2023년 여름은 잔인한 계절로 기억될 것 같다. 하루 걸러 하루 꼴로 뉴스에는 지금껏 들어보지도 못한 범죄들, 자극적인 이슈로 떠들썩 했다.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7월부터 8월까지 이어진 ‘묻지마 범죄’들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온라인 상으로 무차별 살인 예고가 돌았고, 뉴스가 퍼지자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과 단톡방에서도 난리가 났다. 한편으로 그날 내가 있는 곳이 예고 지역이 아니라는 데에 약간 안도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에 뭔가가 굉장히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가 치안 강국이라고 그렇게 떠들지 않았나. 대체 무엇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묻지마 범죄’는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구체적인 동기 없이 저질러지는 범죄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동기 범죄’, ‘이상동기 범죄’라고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묻지마 범죄’를 보며 불안을 느꼈던 건, 마치 폭력성이 전염이라도 되는 양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진 모방 범죄 예고, 그리고 ‘장갑차’가 등장한 거리의 풍경 때문이었다. 정부는 일련의 사건들을 ‘테러’로 규정하며 ‘특별치안강화’ 및 ‘머그샷 강제 공개’를 대응책으로 내세웠다. 법무부는 사법입원제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검토하고 있다. 대통령은 경찰에게 ‘저위험 권총’ 보급을 확대하고 흉기대응 장비를 지급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이러한 대응책이 정말 ‘묻지마 범죄’를 과연 예방하는데 얼마나 유효할까? 

전문가들은 ‘묻지마 범죄’라는 용어를 쓰는 것부터 잘못됐다고 말한다. 범죄 발생동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찾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범죄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원인을 ‘사이코패스’, ‘조현병’같은 정신장애나 질환으로, 정확한 인과관계를 찾을 수 없는 개인의 특성을 마치 윤리적인 문제로 몰아가고 배제와 차별의 담론을 재생산한다. 그런데 이게 정말 범죄의 근본 원인일까? 그것은 확실하지 않다. 

정부가 내놓은 대응책들이 효과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들은 위력을 통해 범죄 발생을 억누르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는 또 다른 불안감을 조성한다. 인권을 침해하고 공권력이 남용되지 않는다는, 내가 그 무고한 피해자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범죄를 막는 데 치한 강화는 필요하다. 아마 당장 범죄가 발생하는 시점에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시점에서 형량과 징벌적 대책들은 당장 사람들의 동의를 얻기는 쉬울 것이다. 하지만 억누르기만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위기에 직면했을 때, 치안강화와 두 가지 대책이 같이 추진되어야 한다. ‘묻지마 범죄’들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대응하려는 노력, 그리고 시민들의 불안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노력이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고립’이 ‘묻지마 범죄’, 그리고 이를 모방한 유사 모방범죄의 근본 원인이라고 말한다. 특히 이 유사 모방범죄들이 실제 범죄로 이어지기보다 대부분 익명성에 기대 관심을 끌기 위한 범죄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사회적 고립’이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라는 점에서 들여다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공일랩(01ab)의 사례에 주목해볼 수 있다. 대학생 네 명이 만든 사이트 ‘테러리스’는 온라인에 올라온 범죄 예고 지역을 표기하고 검거현황 및 허위정보인지 진위를 알려준다. ‘묻지마 범죄’를 막을 수는 없지만, 사전에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시민들의 불안을 덜어준 사례다. 어쩌면 위기에 빠진 우리의 불안을 덜어주는 건 경찰의 ‘저위험 권총’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무엇보다 이런 대응매뉴얼, 정보에 대한 공유일지도 모른다. 

/오민정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 공생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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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정 #청춘예찬 #여름 #묻지마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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