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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대체불가한 ‘그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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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새롬 작은새책방 대표

가끔 큰 도시에 살다가 정읍으로 이주해 온 손님들을 만난다. 작은 책방의 존재가 신기한지 ‘원래 정읍 사람이냐’ 하는 질문의 다음은 어쩌다 정읍으로 이주하게 되었는지, 없는 것들이 많아서 불편하지는 않은지 등등이다. 각자의 불편함을 토로하기에 앞서 나오는 문장은 ‘여기에는 그런 게 없잖아요.’ 인데, ‘그런 것’의 존재는 지역의 인구와 직결된다. 정읍시 규모에서는 유지가 불가한 종류들이다. 그리고 그 종류는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다양한 취향을 유지하려면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절대적인 수가 필요하다. 손님과의 대화는 여기에서 조용히 다른 화제로 넘어간다. 누군가에게는 음식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물건일 수도 있고 혹은 무형의 분위기일 수도 있는 ‘그런 것’의 부재를 채우는 ‘다행인 것’이 있기에 정읍에서의 삶을 꾸릴 수 있다 하는 소소한 만족을 주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각자의 ‘다행인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의 경우에는 마당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우리집 마당의 잡초를 대신 뽑아주는 엄마가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마당이 있는 집에 살면서 얻은 행복은 그 비웃음을 견뎌내고도 남을 만큼 매우 크다. 단순히 취향을 만족시키는 ‘그런 것’들과의 일상을 포기하는 기회비용이 겨우 마당이라고 하면 공감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때때로 나를 둘러싼 환경이 어떤 존재를 특별하게 만들어 줄 때가 있는데, 마당이 생긴 직후에 코로나 펜데믹이 발생했고 우리의 경계는 어디까지였을까 떠올리면 이 이야기기가 조금 더 설득력을 얻게 될 것 같다. 마당이 주는 기쁨이 단순히 취향을 포기하고 자연과 가까워지는 삶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 

코로나 펜데믹 때문에 시작한 마당에서의 시간이 처음에는 내게도 ‘다행인 것’이었다. 지금은 대체불가한 ‘그런 것’이 되었다. 사실 마당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들은 1년에 몇 일 되지 않는다. 그런데 짧아서 소중한 그 날들이 주는 기쁨은 어디에서도 구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따뜻한 볕이 들기 시작하는 3월에서 5월, 여름의 더위가 벌레들의 극성이 살짝 사그라드는 10월에서 11월 사이, 문을 활짝 열고 마당과 거실, 부엌을 오가며 안팎을 자유롭게 누린다. 조금은 좁은 듯 했던 실내가 확장되고, 볕과 공기를 마음껏 즐긴다. 일부러 마당에 상을 차려 이웃과 친구를 초대하고, 계절이 주는 축복을 마음껏 누린다. 볕에 타는 것도, 벌레도, 까끌거리는 모래나 흙이 집안에 들어오는 것도 질색했던 나는 이제 앞장서 마당으로 통하는 문을 활짝 연다. 누구에게든 정읍에서 살면서 없으면 안 될 ‘그런 것’의 존재를 자랑할 수 있다.

얼마 전 서울에 갔다가 경복궁 뒤 인왕산을 보고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서울에 살던 때 광화문의 풍경은 광화문과 그 앞 8차선, 광장이 전부였다. 늘 차가 빽빽하게 밀리던 도로였고, 사람이 많은 광장이었다. 뒤로는 빛나는 야경을 보러 올라가는 곳에 불과했던 인왕산 기슭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하늘을 배경 삼은 인왕산이 보인다. 계절에 걸맞는 푸르름이 보이고, 그 아래 사람과 건물과 차들이 뒤섞인 혼돈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당이 없었더라면 결코 알 수 없었을 세상 속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의 방식을 바꾸면 보이는 것들도 달라진다.

/유새롬 작은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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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새롬 #작은새책방 #대체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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