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을 첫 장을 열며 나는 스스로를 유배 보내듯 남행길에 올랐다. 도시의 소음이 채 가시지 않은 새해의 초입. 화려한 덕담과 떠들썩한 건배사가 난무하는 세상을 뒤로 하고 홀로 제주도를 찾은 것은, 내 안에 고여 있는 낡은 질문들에 답하기 위함이었다.
그 여정의 시간 동안에 제주의 거친 바람을 정면으로 ‘미래’라는 막연한 섬과 ‘나’라는 깊은 심연을 탐색하기로 했다.
이른 아침부터 제주의 속살을 닮은 섭지코지의 언덕에 섰다. 그곳은 단순히 빼어난 경관을 가진 관광지가 아니었다. 깍아지른 절벽과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 사이로, 인생이라는 거대한 풍경화가 실시간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갓 피어난 꽃처럼 싱그러운 신혼부부였다. 바람에 날리는 신부의 하얀 베일과 그를 바라보는 신랑의 수줍은 미소는 이제 막 시작된 봄의 햇살 같았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파도 소리에 섞여 은하수처럼 반짝였고, 미래라는 단어는 그들에게 오직 찬란한 빛으로만 존재하는 듯 보였다. 그 풋풋한 생동감을 보며 나는 잠시 잊고 있었던 생의 설렘을 떠올렸다.
하지만 내 시선이 오래도록 머문 곳은 그들 너머,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입은 어느 60대 노부부의 뒷모습이었다. 두 손을 꼭 잡은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그들의 눈빛에는 세상 그 어떤 보석보다 깊은 사랑이 일렁이고 있었다.
남편의 야윈 어깨를 감싸 쥔 아내의 손길은 간절했고, 아내의 눈물 자국을 가만히 손가락으로 훔쳐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고맙소, 이토록 아름다운 바다를 함께 봐주어서.”
그것은 비극이 아니라 완성에 가까운 아름다움이었다. 신혼부부의 삶이 화려한 유채꽃이라면, 노부부의 사랑은 모진 해풍을 견디고 바위에 붙어 핀 강인한 해국(海菊)이었다. 서로를 안아주고, 눈물을 닦아주며, 다가올 이별조차 사랑의 한 조각으로 품어 안는 그들의 모습은 내 가슴속에 잊히지 않을 한 폭의 인생 풍경화로 각인되었다. 미래를 준비하겠다고 떠나온 나에게 그들은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진정한 미래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곁에 있는 이의 눈물을 닦아주는 오늘 이 순간의 손길이라는 것을.
여행의 막바지, 제주의 허파라 불리는 곶자왈의 숲으로 들어갔다. 바위와 나무뿌리가 뒤엉켜 도저히 생명이 자랄 것 같지 않은 척박한 땅에서, 나무들은 서로를 놓지 않은 채 삶을 지탱하고 있었다. 미래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척박한 바위 위에 내린 인내의 뿌리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숲이다. 내 마음의 갈등과 불안 또한 곶자왈의 뿌리처럼 엉켜 있지만, 그것들이 결국 나를 고요히 일러주었다.
마지막 날, 제주를 떠나 다시 고향의 품으로 돌아오는 길. 비행기 창밖으로 내려다본 강진과 부안의 해안선이 제주와 닮아 있음을 느꼈다. 그동안 나는 제주의 바람에 씻어낸 맑은 눈과 노부부에게서 배운 숭고한 사랑의 무게를 안고 돌아왔다. 이제 나는 다시 일상의 전장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전의 내가 아니다. 홀로 떠난 여정의 끝에서 나는 비로소 내 마음의 진정한 주인과 조우했다.
2026년이라는 시간의 파도가 아무리 거칠지라도, 섭지코지의 그 노부부처럼 소중한 가치를 꼭 붙든 채 뚜벅뚜벅 걸어갈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다. 당신의 미래가 두렵고 마음이 길을 잃었을 때, 곁에 있는 이의 손을 한 번 더 꼭 잡아보라고. 그 온기 속에 우리가 찾는 모든 답이 이미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종순 수필가는 문학박사이다. 월간 종합문예지 <문예사조>와 <시조문학>을 통해 수필가와 시인으로 등단했다. 호원대 유아교육과, 우석대 교육대학원 유아교육과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창의숲 프로젝트 연구소 대표와 아이가 크는 숲 예솔 대표를 맡고 있으며 전주걸스카우트연맹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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