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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세계기록유산 미등재 기록물]

충남 태안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문장준역사’와 ‘창산후인 조석헌역사’

문장준역사 첫장.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조석헌역사 첫장.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충남 태안은 충청도에서 가장 격렬히 동학농민혁명이 전개되었고 단일지역에서 매우 많은 동학농민군이 사망한 곳이다. 태안지역 동학농민군은 9월 기포 이후 10월 28일 홍주성전투에 이르는 전과정에 참여하였는데, 그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 <문장준역사(文章峻歷史)>와 <창산후인 조석헌역사(昌山后人 曺錫憲歷史)>에 담겨 있다. 

특히 이들 기록물이 중요한 것은 동학농민혁명 이후 생존한 동학농민군들의 삶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장준·조석헌 두 사람 모두 1894년 11월 일본군이 태안지역에 들이닥쳐 동학농민군을 체포·처형하는 피바람이 부는 과정에서도 어렵게 살아 남아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이어갔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문장준역사 1894년 10월 1일.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문장준역사>는 충남 서산군 원북면 방갈리에서 출생한 문장준이 1894년 9월부터 1923년까지 직접 체험한 주요 사실들을 국한문체로 양면괘지 15면에 담아 냈다. 세월의 무게에 비해 많은 기록분량은 아니다. 이 기록은 충남 내포지역에서 자신이 체험한 동학 활동을 간추린 것으로, 태안 동학군 지도자들의 기포상황과 태안관아 공격 상황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으며, 홍주성 패전 후의 도피생활과 1897년 이후의 동학 지방조직 재건과정, 1906년 이후의 천도교 지방조직 등을 요약 기술하여 많은 참고가 되고 있다. 

이 기록물에 따르면, 문장준(?-1923)은 태안의 동학농민혁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한 인물이다. 그는 1894년 2월에 예포 대접주 상암 박희인의 지도로 동학에 입도하였다. 갑오년 기포 당시 동학 육임의 직임 중에 도집(都執)을 맡고 있었다. 방갈리 접주인 문장로(8촌 간)의 접에 속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0월 1일에 태안에서 기포한 뒤 내포지역 동학농민군이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10월 24일 승전곡전투, 홍주관아에서 파견한 관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한 10월 26일 예산 신례원 관작리전투, 충남 내포지역 동학농민혁명사에서 최대 전투였던 10월 28일 홍주성전투 등에 참전하였다. 

다행히 이들 전투에서 살아남아 해미를 거쳐 무사히 집에 돌아왔으나, 일본군이 태안에 온 11월 15일 민보군에게 체포되어 서산을 거쳐 보령 수영 감옥에 갇혀 있다가 11월 23일경 석방되어 다시 집에 올 수 있었다. 그러나 갈수록 민보군의 만행이 거세지자, 김선여를 비롯한 동지 5명과 가족을 데리고 태안에서 배를 타고 구사일생으로 피신하여 이리저리 떠돌다가 광덕산 만복골 등지에서 피난 생활을 하였다. 

이때 문장준과 같이 광덕산 만복골로 피신한 동학농민군은 이영규(1863-1915), 김봉호(1872-1954), 이선종(1875-1958), 함한석(1870-1938) 등이 있었다. 광덕산 만복골은 산이 높지 않으면서도 깊은 계곡으로 이루어진 곳인데, 태안에서 피신한 동학농민군들은 이곳으로 피신하여 집단 생활을 하다 다시 태안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또는 아산・예산 등지로 옮겨 살았다. 그러다 예산 간양리에 최종 정착한 뒤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1923년에 노환으로 작고하였다.

다행히 이와 같은 사실은 문장준이 1923년 사망하기 직전에 자신이 직접 체험한 태안 동학농민혁명의 기억을 <문장준 역사>라는 기록으로 남겨놓아 오늘에 전하고 있다.

조석헌역사 1894년 11월 1일.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창산후인 조석헌역사> 역시 1862년 11월에 서산군 원북면 신두리에서 태어난 조석헌이 1894년부터 1918년까지 경험한 공사관계를 양면괘지 142면 분량으로 정리한 회고담이다. 이 기록물은 1908년 11월에 처음 정리한 초고본을 1931년에 재정리하였다. 개정본에서는 초고본을 보완하면서 국문 표기들을 한자표기로 고쳐 성명과 지명을 알아보기 쉽게 했다. 

주로 1894년 10월에 태안·서산에서 기포한 과정과 여러 전투 상황은 물론, 1895년 이후의 해월 최시형의 도피과정, 그리고 동학 지도부의 동학 재건활동, 1906년 후의 천도교 충남 서부지역 활동 등을 기록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1895년 이후 해월의 피신경로는 어느 기록보다 자세하여 동학 후기사 연구에 좋은 참고자료가 되고 있다. 

이 기록물에 따르면, 조석헌(1862-1931)은 서산군 원북면 신두리에서 오위장(五衛將)까지 지낸 조응진(曺應振)의 네째로 태어나 자작농으로 넉넉한 생활을 하여 왔다. 1894년 3월에 동학에 입도하여 5월에 접주가 됐으며, 1894년 10월 기포부터 참전해 승전곡전투→신례원전투→홍주성전투 등에 참가한 뒤 혼자 떠돌다 우연히 대접주 박희인을 만나 같이 동행하면서 지극정성으로 박인호를 모시면서 동학의 맥을 이어갔다. 데

그러나 그의 도피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한 때는 천안 목천 남면 초정리와 경북 상주 화북면 장암리 등등 여러 곳에 숨어살며 모진 고생을 겪었다. 그런 와중에도 대접주 상암 박희인의 뜻을 받들어 해월 최시형의 은신처를 찾아다니며 서해지방의 여러 산물들을 공급하는가 하면 연락 임무도 담당했었다. 해월 최시형이 순도한 후인 1898년부터는 동학 재건에 힘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는 이곳저곳을 옮겨 살면서 끝내 태안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1915년에 예산 간양리에 정착하여 천도교에 헌신하였다. 1923년경에는 천도교 예산군 종리사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31년에 동학과 함께 한 생애를 마감하였다. 다행히 힘겹고 불안한 삶 속에서도, 그는 1908년부터 세 차례 수정 보완하여 태안 동학농민혁명과정과 그 이후 행적을 정리한 <조석헌 역사> 전기를 남겨놓았다. 이 기록물은 태안 동학농민혁명의 진실을 말해주는 기억의 창고로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이처럼 <문장준 역사>와 <창산후인 조석헌역사>는 태안 동학농민혁명사를 구체적으로 증언해주는 기록물로서 매우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이에 기초하여 태안 동학농민혁명의 전개과정과 성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태안 동학농민혁명의 실상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더 생생히 엿볼 수 있게 되었다. 두 사람의 회고담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태안 동학도들이 목숨 바쳐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것은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는 인내천의 나라, 모든 사람이 주인이 되는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었기 때문이다. 

이들 기록물은 동학농민혁명 태안기념사업회(회장 문영식)에서 2006년에 <북접일기-태안접주 조석헌과 문장준의 동학농민혁명 일기>로 번역 출판하였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아카이브에도 탑재되어 있어 누구나 손쉽게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이들 기록물은 동학농민혁명에서 생존한 동학농민군의 생애 회고담이라는 점에서 활용도가 높을 것이다. 동학농민혁명 전후 역사를 통사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 생존한 동학농민혁명의 삶이 어떠하였는지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다는 점, 동학이 천도교로 발전한 밑바탕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 동학농민혁명 이후 파란만장한 근현대 역사 파도 위에서 민초들의 피나는 역경과 눈물겨운 삶을 반추해 볼 수 있다는 점 등은 이 기록물이 가지고 있는 큰 사료적 가치가 아닐 수 없다. 

다만, 회고담이라는 점, 그래서 주관적인 측면이 있고 생략되거나 망실된 부분들이 있고 상암 박희인의 활동에 국한되어 있는 점 등은 기록물이 가지고 있는 한계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 기록물의 가치는 여전하다. 이들 기록물을 기반으로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두 사람의 삶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나, 근현대 역사를 헤쳐나가는 두 사람의 투쟁적인 삶과 역경을 보여주는 영화가 제작되었으면 한다.

김양식(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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