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미술관을 유지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일이다. 다음 전시를 준비하고, 작가를 섭외하고, 홍보와 교육 프로그램, 시설 관리와 안전 점검까지 챙겨야 한다. 관람객이 전시장에 들어와 조용히 작품을 바라보는 순간은 아름답지만, 그 장면이 만들어지기까지 미술관 안쪽에서는 늘 예산과 인력,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함께 움직인다.
필자가 학예연구사로 일하고 있는 이당미술관은 군산에 몇 남지 않은 사립미술관이다. 지역 작가와 관람객을 연결하며, 군산 안에서 문화예술의 의미를 넓히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비영리로 운영되는 사립미술관은 공공미술관처럼 안정적인 운영 재원을 갖추기 어렵다. 전시 하나를 열기 위해서도 작품 운송비, 설치비, 홍보비, 인쇄비, 인건비 등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좋은 전시를 만들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실제 운영비 앞에서 자주 멈춰 서게 된다.
현장에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순간은 작가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드리지 못할 때다. 작가는 오랜 시간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한다. 한 작품 안에는 재료비와 노동, 시간, 삶의 고민이 담겨 있다. 하지만 지역의 작은 사립미술관은 작가비와 제작비를 충분히 마련하기 어렵다. 공모사업과 보조금 지원사업에 선정되면 전시와 프로그램을 풍성하게 꾸릴 수 있지만, 선정되지 못하면 계획이 축소되거나 미뤄지기도 한다. 그때마다 미술관 종사자로서 미안함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낀다.
그럼에도 문화예술 공간과 장기적인 예술 활동이 지역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놓을 수 없다. 일본 나오시마의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Benesse Art Site Naoshima)는 특정 미술관 하나의 성공이라기보다, 민간 기업과 재단이 오랜 시간 예술과 건축, 자연, 지역을 연결해 작은 섬의 이미지를 바꾸어 온 지역 재생의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물론 그 사례를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다. 거대한 숲을 이룬 나무와 이제 막 뿌리를 내리는 새싹이 같을 수 없듯, 지역마다 가진 여건과 규모는 다르다. 중요한 것은 규모나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지역의 문화공간이 작가를 꾸준히 소개하고, 외부 기획자와 연결하며, 시민과 관광객이 머무는 문화적 이유를 만들어낼 때 지역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이당미술관이 위치한 군산에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군산은 근대문화유산과 항구 도시의 정서, 오래된 건축물과 골목, 바다와 산업의 기억을 함께 품고 있는 도시다. 많은 사람들은 근대역사 거리와 시간여행마을, 원도심의 풍경을 통해 군산의 특별한 분위기를 경험한다. 여기에 지역 미술관의 전시와 작가의 작업이 더해진다면 군산은 과거를 보러 오는 도시를 넘어, 현재의 예술과 미래의 문화가 함께 움직이는 도시로 확장될 수 있다.
종종 관람객이 작품 앞에 오래 머무는 순간을 만난다. 어떤 이는 군산의 풍경을 담은 작품 앞에서 자신의 기억을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처음 보는 작가의 이름을 사진으로 남긴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미술관이 지역 안에서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음을 느낀다. 군산 관광 코스 안에 이당미술관의 전시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지역 작가가 군산의 역사와 풍경, 삶의 이야기를 현대미술로 해석하는 전시를 보여준다면 관람객은 지역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작가는 더 넓은 발표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도 미술관을 단순한 민간 시설로만 바라보지 않아야 한다. 행정은 작은 지원 예산을 넘어, 지역 사립미술관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지원 체계를 고민해야 한다. 지역문화 기반을 유지한다는 관점에서 운영비, 작가비, 교육 프로그램, 홍보와 관광 연계까지 함께 설계할 필요가 있다. 미술관 하나가 유지되는 것은 지역 작가의 발표 기회와 시민의 문화 경험, 도시의 이미지가 함께 유지되는 일이다.
학교와 시민단체 역시 미술관을 교육과 체험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학생들이 실제 작품을 보고, 작가와 만나며, 자신이 사는 도시를 예술적으로 바라보는 경험은 지역 정체성을 키우는 중요한 교육이 된다. 시민들도 가까운 미술관을 일상 속 문화공간으로 자주 찾아야 한다. 지역 기업도 전시 후원, 작품 구입, 작가 지원, 문화예술 프로그램 협찬 등을 통해 지역 예술 생태계에 참여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지역의 품격을 높이는 투자일 것이다.
나아가 지역의 사립미술관은 지역 안에만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지역 작가를 더 넓은 무대로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특히 중앙의 기획자, 평론가, 전시 공간과 협업하여 전라북도 작가들의 작품이 서울과 다른 지역에서도 소개될 수 있는 길을 넓혀야 한다. 이를 위해 미술관은 지역 작가의 전시를 꾸준히 기획하는 동시에 외부 기획자와의 협업 전시, 작가 교류 프로그램, 전시 기록과 아카이브 구축, 시민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또한 작가비와 제작비의 현실적인 지원 방안을 고민하며, 작가가 존중받는 전시 환경을 만드는 데 힘써야 한다.
또한 지역 발전과도 연결될 수 있다. 좋은 전시가 열리면 시민의 문화 향유 기회가 넓어지고, 외부 관람객이 지역을 찾게 되며, 주변 상권과 관광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건물과 도로만으로 도시의 품격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 도시가 어떤 예술을 품고 있는지, 어떤 작가를 기억하는지, 시민이 어떤 문화적 경험을 나누는지가 도시의 내면을 만든다.
물론 그 길은 쉽지 않다. 인력은 부족하고, 예산은 늘 빠듯하며, 관람객을 꾸준히 모으는 일도 어렵다. 그럼에도 사립미술관이 계속 움직여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누군가는 지역 작가의 작업을 기억해야 하고, 누군가는 지역의 가능성을 외부와 연결해야 하며, 누군가는 예술이 도시의 삶을 바꾸는 작은 순간들을 만들어야 한다.
필자는 미술관 종사자로서 앞으로도 지역 작가들과 함께 고민하고, 더 좋은 전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또한 중앙의 기획자들과 협업하여 전라북도 작가들이 더 넓은 무대에서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힘써 나갈 것이다. 사립미술관의 생존은 한 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문화의 지속 가능성과 맞닿아 있다. 가까운 미술관을 향한 시민의 한 걸음이 지역 예술을 지키고, 지역의 내일을 바꾸는 가장 조용하지만, 분명한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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