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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원인과 경위를 철저히 규명하고,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겠다” 대전의 한 자동차 부품 제조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과 관련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1일 현장을 방문, 이처럼 약속했다. 매번 유사한 참사가 반복되는 것은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뼈아픈 반성과 재발방지를 위한 시스템을 갖추는 데 게을렀기 때문이다. ‘인재’라는 한탄이 반복되는 이유다. 하지만 이젠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대통령의 엄중한 약속이 이번 일을 계기로 확실히 지켜지져야만 우리 사회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사실 이번 참사는 타 지역에서 일어난 남의 일이 결코 아니다. 전북에서도 타산지석 삼아서 꼼곰하게 챙겨야만 유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전북지역 산업단지에 있는 공장 중 상당수가 샌드위치 패널 구조로 돼 있다. 대전공장의 경우 근로자 14명이 숨지고 소방관을 포함해 60명이 다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샌드위치 패널 구조의 건물 형태와 공장 내부에 있던 나트륨 등이 꼽힌다. 공장 건물의 불법 증개축 여부등에 대해서도 철저한 수사가 진행중이지만 어쨋든 차제에 도내 공장에 대해서도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샌드위치 패널은 비교적 저렴하고 공사 기간을 확 줄일 수 있어 건축자재로 널리 쓰인다. 요즘엔 내연성을 크게 완비하고 있으나 과거엔 내부 충전재로 불에 약한 재질이 사용됐던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심지어 패널 내부에 전선 설비를 설치한 경우도 있어 언제든 화재에 취약한 상태다. 전북소방본부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최근 3년간 도내에서 발생한 샌드위치 패널 구조 건물 화재는 총 244건이나 된다. 결코 작은 수치가 아니다. 해법은 철저한 예방에 있으나 일단 유사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어야 한다. 내부 단열재를 교체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나 열악한 대다수 중소업체의 형편을 감안하면 쉽지 않기에 우선은 소방설비 규정을 강화해 스프링쿨러 설치를 확대해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비단 공장화재 뿐 아니라 산불을 비롯한 화재안전 전반에 대한 철저한 현장 점검과 대책이 즉각 시행되길 기대한다. 관계당국에서도 한번 더 챙겨야 할 때다.
완주·전주 행정통합이 이번 6·3 지방선거에서는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벌써 4번째 무산이다. 지방선거가 70일 앞으로 다가와 물리적으로 힘든데다 통합 논의에 진전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통합의 열쇠를 쥐고 있는 완주군의회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완주·전주 통합의 불씨를 꺼뜨려선 안 된다. 오랫동안 완주·전주는 한 몸이었고 생활권도 대부분 일치한다. 더욱이 광역시가 없고 소멸 위기에 처한 전북으로서는 구심체로서 완주·전주 통합이 절실하다. 후유증을 최소화하면서 불씨를 살리는 지혜를 가졌으면 한다. 최근 여론조사는 완주·전주 통합이 순탄치 않음을 예고하고 있다. 전북일보와 전라일보, JTV 의뢰로 케이스탯리서치가 지난 13일부터 14일까지 실시한 ‘완주-전주 통합 찬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완주 군민들은 통합에 대해 매우 반대 39%, 대체로 반대 20% 등 59%가 부정적이었다. 반면 찬성은 매우 찬성 19%, 대체로 찬성 16% 등 35%에 머물렀다. 연령별로는 40대와 20대에서 반대 의견이 가장 강했고 지역별로는 농촌 중심의 완주 북동부지역이 전주 인접지역보다 반대 성향이 뚜렷했다. 통합을 반대하는 이유는 실질적 통합 효과 의문, 자치 재정 악화 우려, 혐오 시설 이전 가능성 등이 꼽혔다. 이에 비해 통합에 찬성하는 측은 전북 경쟁력 강화와 경제적 효과, 지방 소멸 대응을 위한 광역화 필요 등을 들었다. 이러한 결과는 완주 군민들이 단순히 정서적인 거부감을 넘어, 통합이 가져올 실질적인 이득에 의문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반대 이유가 재정, 시설 이전, 개발 소외 등 구체적인 삶의 질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으로 통합을 재추진할 경우 이를 불식시킬만한 명확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면 여론을 되돌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통합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면서도 무산 뒤에 있을 후유증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일이다. 완주·전주 통합이 추진되었던 2013년의 경우 찬성과 반대단체 간의 갈등과 대립의 상처가 깊고 오래갔다. 그런 점에서 이번 통합이 성사되지 않았다 해서 양 지역의 화합에 찬물을 끼얹는 일은 삼갔으면 한다. 전광석화처럼 추진된 광주·전남의 행정통합을 반면교사로 삼고 긴 호흡으로 숨을 가다듬었으면 한다.
신문은 시간을 지키는 매체다. 그러나 어떤 사건은 그 시간을 무너뜨린다. 하루를 기다릴 수 없을 때, 신문은 스스로의 규칙을 깨고 거리로 나온다. 그것이 호외다. 호외(號外, Extra Edition)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임시로 발행하는 신문이나 잡지’다. 다시 말하자면 정기 발행 ‘호(號)’밖에서 찍어낸 신문으로, 속보를 위해 등장한 대중 매체의 한 형식이었다. 19세기 유럽과 미국에서는 전쟁과 암살 등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Extra!”를 외치며 거리에서 팔던 신문이 있었다. 아마도 그것이 호외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호외는 근대 이후 등장했다. 8·15 광복이 되자 ‘해방’ 소식을 알리기 위한 호외가 나왔고,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전쟁 소식을 급히 전달하는 매체로 발간됐다. 6월 민주항쟁 때의 호외는 정치적 전환기의 현장 기록이었으며, 2002 FIFA 월드컵 때 관중들의 거리 응원과 함께 쏟아진 것도 호외였다. 그러나 TV로 현장이 생중계되고, 인터넷으로 뉴스가 전달되고, 스마트폰으로 시간차 속보까지 전해지면서 호외는 점차 사라졌다. 호외는 이제 가장 빠른 매체에서 가장 느린 매체가 되었다. 최근 대통령 탄핵을 외치며 촛불을 들었던 거리 시위 현장에도 탄핵 선고 호외가 등장했지만, 인터넷 시대에서 그 존재감은 분명 예전과 달랐다. 뜻밖의 현장에서 호외가 등장했다. 지난 주말, 세계를 열광시킨 방탄소년단(BTS)의 광화문 컴백 공연에서다. 공연이 열린 광화문, 거리를 가득 메운 관중들은 BTS 특집이 실린 호외를 손에 쥐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공연이 중계되고, 화려한 영상과 사진이 끊임없이 공유되며 스마트폰으로도 정보가 넘쳐났지만, 예고 없이 뿌려진 종이신문은 관중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관중들은 읽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이 종이신문을 집어 들었다. 호외는 더 이상 소식만을 전하는 매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 자리에 있었음을 증명하는 기념품이자 시간을 붙잡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 이날의 호외는 읽히기보다 남기기 위해 만들어진, 누군가의 시간을 기억하고 증명하는 물건이 되었다. 뉴스를 넘어 기억이 되었고, 시간을 전하는 매체에서 시간을 붙잡는 매체로 자리를 바꾸었다. ‘굿즈’가 된 호외. 뜻밖의 쓰임을 얻은 호외의 변신은 흥미롭다. 그래서다. 신문은 사라지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가 궁금해지는 것은. 디지털이 주도하는 시대에 정보는 점점 더 빠르게 흘러가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어떤 순간을 붙잡고 싶어 한다. 스쳐 지나가는 기록이 아니라 손에 남는 기억을 갈망하는 시대. 호외가 다시 등장한 이유는 어쩌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사라져가는 것은 종이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해온 방식일지도 모른다.
새만금항 신항(이하 신항)이 올해 하반기 개장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현장을 가보면 ‘과연 이대로 개장해도 괜찮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안벽시설 마무리 공사와 함께 항만인입도로 건설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지만 개장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가장 큰 문제들이 해결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완벽하지 못한 외곽시설, 조성되지 않은 배후부지, 결정되지 않은 행정관할구역, 수립되지 않는 항만기본계획 등 4가지를 들 수 있다. 항만 건설에 가장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할 외곽 시설의 경우 북풍과 서풍을 대비한 방파제와 방파 호안만 축조돼 있을 뿐 거센 남서풍에 대비한 방파 호안의 축조는 시기를 알 수 없는 미래 계획으로 미뤄져 있을 뿐이다. 항내 정온수역의 확보가 매우 불안하다. 항만이란 선박이 안전하게 출입하고 정박, 계류해야 하나 강한 남서풍이 몰아치게 되면 다른 항만으로 피항해야 할 상황까지 직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항만시설의 안전마저 걱정된다. 이상기후현상이 심해지면서 더욱 우려되는 대목이다. 배후부지 문제 또한 심각하다. 오는 6월이면 5만톤급 2개의 안벽시설이 완공된다. 부두만 겨우 건설되는 셈이다. 이 부두가 하역, 야적 등의 원활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배후부지의 조성은 기약이 없다. 배후 부지가 없으면 부두는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배후부지 규모는 118만2000㎡(36만평)에 달하고 이의 조성을 위해서는 3000억여원의 사업비가 소요되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민간자본의 투자로 계획돼 있다. 매립률이 50%도 되지 않고 배후 산업단지가 없어 물동량 창출을 기대할 수 없는 새만금 내부 개발의 현 상황을 감안할 때 수익성이 전제되는 민간자본의 투자는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 재정 투자로 배후 부지를 조성, 항만 시설 등의 건립에 민간자본투자를 유인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메아리는 없다. 현재 사업비가 마련됐다고 해도 설계, 지반안정, 조성 공사 추진 등을 감안할 때 배후부지를 조성하는데 4년~5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개장하겠다고?” 항만관계자들은 고개를 젓는다. 또한 그동안 신항은 신항만건설촉진법에 따른 기본계획에 따라 항만건설이 추진돼 왔을 뿐 항만법에 따른 항만기본계획은 수립돼 있지 않다. 항만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해야 할 계획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지난해 5월 신항과 군산항이 새만금 항으로 통합, 무역항으로 지정됐을 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신항의 관할 행정구역이 결정돼 있지 않아 건축 등 각종 인허가를 관장할 행정기관이 ‘공중에 붕 떠 있다’는 점이다. 행정안전부가 최근 신항내 매립 완료 시설에 대한 군산해수청의 관할 지자체 결정 신청 내용을 공고했지만 군산시와 김제시 및 부안군의 갈등과 소송 등을 고려할 때 언제 관할 구역이 확정될 지 답답한 상황이다. 이밖에 물동량 확보, 신항 관련 업무 추진을 위한 해양수산사무소 청사 건립, 소요 인원 확보 등 개장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수두룩하다. 그런데도 개장을 강행할 경우 다분히 ‘행정쇼’에 불과하게 될 것이고 신항은 개장과 함께 장기간 휴업상태에 들어갈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문제점을 꼼곰히 해소, 항만답게 만든 후 개장을 해도 늦지 않다.
혁신도시 조성 당시 지역에는 큰 기대감이 있었다. 공공기관들은 연이어 지역경제 유발효과를 발표하며 기대감을 키웠다. 10년이 지났다. 기대감을 가졌던 대학생은 어느덧 청년이 됐다. 변화는 있었을까. 공공기관 이전 이후 체감할 수 있는 경제적 파급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최근 금융사나 현대 등 기업들의 투자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지역사회의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발표’가 아니라 ‘실제 투자’라는 지적이 나온다. 새만금 등에서는 과거부터 여러 차례 기업 이전과 투자 계획이 언급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실질적인 경제 효과로 이어지지 못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삼성의 새만금 투자 철회와 혁신도시 자산 위탁사들의 연락사무소 개설이 그렇다. 투자 발표는 화려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투자는 어땠나. 최근 거론되는 투자 분야가 인공지능이나 로봇 등 고도화 산업이라는 점에서 고용 창출 효과 및 지역경제 효과에 대한 우려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사람은 없고 로봇만이 가득한 공장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금융사들의 혁신도시 투자 발표 역시 정치권의 관심 속에 이어지고 있지만, 그 실체에 대한 의문도 함께 제기된다. 과거 자산위탁사의 사무실 개설처럼 ‘보여주기식 투자’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단순한 투자 발표나 상징적인 이전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방선거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등장하는 ‘보여주기식 투자 발표’가 아니라 지역경제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계획이 필요하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한 말 중 가장 인상 깊은 말이 있다. “기업은 이익이 된다면 가지 말래도 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무슨 이득이 있길래 지방에 투자를 하는 것일까를 고민해야 한다. 인구가 적고, 교통이 불편한 지방에 투자를 하는 기업이 얻고 싶은 것은 전기와 새만금의 땅 그리고 국민연금의 1500조가 넘는 기금일 것이다. 정치인들은 지방분권을 외친다. 기업인들의 생각은 과연 그럴까.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이 발전되면서 일자리 구조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필요성이 줄어드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이 흐름이 계속된다면 지방소멸이라는 말은 더 이상 미래형이 아닐지도 모른다. 성과를 알리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지역이 원하는 것은 화려한 투자 발표가 아니다. 껍질을 벗겼을 때 나오는 알맹이를 기대한다.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남한산을 중심으로 축조한 역사적인 산성이다. 인조 2년(1624)에 현 위치에 건립했다. 평상시에는 광주 지방관의 집무실로 사용하였고, 전란 때는 임금과 조정의 피난처이자 항쟁의 지휘부가 되었다. ‘김훈’ 작가의 소설 『남한산성』은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에 파천한 47일간의 생존기에 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한 작품이다. 고립무원의 성, 아비규환의 전장(戰場)에 무엇이 있었는지 수려한 필치로 그려낸다. ‘갈 수 없는 길과 가야 하는 길은 포개져 있었다.’라고 말하는 저자는 ‘이 책은 오로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황동혁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무엇을 읽었는지 궁금하다. 팩션(Faction) 사극은 비틀어야 제맛이 나는데……. 소설은 오래된 병풍을 잇댄 느낌이 든다. 구성(40장)이 그렇고, 언어에서 연상되는 빛바램과 여백이 그렇다. 예지력 있는 첫 문장은 유려하고 심오하다.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몽진 떠나는 어가행렬과 폐허가 된 궁궐로 돌아와 눈물을 닦는 임금 모습이 디졸브 되는 글귀는 하늘이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글의 끝은 바람에 돛폭이 잔뜩 부푼 배가 송파강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 모습을 그렸다. 영화 첫 장면은 나루터다. 꽁꽁 얼어붙어 배가 꼼짝할 수 없는 강, 사람들은 얼음 위를 걸어서 건넌다. 끝 장면도 나루터다. 해빙되어 나룻배가 마음껏 오갈 수 있는 나루터. 주변은 삼밭〔麻田〕이었다. 소설과 영화는 공히 수미상관(首尾相關) 구조를 띠고 있다. 그 안에 47일의 고초가 빼곡히 들어있다. 영화를 두드려보자. 전편을 관통하는 은유는 먼지다. “전하, 지금 성안에는 말〔言〕 먼지가 자욱하고 성 밖 또한 말(馬) 먼지가 자욱하니 삶의 길은 어디로 뻗어있는 것이며, 이 성이 대체 돌로 쌓은 성이옵니까, 말로 쌓은 성이옵니까.” 이조판서 최명길이 울음을 참으며 쏟아내는 말이다. 다음은 주화파와 척화파 간 첨예한 대립이다. 주화파 최명길이 간언한다. “전하!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는 것이옵니다. 치욕은 죽음보다 가벼운 것이옵니다.” 이에 맞서는 척화파 김상헌의 강변이다. “전하!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고 삶을 구걸하느니 사직을 위해 죽는 것이 신의 뜻입니다.” 틈을 헤치고 인조의 졸렬한 목소리가 울퉁불퉁 튀어나온다. “나는 살고자 한다.” 클라이맥스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다. 삼전도(三田渡)의 굴욕 그 현장을 목도(目睹)하는 것. 절 한번하고, 이마를 세 번 땅에 두드리기를 3회. 청나라 역관의 명령에 따라 임금의 이마가 땅을 찧는다. 온 나라가 임금 따라 울었다. 백성의 감정과 존재가 드러나지 않은 것은 아쉬움이다. 가마니 둘러쓴 성첩 위 병사, 대장장이, 점쟁이, 무당, 장돌뱅이, 기와장이, 옹기장이, 농부……. 이들 삶의 모든 무늬와 질감은 그저 노동하는 근육 속에 각인되었다. 가느다란 울부짖음은 먼지에 눌려 들리지 않는다. 먹을 것 없을 때, 홍이포 쏟아질 때 그들의 위장과 폐부는 제일 먼저, 가장 오래 오그라들었다. 병자호란 후 조선의 항복을 기록한 삼전도비가 세워졌다. 현재 이 비석은 삼전도가 있던 자리, 서울 잠실 석촌호숫가에 남아있다.
전북이 정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이재명 정부 들어 장관 4명(정동영 통일, 안규백 국방, 조현 외교, 김윤덕 국토교통)에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한병도)와 최고위원 2명(이성윤, 박지원)이 전북 출신이다. 전북 타운홀미팅 때 이재명 대통령도 “전북 인사들이 정부에 많죠?”라고 운을 뗄 정도다. 이쯤 되면 전북 낙후와 소외를 반전시킬 여러 제도적 장치들을 구축하고 지역 현안을 추동시킬 해법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런데 실상은 이와 딴 판이다. 동력도 없고 기회를 살리지도 못한다. 미래는 더 암울할 것 같다. 왜 그런가. 인접한 전남의 사례를 보자. 새만금이 최적지라고 자평했던 1조2000억원 규모의 인공태양(핵 연구시설)은 지난해 12월3일 전남 나주로 결정됐다. 대한민국의 미래 에너지를 좌우할 초대형 국책사업이다. 공모 심사에 앞서 광주전남 국회의원 전원은 ‘나주 입지 최적 결의문’까지 발표했다. 반면 전북 국회의원들은 공모에서 탈락한 뒤에서야 기자회견을 열고 문제제기를 했다. 이에 앞서 2조 5000억원 규모의 국가AI컴퓨팅센터 역시 전남 해남솔라시도에 유치됐다. 또 RE100산단은 어떤가. 전남 무안군이 일찌감치 RE100 최적지라며 유치활동에 나섰다. 목포 출신의 김원이 국회의원(2선)은 전남 서남권발전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한 RE100산단 특별법을 대표 발의해 놓고 있다. 산업․재생에너지․전력망․정주여건 등을 뒷받침할 법적 장치, 이른바 지산지소(地産地消)형 재생에너지 자립도시 특별법이다. 그는 관련 업무 상임위인 국회 산자위 간사다. 전북은 이런 인프라 구축 노력도 없이 ‘RE100산단=새만금’을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전남 강세를 의식한 탓인지 이젠 전남 전북 두곳 지정하면 안되느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광주전남통합특별시 추진은 전광석화였다. 4년간 20조원, 2차 공공기관 이전 및 산업 배치 등의 정부 지원책이 나오자 통합선언-TF구성-의회의결-특별법 공포-시행령 제정 등을 일사천리로 진행시켰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절박감 때문에 수많은 기득권을 포기하고 미래 경쟁력의 가치를 선택했다. 주목되는 건 박지원 국회의원(해남‧완도‧진도)의 리더십이다. 일부 정치권의 통합 반발이 일자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며 분위기를 다잡았다. 지방선거를 앞둔 ‘대가’는 공천 페널티다. 광주전남 정치권은 마치 매처럼 재빠르게 ‘먹이’를 나꿔챘다. 완주전주 통합 과정은 어떤가. 도지사의 완주군청 방문을 물리력으로 막고, 완주군의회는 민주적 의사결정의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북의 정치인 어느 누구도 호령하는 이가 없었다. 올해 여든 네살인 박지원 의원의 역동적인 결기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올해 하반기 최대 관심은 2차 공공기관 이전이다. 전남과 광주는 이미 노른자위 10개 공공기관을 콕 집어 요구했다. 전남과 중복기관이 많은 전북에겐 고전이 예상된다. 대비책은 있는가. 이재명 대통령은 ‘5극3특’ ‘3중소외’를 수도 없이 강조해 왔다. 그런데도 정작 당사자인 전북은 정책 과제나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행정통합을 놓고도 새만금권, 김제전주, 완주전주익산 등 그야말로 중구난방이다. 정치 전성기라는 전북. 숙제 풀기에는 나태하고 기회가 주어져도 성과로 연결하지 못하는 정치권. 화려한 립서비스만 날리며 자기정치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부터라도 전북이 처한 상황과 각종 현안에 대해 해법을 제시하고 성과를 내야 마땅하다. 이재명처럼.
행정통합은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고 규모의 경제를 추동시키는 효과가 있다. 수도권 일극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초광역 행정통합과 시군간 통합이 이런 이유 때문에 화두가 되고 있다. 요즘 선진국들의 광역 행정통합은 세계적인 추세다. 프랑스는 2016년 레지옹(지방정부)을 통합, 종전 22개에서 13개로 축소했고 독일도 메가시티를 통한 대도시권을 구축했다. 국내에서는 청원 청주, 창원 마산 진해가 통합했고 최근에는 광주 전남이 통합, 광주전남통합시 출범을 눈앞에 두고 있다. 대구 경북, 부산 울산 경남도 통합 시동을 걸었다. 전북에서도 완주‧전주통합이 네 번째 시도됐지만 완주군의회의 반대로 결실을 맺지 못해 아쉽다. 최근 물 밑에 있던 김제‧전주 통합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김제시의회가 김제‧전주 통합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전주시의회도 화답했다. 김제‧전주 통합은 2017년 정동영, 김종회 국회의원과 당시 김제시장이었던 필자가 점심을 함께 하면서 의견을 나누었던 사안이라 생소하지 않다. 통합의 필요성은 인구감소로 소멸위기에 있거나 지역발전의 규모를 키우는 데 있다. 짝짓기와 같은 통합은 상생을 위한 보완성의 폭이 클수록 유리하다. 그런 점에서 김제‧전주의 통합은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한다. 우선 전주는 역사와 전통, 예향의 천년 고도로 전북의 중심권이었다. 하지만 인구가 감소하는 소비도시라는 약점이 있다. 면적이 협소하고 내륙이어서 개발과 교통 확장에 어려움이 있고, 세계화를 향한 해양진출이 막혀 있는 점은 한계다. 반면 김제는 면적이 광활하고 육해공의 교통망이 펼쳐 있어 세계화의 물결에 쉽게 편승할 수 있다. 풍부한 농수산물은 전주시민의 먹거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장점이다. 새만금신항은 올해 5만톤급 2선석이 개항하면 크루즈선 같은 대형선박이 정박할 수 있어 동남아의 허브항으로 부상할 수 있다. 지난해엔 새만금고속도로의 전주(상관)-김제-새만금신항 구간이 개통돼 공동생활권을 촉진시켰다. 장차 새만금철도가 고속도로와 나란히 건설되면 통합의 시너지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지난해 전주권 광역교통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돼 연계 도로망 건설사업도 급물살을 탈 것이다. 지금 전북은 현대차그룹의 새만금 9조원 투자, 피지컬 AI 유치, 새만금 고속철도 건설, 국제공항 건설 등 기대가 부풀어 오르고 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전북에서 타운홀미팅을 주관한 뒤 모처에서 행정통합 문제에 관심을 나타낸 것은 고무적이다. 김제‧전주가 통합된다면 농생명산업클러스터 조성 차원에서 전국 유일의 종자연구단지와 연계해 김제 종자마이스터고를 종자전문대로 승격시키고 (구)벽성대 시설을 활용한 농업중앙회 등 농생명 사업기관 유치 등 정부 차원의 통합 인센티브도 엄청 날 것이다. 또한 지리적으로 ‘알박기’ 형상의 완주 이서가 혁신도시와 함께 김제・전주 통합시 편입이 긍정 검토되고 전북자치도 청사도 김제‧전주 통합청사와 함께 김제 새만금지역으로 이전해야 할 것이다. 새만금개발청의 새만금 김제 관할 지역 이전도 마찬가지다. 김제・전주가 통합되면 명실상부한 전북 중심권이 될 것이다. 시민 모두가 대승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정치권도 시민의견을 모아 조속히 완성시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질곡을 헤맨 35년 새만금은 천우의 현대 자동차그룹을 안았다. 군산시민은 물론, 전북 특별자치 도민은 커다란 한숨을 쉬었다. 붉은 황토밭에 소나기가 퍼부은 듯한 감정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2026년 2월 27일 군산 새만금컨벤션센타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임원진과 김관영 전북지사, 김의겸 새만금개발청장 등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새만금에 9조 원 투자로 AI 데이터센터, 수소에너지, 로봇산업클러스터 등 3대 사업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새만금 역사에 커다란 주춧돌을 놓았다. 군산과 전북 역사를 벗어나 한반도에 AI 시대를 대변할 세계적인 허브로 발돋움함은 자명한 일이다. 예컨대 이러함이 새역사의 전기를 마련하는 장대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천우의 기회로 받아들여진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 과제실적의 으뜸으로 꼽을 수 있는 상징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토록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태양 아래에는 그늘진 곳에서 열정을 불태우는 개미들이 있음도 알아야 한다. 다름 아닌 새만금개발청의 청장을 비롯한 관련 부서 직원들은 청와대, 관계부처를 1백여 회를 찾아다니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의 밑받침은 새만금개발청 역사에 기리 보존되리라고 본다. 역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교훈이 있다. 무려 7개월여의 그리 길지 않은 결실이지만 이재명 정부의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국정철학에 맞아떨어짐이 뒷받침되었기에 급속한 진전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새만금개발청과 전북특별자치도, 전북애향본부, 그리고 도민들의 전북발전, 새만금발전을 기원하는 마음의 발로라고 여겨진다. 높이 평가한다. 모두가 뭉치면 못할 일이 없음을 보여준 선례로 남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김민석 국무총리는 관계부처를 망라한 TF 팀을 구성하여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의 발표까지 했다. 어느 상황으로 보나 현대자동차 그룹의 새만금 투자 사업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으로 확신해 마지않는다. 세계적인 굴지의 대 그룹에서 체결한 계약이라는 점에서, 또한 사업의 적지라는 평가로 결론을 내린 만큼 만의 1도 우려나 기우는 없도록 할 것이 분명한 일이다. 일각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릴 수 있는 일로 보아도 무방하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토록 위대하고 장엄한 일을 물밑에서 시련을 감내한 개발청 청장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 일찍 물러났다는 빈축과 곱지 않은 시선이 없지 않았으나 혜안이 있는 결심으로 새만금을 제대로 건설하는 입법과 추진 등을 위해 사직을 한 것이라고 실토했다. 앞으로 기회를 얻어 국정에 참여하면 새만금의 미숙함과 얼이라는 정신을 함께하여 전북도민은 물론, 군산시민 모두에게 희망 고문을 벗어나도록 하는 역할을 다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의겸 전 청장은 16일 군산시청 프레스 룸에서 기자 회견을 갖고 6.3 보궐선거에 군산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다고 선언했다. 이날 기자회견문에서 천우의 기회를 놓칠 수 없는 현대차그룹의 9조 투자는 새만금의 운명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살림이 새롭게 차려지는 상황이라며 국정에 참여하게 되면 새만금지원과 관련한 입법 활동, 정부 지원 등 청장 자리보다 더 큰 힘이 되어 제대로 된 새만금을 만들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털어놓았다. 현대차그룹은 새만금사업은 그룹 차원의 사업으로 앞에서 밝힌 3대 사업은 세계적인 사업성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 분명하며 RE100 산단유치 등으로 군산은 물론, 전북자치도, 대한민국의 산업에 이정표를 창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일로 보아도 무리가 아닐 것 같다. 이제 군산시민과 도민들은 하나 되어 똘똘 뭉쳐 천우의 기회를 꼭 잡아야 한다. 기회는 아무렇게 나 오는 것이 아니다.
BTS가 재기공연에서 아리랑을 새롭게 보여준다고 하니 관심이 크다. 우리가 오늘날 즐겨 부르는 아리랑은 신아리랑. 춘사 나운규가 직접 각본을 쓰고 주연 감독까지 했다는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다. 그러나 원래 아리랑은 먼 옛날부터 우리 아낙들이 고된 마음을 한탄에 실어 자신을 추스리던 노동요였다. 우리 민요는 원래 연이어 부르던 토리가락. 그것은 진도 아리랑, 밀양아리랑, 정선아리랑 등 토속아리랑의 사설과 가락에 잘 나타나 있다. 이들 아리랑 사설들은 모두 한탄과 원망, 해학 해탈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지. 그렇다면 아리랑은 무슨 뜻이었을까? 아리랑의 기원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기원설을 주장하고 있지만 필자는 아리랑의 뜻은 그 노래가사 자체에 잘 나타나 있다고 주장한다. 진도아리랑과 밀양아리랑 가사를 들여다 보자. 문경 새재는 웬 고갠가 구비야 구부 구부가 눈물이고나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낫네 아리랑 응 응 응 아라리가 낫네. (진도아리랑)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조매 보소,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낫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소. (밀양아리랑) 특히 가사 후렴을 주목해 볼 것. 분명히 가락은 다른데 두 아리랑은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낫네, 라는 같은 가사를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왕래가 쉽지 않은 곳인데도 같은 가사가 있으니 놀랍다. 우리 여성들은 자고로 칠거지악의 족쇄에 억눌려 살아야 했지. 그래서 내색할 수조차 없었던 마음의 아픔 즉 원망과 한이 많았고 이것은 여성이 지녀야 할 당연한 숙명이었던 것. 우리말에는 아리다 쓰리다 란 말이 있지. 둘 다 아프다는 말이지만 쓰리다가 좀 더 가혹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 그러나 특별히 차이 나는 아픔은 아니어서 이 말들은 흔히 강조의 대구로 쓰인다. 그런데 바로 이 아리고 쓰린 마음이 우리 아낙들의 심중에 깊이 자리한 아픔의 대명사였던 것. 그렇다면 우리 여성들이 아리고 쓰린 마음을 내색하지 못하고 삭이며 스스로 터득한 삶의 지혜, 그것이 아리랑의 사설이고 가락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 체념과 자위가 아리랑 가락으로 표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랑’은 너랑 나랑 처럼 두 가지를 같은 자격으로 이어주는 접속사. 그러므로 별 차이가 없는 아린 것과 쓰린 것을 비교하면서 그래도 아린 것이 더 낫다는 식의 해학으로 자신을 위로했던 것. 진도아리랑은 아리랑 응 응 응 아라리가 낫네, 라며 구성진 응석까지 가락에 실어 계속 흥을 돋우고 있고 밀양아리랑은 한 술 더 떠 차라리 아리랑고개로 날 넘겨 주소, 라고 푸념까지 늘어놓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아리랑 가락 속에 용해되어 있는 우리 아낙들의 독특한 정서다, 라고 말하면 비약이라고 하겠는가. 전통적인 우리 한민족 서민의 정서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이 ‘정’, ‘한’, ‘흥’ 이다. 우선 이 정과 한과 흥은 모두 한문이 가능하지만 한문의 뜻과는 전혀 다른 개념. 한문 情은 喜 怒 哀 樂에 好 惡를 더한 인간의 일상감정들을 말하지만 우리의 ‘정’은 다르다. 우리 ‘정’은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순수한 마음이 기울어져 일어나는 간절함이다. ‘한’ 역시 恨이 아니다. 恨은 원한에 가까워서 恨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복수심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우리 ‘한’은 ‘정’의 끝자락(端). 차라리 한숨의 한과 닮았다. 이 경우 ‘한’은 ‘정’의 노여움이 굴절되어 나타난 체념일 수 있는 것. ‘흥’ 역시 떠들썩한 興이 아니다. 우리의 ‘흥’은 한의 승화로 해석할 수 있는 해탈의 몸부림이니까. 그래서 필자는 한국여성의 고유정서로 정과 한과 흥을 내세우면서 이들 세 요소는 한 끈으로 연결된 유기적 정서라고 정의한다. 우리가락에는 서양음악과 같은 정확한 음표가 없지. 오히려 즉흥적인 ‘추임새’가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래서 정과 한과 흥이 얼마든지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 것이 우리 민요의 가락이고 사설이다. 우리 민요 아리랑가락 속에는 우리 고유의 정서인 이 정과 한과 흥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애절한 사랑과 원망을 해학 넘치는 사설로 엮어 풀 수 있고 한탄과 절망으로 오열할 수도 있는 다양한 정서가 우리 가락에는 모두 포함되어 있지. 그래서 다양한 정서를 넘나들며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아리랑타령이다. 그래서 민요 아리랑은 불가항력의 역경 속에서 ‘한’을 달래고 ‘정’을 그리며 ‘흥’을 이끌어내는, 우리 민족의 다양한 정서를 모두 담아내고 있었다. 한민족의 전통적 고유정서가 뚜렷한 우리 아리랑을 우리 BTS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보여줄까? △홍지득 선생은 전북 순창 출신으로 1957년 전주고등학교 졸업하고 서라벌예술대학에서 공부했다. 516 혁명 후 해산된 국회에 설립된 재건국민운동 중앙회 간사를 지냈으며 국민신문 기자를 거쳐 미술과 연극 관련 평론을 발표했다. 이미지연구소 설립, 기업이미지 관련 논문 등 번역했으며 한국상업은행 등 여러 기업의 이미지작업도 주관했다. 미국영어발음 해설과 우리 외래어 문제점 등 논설 다수 발표했으며 시사논쟁 글을 다수 집필했다. 극단 가교(架橋) 대표와 한국예총 연극협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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