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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따라 맛 따라] 9. 전주 남부시장 맛집 - 시장에서 조달한 신선한 재료로 만든 소박하고 정겨운 맛

전주 남부시장은 조선시대의 3대 시장으로 불렸을 정도로 번성했다. 과거의 화려한 명성은 사라졌지만 시장 내 곳곳에는 오랜 된 세월만큼이나 명소들이 많다. 미곡거리는 과거 1960년대 70년대 전국의 쌀 시세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번성했던 곳이다. 또한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는 철물점과 가구점, 대나무 및 목제품 상점 등이 남부시장의 연륜을 말해주고 있다. 보물 제308호로 보존되고 있는 풍남문은 남부시장의 상징이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주성을 점령한 동학농민군의 숨결과, 3.13만세운동 당시 태극기가 펄럭이었던 역사를 남부시장은 기억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 때 분향소가 차려지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며 촛불을 밝혔던 곳이기도 하다. 역사의 굴곡이 있을 때마다 남부시장은 이렇게 시민들과 애환을 같이 했다. 그 역사만큼이나 전주 남부시장은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낮과 밤의 모습, 평일과 주말의 풍경이 다르다. 접근로에 따라 아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다. 오래된 전통시장의 힘이다. 최근 새롭게 단장된 풍남문 광장에서는 각종 문화 공연이 수시로 열리고 있는 등 남부시장은 단순 상거래만이 아닌 문화와 함께 어우러진 복합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특히 전주 남부시장의 청년몰과 야시장은 쇠락해가던 전통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며 전국 전통시장의 모델로 떠올랐다. 시장 내 2층에 마련된 청년몰은 2011년 남부시장 내 빈 공간을 재정비해 독특한 문화를 창출하고 있다. 전국 전통시장 최초로 2014년 문을 연 남부시장 야시장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밤을 밝히며 전주 관광객들의 필수코스로 자리 잡았다. 한옥마을의 관광 영역이 남부시장으로 넓히는 데 톡톡히 역할을 했다. 시장이 갖고 있는 큰 자산이 서민들의 먹을거리다. 남부시장 역시 순대콩나물 국밥국수 등 서민들이 한 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을 중심으로 맛집들이 즐비하다. 한옥마을이 전국적인 관광지로 뜨면서 남부시장 맛집도 덩달아 기세를 올리고 있다. △순자씨 보리밥 줘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에 자리 잡은순자씨 보리밥 줘는 식당 이름부터 정겹다. 흔한 사람 이름에다 보리밥 메뉴, 응석 부리는 어투까지 전통시장에 똑 어울리는 이름이다. 식당 풍경과 음식 차림도 이름과 동떨어지지 않다. 주 메뉴는 보리밥이다. 왜 보리밥인가. 식당에보리의 효능을 큼지막하게 적어놓았다. 성인병과 대장암 예방, 당뇨변비각기병 예방에 좋다는 예찬론을 편다. 보릿고개를 겪으며 쌀밥이 귀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별미가 된 보리밥이 새삼스럽다. 이 집 보리밥을 맛있게 먹는 방법이 식당에 걸려 있다. 양푼을 들고 보리밥을 넣은 후 여러 나물과 강된장, 고추장, 참기름을 넣고 맛있게 비벼 드시라고 친절히 안내하고 있다. 비빔밥으로 준비된 재료는 12가지. 무생채, 열무김치, 호박, 시금치, 콩나물, 버섯, 상추, 고사리 등 싱싱한 야채류가 뷔페식으로 준비됐다. 보리밥 역시 셀프며, 무한리필이다. 여기에 계란 프라이가 얹힌다. 시래기 된장국과 동태찌개가 국물로 제공된다. 2명이 1만원으로 보리밥과 다채로운 비빔재료, 찌개까지 이렇게 양껏 호사를 누리는 곳이 시장 속 아니면 찾기 힘들 것 같다. 식재료에는 주인의 정직함이 묻어난다. 모두 남부시장에서 구입한 재료들이다. 보리는 별도 유통과정을 통해 구입한단다. 오랜 연륜과 정성을 담은 음식들이 시골 밥상 느낌을 주면서 향수까지 불러일으킨다. 한옥마을에 관광객들이 몰리고 남부시장 청년몰이 뜨면서 더 유명해졌지만, 청년몰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남부시장의 명물이었다. 19년 전 이곳에 둥지를 튼 청년몰의 터줏대감이다. 집 주인순자씨가 청년몰의 가장 나이 많은 8순을 바라보는청년이다. 주인의 본래 이름은 최영숙씨지만, 딸이 만든 상호명인 순자씨로 통한다. 어머니 성품을 닮아 서글서글한 딸이 식당 일을 거든다. 한 때 새벽 4시부터 문을 열었으나 현재 영업시간은 오전 10시~오후 8시다. 보리밥 5000원, 국수 4000원, 라면 3000원, 깨죽 4000원전화 063)282-2168 △세은이네 국수는 입맛이 없을 때 점심 한 끼를 가볍게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이다.후루룩먹다에 어울리는 음식이 국수다. 시장뿐 아니라 웬만한 골목이면 으레 소문난 국수집이 있다. 모악산쪽에옛날국수가, 전주 인후동에이조국수, 덕진동에여만국수, 송천동에손가네바지락칼국수가 이름값을 한다. 전주 한옥마을의 베테랑 칼국수는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다. 남부시장에도 숨은 국수 맛집이 있다. 노란 간판이 인상적인세은이네다. 10년 넘게 완산경찰서 부근에 있다가 지난해 남문목욕탕 1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집 주인이 딸 이름을 간판으로 걸 만큼 음식에 자부심이 담겼다. 질 좋은 멸치와 신선한 채소로 우려낸 진한 육수가 맛의 비결이다. 매일 뽑은 육수를 조금씩 남겨 다음날 끓일 육수의 씨앗으로 삼아 한결 같은 맛을 낸다. 직접 담근 집 간장 또한 음식의 신뢰를 더해준다. 멸치국수 전문이지만, 집밥 같은 백반도 손색이 없다. 호박무침, 멸치고추볶음, 오이소박이, 시금치, 고등어조림 등 몇 개 안 되는 반찬이지만 주인의 손맛과 정성이 듬뿍 들어있다. 청국장아욱국소고기 미역국굴 미역국 등 국내 식당 식단처럼 매일 돌아가며 나온다. 공기 밥이나 국수사리를 추가로 주문할 땐 비용을 따로 받지 않는다. 토요일은 멸치국수만 취급한다. 손님들의 주문에 따라 맞춤형 음식을 제공하기도 한다. 멸치국수 3900원, 백반 6000원전화 063)283-3376 △다올 콩나물국밥 전주 콩나물국밥이 전국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는 데는 남부시장이 큰 역할을 했다. 전국적인 체인점을 갖고 있는 현대옥의 모태도 남부시장이다. 운암콩나물국밥, 엄마손해장국, 그때그집, 대한민국 콩나물국밥, 우정식당 등 남부시장에 자리 잡은 콩나물국밥집 마다 각기 독특한 레시피로최고의 맛집임을 자부한다. 청년몰 입구에 자리 잡은 다올 콩나물 국밥집 역시 미식가들에게 잘 알려진 맛집이다. 현 주인은 현대옥 창업주의 이종 조카다. 옛 명성옥을 운영하던 현대옥 창업주 동생의 딸이 대를 잇고 있다. 전주지방법원 앞에서 영업을 해오다 8년 전에 남부시장에 둥지를 틀었다. 매콤하고 시원한 국물맛을 내는 비결은 남편도 모른단다. 즉석에서 다지고 썬 마늘과 파를 국물에 넣어 입맛을 돋우게 만든다. 열무김치도 일품이다. 갓 데친 오징어, 두 개의 수란, 싱싱한 김이 인상적이다. 집 주인은 관광객들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고 했다. TV 방송 섭외도 거절한단다. 전주의 고객들을 중심에 둘 때 오래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술을 판매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콩나물 국밥 6000원, 오징어 4000원전화 063)254-1727

  • 기획
  • 김원용
  • 2018.04.30 18:39

[길 따라 맛 따라] 전주 아중리 - 호수 한바퀴 돌고 나니 입맛 돋아…어떤 맛난 음식 먹어볼까

전주 아중지구가 오늘의 모습을 갖춘 것은 20년이 채 안 된다. 1993년부터 5년간 택지개발을 통해 허허벌판이 신도시로 바뀌었다. 상전벽해라 할 만하다. 대단위 아파트 단지와 함께 모텔과 유흥시설, 음식점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 한 때 난개발의 전형이라고 지탄을 받기도 했다. 2000년 중반까지도 전주의 해방구라고 할 만큼 화려했던 아중지구는 이후 전주 중화산동과 상권을 나눴고, 서부신시가지 개발로 또 한 번 상권이 흔들렸다. 그럼에도 아중지구는 여전히 전주 동부권의 핵심 상권이다. 예전만은 못하지만 모텔촌을 중심으로 유흥가들이 불야성을 이룬다. 아중지구의 매력은 무엇보다 아중호수를 끼고 기린봉을 옆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행정구역상 우아동 1가에 자리잡은 아중호수는 지난 2015년 아중저수지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전주천삼천과 함께 전주를 대표하는 수자원인 아중저수지는 1952년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축조됐으며, 지금은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전주시는 2009년부터 생태관광명소 조성을 추진해 수상산책로와 수상광장을 만들었고, 앞으로 가족숲과 야외무대, 어린이 생태놀이터 등을 만들 계획이다. 아중호수 위 남북으로 펼쳐진 기린봉 역시 전주시민들에게 소중한 명소다. 산의 형세가 상서로운 동물인 기린이 여의주, 즉 달을 토해내는 듯한 풍광을 가졌다 하여 기린토월(麒麟吐月)이라고도 불렀다. 아중호수 쪽에서 정상까지 1㎞ 남짓하며, 쉬엄쉬엄 가더라도 1시간 30분이면 왕복이 가능해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찾는다. 산 정상에 오르면 전주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근래에는 아중역을 기점으로 전주한옥레일바이크가 운영되고 있다. 아중역 폐선 부지에 신리~왜망실까지 왕복 3.4 km를 시속 15~20km로 달리는, 이색적인 철길 자전거 체험레포츠다. 호수와 산, 레포츠 시설 등으로 관광객들을 부르는 아중지구에 맛집이 빠질 수 없다. 실제 아중지구 전체가 음식 천국이라고 할 만큼 구석구석 식당들이 포진해 있다. 아중저수지 주변만 하더라도 매운탕, 닭요리, 횟집, 고기 집, 분식집 등이 즐비하다. △화심장어 아중점 아중역 맞은편에 장어요리 전문점들이 여러 개 있다. 고창의 풍천장어가 전국적인 명성을 자랑하며 전주에도 풍천장어라는 이름을 단 장어집을 만날 수 있다. 여기에 몇 년 전부터 실뱀장어 포획이 안 돼 장어 가격이 크게 올랐다. 서민들로서는 가격 부담 때문에 선뜻 장어집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런 여건에서 아중지구의 장어 전문점들이 제대로 생존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올 실뱀장어 채포량이 더 줄었어요. 작년에도 비쌌는데 올 채포량은 그 반절입니다. 출하 할수록 손해라며 양만장에서 출하를 꺼릴 정도니까요. 자연히 장어구이 소비자 가격이 올라 손님도 감소할 수밖에요. 화심장어 아중점을 운영하는 김인수씨(67)는 누구보다 양만업계와 장어 전문점의 어려움을 잘 꿰뚫고 있다. 완주와 익산의 2곳 양어장에서 직접 장어를 기르고, 3개의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부친이 지난 84년 익산에서 양어장을 시작해 4형제가 뒤를 잇고 있는 만큼 가족기업이라고 할 만하다. 화심장어의 간판은 완주 화심의 지명에서 따왔다. 화심에 양어장과 본점이 있다. 전주 아중점으로 진출한 것은 15년 전이다. IMF와 농수산물 수입개방의 파고를 겪으며 자가 생산의 판매장 확보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다. 수입개방 당시 양어장이 큰 타격을 받았어요. 돼지고기 값에도 못 미치는 가격 폭락으로 양만업자(본래 장어양식업을 양만업이라고 한다)가 잇따라 자살하는 일도 있었으니까요. 화심장어는 당시 어려움을 셀프장어로 극복했다. 요즘에는 단가를 낮추기 위해 한 때 붐을 일으킨 셀프장어집의 원조가 이곳이었다. 완주 화심 일대는 전국에서 셀프장어를 벤치마킹하러 온 음식점 주인들로 연일 북새통을 이뤘다고 김씨는 회고했다. 근래 몇 년사이 실뱀장어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제2의 위기를 맞고 있는 양만업계는 출하를 최대한 늦추는 것으로 대응한다. 실뱀장어 입식 이후 2년 정도에 출하하던 것을 더 키워 출하시키는 것이 사료비 부담보다 이익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자신을 농사꾼이라고 했다. 3곳의 음식점 영업보다 30만 마리를 키우는 양어장이 주업이라는 의미에서다. 그는 장어 양식방법에 많은 연구를 했단다. 장어가 3급수에도 살 만큼 생존력이 뛰어나지만, 분비물과 항생제에 오염되지 않도록 순환여과식 방법을 창안하기도 했다. 화심장어 아중점의 상차림만으로는 두드러진 특징이 별로 없어 보였다. 다만 주인의 노하우를 담아 직접 기른 장어를 조달하기 때문에 신선함을 맛볼 수 있다. 주방에서 미리 익혀 나와 고기를 굽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셀프장어를 처음 도입한 이 집에서 장어를 익혀 내놓는 이유가 있었다. 숯불의 높은 온도에서 빨리 구워야 장어의 제맛을 낼 수 있는데, 손님들의 경우 시커멓게 태우는 일이 많아서다. 자가 생산한 재료를 쓰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것도 이 집의 장점이다. *구이 1㎏ 7만 8000원, 장어탕 9000원(점심 특선 6000원), 장어수제비 4000원 *전화 063)245-6592 △아중 옴팡집 화심장어 맞은편에 아중 옴팡집이 자리하고 있다. 작고 낮은 초가의 오두막집을 옴팡집이라고 한다. 옴팡집 쳐놓고 맛집 아닌 집이 거의 없다. 시설이 열악하면서도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것은 그만큼 색다른 맛이 있기 때문이리라. 아중 옴팡집 또한 겉은 허름하지만 막걸리집에서 시작해 37년째 음식점을 이어가는 아중리의 터줏대감이다. 이곳은 옻닭이 별미다. 옻나무를 쪼개서 국물을 내는 방식이 아닌, 옻나무를 톱밥으로 만들어 국물을 낸다. 이렇게 할 경우 국물이 훨씬 찐하다고 한다. 옻나무는 장성에서 조달하며, 가을에 채취해 말린 후 봄에 톱밥으로 만든다. 옻닭을 찍어먹는 고추간장, 찹쌀과 녹두를 불려서 끓여주는 죽, 똥집 튀김도 별미다. *옻닭꾸지뽕 한방백숙감태나무 백숙닭도리탕 4만5000원, 옻오리 5만5000원 *전화 063)246-4767 △용진 시골아줌씨국수 기린봉, 아중호반을 산책하고 허기질 때 가볍게 한 끼를 해결하는 곳을 찾는다면 용진 시골아줌씨 국수집을 추천한다. 이 집 역시 컨테이너로 만든 작은 건물로 외형은 볼품이 없지만, 국수 맛으로는 빠지지 않는 집이다. 메뉴는 물국수와 비빔국수 2가지가 전부다. 밑반찬 또한 청양고추와 된장, 김치와 양념간장 정도로 단출하다. 그럼에도 쫄깃한 면발에 담백하고 시원한 국물에서 30년 국수집의 관록이 묻어난다. 찌그러진 양푼이 시골밥집 같이 느껴져 정겹다. 물국수는 집에서 만든 옛날 잔치국수 같아 40~50대 입맛에 제격이다. 고추장과 싱싱한 야채로 버무려진 비빔국수는 봄철 입맛을 다시게 한다. 소주병에 담긴 참기름을 곁들여서다. 국수 분량은 손님이 원하는 만큼 나온다. 화려함 대신 소박하고 푸짐한 인심을 맛볼 수 있다. 가격은 기존 4000원에서 올해부터 5000원으로 인상됐다. *전화 063)245-8384

  • 기획
  • 김원용
  • 2018.03.29 19:05

[길따라 맛따라 7. 순창 맛집] 수백년 명성 고추장으로 빚어낸 맛의 자존심

고추장을 빼놓고 순창을 생각할 수 없고, 순창을 빼고 고추장을 말하기 어렵다. 그만큼 순창은 장류의 고장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자랑하고 있다. 순창 고추장이 어떻게 유명해졌을까. 먼저 역사성에서 찾을 수 있다. 순창 고추장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700년대에 편찬된 요리책인 <수문사설>에서 지방 명산물로 순창 고추장의 제조법이 소개됐다. 1809년 생활의 슬기를 모아 엮은 책인 <규합총서>에서도 고추장이 순창의 특산품이며, 고추장 재료와 양이 상세히 기록됐다. 순창 고추장과 이성계에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이성계가 왕에 오르기 전 스승인 무학 대사가 기거하고 있던 순창의 만일사를 찾아가던 중 농가에 들러 고추장을 곁들인 점심을 먹고 그 맛을 잊지 못해 진상토록 했다는 것이다. 순창에서 명품 고추장이 나오는 것은 이런 오래된 전통에다가 고추장 제조에 최적의 환경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한다. 섬진강 상류의 깨끗한 물과 적당한 햇볕, 효모군 번식에 적합한 기후조건 등이 어우러지면서다.여기에 순창 고추장이 전국적으로 알려질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대상(주)이 80년대 후반 임금님표 순창고추장을 출시하면서다. 80년대 중반 순창 고추장보존협의회가 구성돼 나름대로 활로를 모색하기는 했으나 대부분 소규모 영세업체들이어서 산업화에 한계가 있었다. 대상이 순창 고추장의 이미지를 전국에 높이면서 순창군도 지역산업으로 장류산업 육성에 적극 나섰다.순창군 전통고추장 민속마을을 만들고, 순창군장류연구사업소를 발족했으며, 장류산업 특구 지정을 받는 등 장류산업의 메카로 발돋움하기 위한 노력이 20년 넘게 이어졌다. 지자체와 장인들의 이런 노력으로 순창에서 생산되는 장류 매출액이 전국 30%대를 차지하고, 순창 지역총생산의 절반을 넘는다. 장류의 고장이라는 말이 결코 허명이 아닌 셈이다. △새집 흔히 음식 맛은 장맛이라는 말이 있다. 장맛에 따라 음식 맛이 좌우된다는 이야기다. 장류가 발달한 순창에 유명한 맛집이 많을 것임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지인들에게 맛집 추천을 해달라고 해도 선뜻 음식점 이름을 대지 못한다. 음식 맛이 장맛이라는 옛말이 틀리단 말인가. 그 이유를 새집 주인 허경순씨(57)를 만나서 알 수 있었다. 주민들 스스로 고추장된장간장청국장을 만들어 먹는 마당에 한정식 집이 그리 특별할 리 없을 것이란 설명을 듣고서다. 그럼에도 순창 읍내에만 새집을 포함해 남원집 녹원 대궁 가람한정식 민속집 순창예찬 신한국관 해오름 등 한정식이 즐비하다. 순창 주민이 아닌, 타지에서 그만큼 많이 한정식을 찾기 때문이리라. 새집은 남원집과 함께 순창 맛집의 산역사다. 40년간 운영해온 시어머니에 이어 허씨가 20년째 현재의 순창 읍내 한옥에서 같은 이름으로 지키고 있다. 전주에서 1시간 전 전화 예약을 한 탓인지 금세 상이 나왔다. 상차림이 정갈하다. 대략 20여 가지 반찬이 놓여 있다. 황석어젓 조개젓 고록젓 꼬막 조기 시금치 경종배추 고사리 무말랭이 깻잎 콩나물 마늘쫑 부침개 무조림 고추조림 고추장불고기 된장국. 이 정도면 밥 한 그릇이 아깝다. 도시의 백반집에서 만날 수 있는 메뉴들이지만, 주인의 정성이 깃든 반찬이 많다. 깻잎 마늘쫑 콩나물 고사리 시금치 등 거의 모든 나물이 주인의 손을 거쳤다. 재료는 순창 전통시장과 광주에서 조달한다. 된장국이 개운하다 했더니, 직접 콩으로 만든 메주란다. 거섶이 그리 많이 안 들어갔어도 된장 자체에서 우러나는 깊은 맛인가 보다. 새집의 별미는 고추장불고기다. 직접 담근 고추장을 돼지고기에 발라 석쇠에 얹어 연탄불에 구워 내온다. 그 담당은 남편의 몫이다. 공장용 고추장을 사용했더니 석쇠에 달라붙어 고기가 새까맣게 타더란다. 손이 많이 가지만 직접 만든 재래식 고추장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담양 떡갈비가 유명하지만, 결코 밀리지 않는단다. 상대적으로 싼 가격도 있지만, 순창 고추장이 빚어낸 맛에 대한 주인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60년 역사만큼이나 단골도 많다. 단골들은 전국에 걸쳐 있다. 전주광주와 함께 대구거창함양 등 경상도쪽 고객이 많은 것도 이채롭다. 겨울은 다소 한가하지만, 봄철 주말이면 줄을 서서 순번을 타야 한다. 옛날에는 예식 손님이 많았던 반면, 지금은 관광객 손님이 주를 이룬다. 100년 넘은 본채에 3개의 별채가 있다. 40명 규모를 수용할 수 있는 연회석도 갖췄다. 2인 기준 3만4000원. 063)653-2271 △순대촌 어느 고장이나 가장 대중적인 음식이 순대다. 저렴한 가격에 가볍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어서다. 순창읍내 순대국밥 역시 오래 전부터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그 명성이 자자했다. 순창군이 이를 바탕으로 재래시장 현대화사업의 일환으로 순대집을 한데 모아 순대촌을 조성했다. 순창 순대촌은 3년 전 한국관광공사의 1월에 가볼만한 곳에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순대촌에는 5곳의 순대집이 있다. 2대째 순대 연다라 전통순대 순창 전통 순대집 봉깨 순대 순창 장터순대. 2대째 순대와 순창 전통 순대집(옛 곡성순대)은 각각 60년 전통을 갖고 있다고 자랑한다. 각기 나름의 특징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인조피와 찹쌀, 당면을 쓰지 않고 선지와 10여 가지의 천연 양념과 야채를 넣어 감칠맛이 난다. 직접 담근 된장과 싱싱한 부추, 고추와 양파, 새우젓, 무, 갓김치 등 밑반찬이 풍성한 점도 도시 순대집과 비교된다. 새끼보전골, 새끼보국밥, 막창국밥 등의 메뉴와 라면국수사리 등을 넣어 먹는 것도 이색적이다. 순대전골 3만원(대 기준), 새끼보전골 5만원, 순대수육 3만원, 순대국밥 7000원, 막창국밥 9000원. △뜨란채 순창군의 대표적 관광지인 강천산을 찾는다면 뜨란채에서 식사를 해도 좋을 듯하다. 강천산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산기슭에 자리 잡아 일단 분위기가 한몫 거든다. 주 메뉴는 생선구이와 생선조림이다. 생선 맛이야 거기서 거기겠지만, 얼핏 보더라도 빨간 고추장을 바른 갈치구이와 감자가 먹음직스럽다. 깨끗한 식당 내부와 10여 가지의 밑반찬도 정갈하다. 생선구이의 경우 손님 수에 따라 생선종류가 달라진다. 2인일 때는 고등어, 청어, 조기가 나오고, 3인이면 갈치가 추가된다. 갈치구이, 갈치조림, 묵은지고등어조림, 오리백숙, 닭백숙 등도 메뉴에 들어 있다. 식사 후 가볍게 산보를 즐길 수 있으며, 카라반을 구경하는 재미도 곁들일 수 있다. 생선구이 1만2000원, 갈치구이 1만3000원, 보리굴비정식 2만원, 오리닭백숙 5만원. 063)653-1305

  • 기획
  • 김원용
  • 2018.03.01 20:47

[길따라 맛따라 ⑥ 군산 근대역사거리 맛집] 맛깔난 음식으로 오감 만족하고 시간여행 출발~

군산의 근대 역사는 곧 군산항의 역사다. 군산항에 도나드는 선박의 뱃고동 소리가 높았을 때 군산경제는 꿈틀거렸고. 반대일 때 군산은 휘청거렸다. 일제 강점기 군산항은 일본으로 쌀 반출 핵심 통로였다. 1933년 기준 국내 쌀 생산량의 53.4%가 일본으로 반출됐으며, 그중 20%가 군산항을 통해 나갔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군산은 1930년대 성장했고, 그 뒤 성장을 멈춘 후, 화석과도 같은 도시로 추락했다는 말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현재 군산관광의 아이콘이 된 군산 역사문화의거리는 1930년대 중반 이전에 대부분 완성됐다. 도심 주요 도로와 철도가 항구를 향해 뚫렸고, 세관과 우체국 등 관청과 은행포목점미두장 등 상가도 내항 주변에 집중됐다. 항만 인접지역 거리를 지금도 일각에서 본정통이라 부른다. 일제 강점기 군산항에는 남부여대로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몰렸고, 길거리에 판 하나만 놓아도 장사가 됐다고 군산 향토사학자 이병훈 시인이 생전에 들려줬다. 군산내항 주변이 일제 때 가장 경기가 좋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조선인 대부분은 부두막노동 일꾼이었고, 거리에서 목로판을 깔고 감자 고구마떡장수 등 밑바닥 생활을 했다는 말도 곁들여서다.오늘에 이르러 일제가 남긴 잔재들이 군산의 관광산업을 떠받드는 자산이 될 것이라고는 2000년대 이전까지 생각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 지어진 건축물의 보존과 철거를 두고 시민들 사이에 많은 논란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일부 건물이 헐리기도 하고, 철거 직전에 살아나기도 했다.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등록문화제 제도를 도입하고, 군산시가 근대문화유산벨트화지구 사업을 통해 차별화된 역사문화 관광지로 정비하면서 이런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군산의 주요 근대역사 콘텐츠들은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을 중심으로 도보로 20분 이내에 집적해 있다. 박물관 주변에는 옛 군산세관을 비롯해 일본 제18은행을 개조해 만든 군산근대미술관, 미곡창고였던 장미공연장, 적산가옥이었던 장미갤러리, 조선은행을 개조한 군산근대건축관, 일본 건축양식의 숙박시설인 고우당, 영화촬영지 초원사진관, 일본식 사찰 동국사, 진포해양공원 등이 관광객들이 찾는 필수 코스다.이런 군산 근대역사문화의거리가 전국적인 관광명소임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맛집이다. 전주 한옥마을과 같이 군산 근대거리에서도 줄을 서서 인증샷을 찍는 관광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인 이성당 앞은 주말이면 긴 줄로 장사진을 이루며, 1951년 문을 연 근대건축관 건너편의 중화요리점 빈해원도 관광객들로 넘친다. 복성루, 쌍용반점, 용해장, 지린성, 수송반점 등도 관광객들이 줄을 서는 중화요리 맛집들이다.△역사지구로 뜬 한일옥줄 서 기다리는 군산근대거리의 맛집 중에 한일옥이 있다.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블로거 등을 통해 이름난 맛집이며, 군산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는 음식점이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촬영지로 유명한 초원사진과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음식점 건물은 1937년 지어졌다. 외과 병원으로 사용되다가 레스토랑, 보신탕집으로 변신을 거듭한 끝에 4년 전 현재의 한일옥으로 주인이 바뀌었다.주인 김혜주씨(50)가 이 집으로 오게 된 사연에 인간미가 물씬 묻어났다. 음식점은 40년 전 김씨의 시이모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배고팠던 시절, 소고기 국물이라도 배불리 먹이고 싶어 선택한 메뉴가 무국이었다. 현 음식점 바로 옆 허름한 집에서 시작한 한일옥은 초기에는 주로 운전기사들이 이용한 기사식당이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군산 시민들에게 알려졌고, 관광객 유입에 따라 음식점은 대박이 났다.김씨는 비를 맞으면서까지 30~40분씩 기다리는 손님들을 보면서 3~4년 전에 구입한 현 장소로 이전을 결심했다. 번듯한 집으로 이사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보고 그 전까지는 허름한 집을 고수했단다. 큰 곳으로 옮기면 손님들이 줄 서 기다리는 일이 없을 것으로 여겼으나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손님들에게 미안하단다. 평일 평균 700명, 주말 1300~1400명의 손님을 맞는다.한일옥의 주 메뉴는 무국이다. 특별한 밑반찬이 제공되는 것도 아닌 데, 손님들을 불러들이는 비결이 궁금했다. 깔끔한 국물 맛이 비결이다. 콩나물 국밥을 대신할 수 있는 해장으로 엄지 척이다. 소고기와 무를 넣고 50분 정도 끓인 물에 굵은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8000원으로 가격을 올린 대신 소고기, 국물, 밥은 무한리필이다.음식점 2층을 옛 생활용품 전시장으로 꾸려놓은 것도 이색적이다. 옛날 전화기, 라디오, 축음기, 주판, 놋그릇, 유기 수저, 향로, 징, 반닫이, 고리짝. 붕어빵 틀 등 과거로의 여행에 걸맞게 진열된 골동품(?)들이 근대거리와 잘 어울렸다.△옛 추억의 아복식당한일옥의 무국은 군산 음식의 상징과는 거리가 있다. 보통 군산의 대표 음식으로 회와 꽃게장, 아구(복), 물메기 등이 꼽힌다. 특히 군산의 지역명을 단 아구집은 전국 각지에 퍼져 있다. 군산에서도 군산복집수풍회관 등 이름난 아구집이 즐비하다. 역사지구에서 조금 벗어나 째보선창에 인접한 아복식당은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복 전문점이다.군산 내항 주변의 집들이 다 그렇듯, 이 음식점 역시 일제 때 만들어진 가옥이다. 지붕이 뚫려 햇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이했다. 음식점은 1986년부터 30년 넘게 부두사람들과 애환을 같이 했다. 3년 전 작고한 친정어머니와 함께 15년째 복집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 신소정씨(42)는 역사지구의 음식점과 달리 경기상황이 예전만 못하다고 했다. 새만금방조제 완공 후 복이 잡히지 않은 데다, 대명동 화재사건 후 유흥가들이 문을 닫은 영향이 크단다. 인근 재래시장조차 사람이 없단다. 주인 신씨는 고기가 잘 잡혀서 IMF가 있는 줄도 모를 정도였다고 옛날을 그리워했다.그럼에도 이 집 음식점이 굳건한 것은 예전의 단골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군산에서 복 요리가 발달할 수 있었던 배경은 기본적으로 살아있는 복을 원료로 쓸 수 있는 복 생산지가 인근이었고, 부식으로 쓸 수 있는 해산물 등 식재료들이 풍부해서다. 지금의 복 재료는 부산에서 조달한다. 팔딱팔딱 뛰는 복은 아니어도 산 채로 냉동을 시켜 선도를 좋게 하는 게 기본이다. 오래 끓여 진한 맛을 빼는 대신, 재래식 된장으로 간을 맞춰 깊은 맛을 내는 게 이 집의 비결이다. 복 양이 푸짐하고, 파 무침 등 싱싱한 밑반찬도 자랑이다. 군산의 차가운 갯바람을 맞고 나서 찾았던 얼큰하고 시원한 복탕이 다시 그립다.

  • 기획
  • 김원용
  • 2017.11.17 23:02

[길 따라 맛 따라 ⑤ 완주 구이면] '어머니 산'에 안긴 마을, 가는 곳마다 '어머니 손맛'

완주군 구이면은 산과 물이 잘 어우러진 곳이다. 어머니의 산으로 일컬어지는 모악산과 맑은 물을 가득 담은 구이저수지를 품고 있다. 지리적으로 전주의 남쪽에 바로 인접해 있어 전원생활과 도시의 편리성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전주와 순창으로 연결되는 4차선 도로와, 상관으로 연결되는 동서 우회도로가 개통하면서 교통 또한 잘 발달했다. 90년대 후반까지 다른 면 단위 도시와 별 차이가 없었던 구이면을 상전벽해로 만든 중심에는 모악산이 있다. 모악산을 찾는 등산객을 겨냥한 관광단지가 조성되고, 전북도립미술관이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매년 탐방객 수를 더했다. 근래 술테마박물관이 문을 열었고, 모악산 바로 밑에 150여세대의 모악호수마을이 조성됐다. 여기에 호수로 눈을 돌려 2015년부터 구이저수지 호반 8.8㎞를 도보로 걸을 수 있는 둘레길 조성사업을 벌이고 있다. 모악산과 쌍벽을 이루는 경각산은 패러글라이딩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문화시설, 레포츠 시설이 있는 곳에 음식이 빠질 수 없다. 등산객이 가장 많이 찾는 모악산 등산로 입구 앞에 조성된 관광단지는 음식점 천국이다. 보리밥집에서부터 청국장, 고깃집, 로컬푸드 채식 레스토랑까지 골고루 갖춰져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번잡한 관광단지를 벗어나고 싶다면 옛 등산로 입구 쪽으로 눈을 돌릴 수 있다. 이곳에는 등산로집 모악산 돌담집 산촌 옛날국수 상호를 단 음식점이 자리한다. 등산로집의 주 메뉴는 김치찌개. 묵은 김치와 돼지고기를 굵직굵직하게 썰어 넣어 만든 김치찌개의 국물이 깔끔하다. 청국장, 묵은지 닭볶음탕, 청국장, 보리비빔밥, 도토리묵도 맛 볼 수 있다. 산촌은 보리비빔밥으로, 모악산 돌담집(옛 소라네집)은 닭볶음탕으로 특화돼 있다. 옛날국수집은 분위기부터 색다르다. 음식점 내 갖은 골동품(?)과 손님들이 남긴 메모쪽지들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정작 손님들이 찾아봐야 할 메뉴판은 천장에 붙어 있다. 심심하지 않을 정도로 여기저기 눈을 돌리는 사이 금세 주문 음식이 나온다. 국수 한 그릇에 3000원. 아주 착한 가격이다. 면발이 굵직하고, 양도 많다. 국수로 좀 허전하면 도토리묵으로 달랠 수 있다. △홍합 짬뽕부터 소고기까지 골라 먹는 재미 모악산 보다 호수 쪽이 가까운 구이면 소재지는 한 때 모악산 관광단지에 밀리면서 상권이 많이 쇠락했으나 호수마을 조성과 함께 최근 다시 활기를 찾았다. 면 소재지 음식은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주인이 직접 요리를 하는 경우가 많아 더 믿음이 간다. 면 소재지를 중심으로 30여개에 이르는 음식점들이 특색 있는 다양한 메뉴를 내놓아 미식가들의 입을 즐겁게 만든다. 누룽지 백숙누룽지 칼국수보리굴비정식연잎밥메밀전을 메뉴로 삼고 있는 목향밥상은 건강식을 지향한다. 구이우체국 바로 옆에 자리 잡은 다슬기수제비 집은 다슬기수제비 하나로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수제비 보통곱빼기특으로 나눠 5000원~7000원을 받고 있다. 촌민은 팥죽과 콩국수 맛집으로 통한다. 속초코다리찜 전문점에서 코다리찜과 동태탕, 고등어조림, 도토리묵밥을, 소담집에서 낙지 연포탕을 먹을 수 있다. 백반 집으로는 만고강산 구이회관이 있다. 구이는 유명한 소고기 집도 많다. 대표적인 곳이 학래촌. 모악산 관광단지에 있는 소야와 쌍벽을 이룬다. 정육점과 함께 하는 가정집 같은 분위기로 차려진 이곳은 1주일에 3마리의 소를 소비할 정도로 손님이 몰린다. 소고기의 맛은 좋은 소를 고르는 능력에 달렸다. 정육점 경력 25년의 주인 이석계씨가 구이와 임실에서 직접 소를 골라 도축시킨다. 안창살토시살 등 특수부위 9만5000원(600g 기준), 갈비살낙엽살 6만5000원, 육사시미 5만원을 받고 있다. 구이 음식점의 터줏대감은 구이반점. 주인 진동순씨가 84년부터 이곳에서 3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중식당이다. 맛집으로 통할 수 있는 비결은 재료에 있다. 양파대파배추고추 등 직접 재배한 재료를 사용하고, 나머지 재료들은 전주 전동시장에서 구입한다. 홍합짬뽕굴짬뽕이 별미며, 탕수육도 고기 위주로 튼실하다. 얼큰한 맛이 싫다면 잡채밥이 제격이다. 돼지감자호박고구마 등 주인이 재배한 몇몇 농산물을 덤으로 구입할 수도 있다. △별미 메기구이 맛보려면 범상치 않은 맛집으로 엄지산장(주인 유정선)이 있다.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 옛 구이면사무소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이곳은 메기구이 메뉴로 특화됐다. 메기구이는 포를 떠서 살을 발라 굽는 요리다. 메기에 가시가 많고, 살이 연약해서 굽는 과정이 녹록치 않다. 퍽퍽 튀거나 조금 방심하면 탈 수도 있다. 살을 발라 굽는 노하우가 필요하고, 익을 때까지 꼬박 지켜봐야 하기에 많은 손이 가는 요리다. 장어와 같은 양념을 발라 장어 비슷한 느낌을 주면서도 메기만의 부드러운 식감을 맛볼 수 있다. 느끼하지 않으면서 담백한 맛이다. 주인 유씨가 메기구이 메뉴를 개발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곡절도 많았다고 한다. 메기구이 메뉴는 어머니와 함께 남원 죽항동에서 운영하던 옴팡집에 뿌리를 두고 있다. 4차선 도로가 뚫려 집이 헐리기 전까지 이 집은 남원에서 잘 알려진 맛집이었다. 진안 용담광주서울 등지에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데 실패한 후 10년 전 구이에 정착했다. 메기구이가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선 메뉴인 까닭에 처음에는 백반과 병행하다가 점차 알려지면서 백반을 버렸다. 살을 발라낸 후 남은 뼈와 내장 등으로 메기탕이 제공된다. 민들레원추리양파 장아찌, 매실 마늘종, 버섯새송이 깨탕 등 밑반찬도 별미다. 3~4인 기준 4만5000원(메기탕 포함).

  • 기획
  • 김원용
  • 2017.11.03 23:02

[길 따라 맛 따라 ④ 김제 원평시장 맛집들] 장터 사람들 허기 달래던 푸짐한 인정과 추억

김제시 금산면 원평시장은 세월을 비켜간 듯 했다. 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식당과 마트, 여관, 약국, 농약사, 이발소, 방앗간, 미곡상회 등이 한 눈에 들어왔다. 2005년에 원평을 취재한 적이 있다. 10여년 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2005년 여름, 국도 1호선에 접한 마을의 풍경을 취재하기 위해 선택한 곳이 원평이었다.원평 주민들의 국도 1호선에 대해 갖는 애증은 각별하다. 정읍을 빠져나와 전주로 향하는 국도1호선 중간에 위치한 원평은 국도1호선에 웃고 울었다. 이곳 주민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국도1호선과 애환을 함께 해왔고, 지금도 함께 숨쉬고 있다. 다른 면소재지와 마찬가지로 몇 해 전 면소재지 뒤편으로 우회도로가 생겼다. 국도1호선중 얼마 남지 않은 2차선 도로를 간직하고 있으나 정읍 옹동에서 4차선 확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이곳도 조만간 4차선 국도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원평시장이 발달할 수 있었던 배경이 편리한 교통 때문이었고, 원평시장이 쇠퇴의 길을 걷게 된 것도 또 교통의 발달이라는 점이 아이러니 하다고 당시 기사는 적고 있다. 그러나 4차선 우회도로가 뚫리면서 더욱 쇠락할 것으로 예상했던 원평시장은 여전히 건재하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지는 못했더라도 시장 곳곳에서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다른 읍면 단위의 정기시장과 마찬가지로 4일과 9일 열리는 5일장의 존재감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후덕한 인심은 그대로다. 그런 정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이 음식점이다. 어느 음식점이든 푸짐하다. 원평에서는 짬뽕 곱빼기가 메뉴에 없다. 별도의 공기 1그릇 값도 메뉴판에 들어 있지 않다.△외지인 유입으로 음식문화 발달원평장은 한 때 전북에서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융성했다. 70~80대 어르신들만 해도 장날이면 사람들로 북적댔던 원평장을 기억한다. 완주 구이를 비롯해 정읍 산외산내옹동, 김제 금구봉남 등지에서 원평장을 이용했다. 조선후기에 주막만 60개에 이르렀으며, 양복점만 8개인 적도 있었다는 게 원평장의 번성을 대변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원평의 향토사학자 최순식 선생은 생전에 원평장이 융성했던 이유로 평야지대와 산간지대 물건이 만나는 지정학적 위치를 꼽았다. 원평이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것도 물산과 사람이 집결하는 원평시장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았다. 도로가 사통오달로 뚫리고, 시내버스자가용이 생기면서 원평장이 반짝 장으로 주저앉았다는 것이다.과거의 영광은 오간데 없지만 오늘날 원평시장을 지탱하는 게 음식점이다. 원평터미널을 중심으로 옛 길을 따라 음식점이 즐비하다. 고만고만한 음식점이 줄잡아 30여개에 이른다. 농촌의 면 소재지에 이리 많은 음식점을 보유한 곳도 드물다.작은 면 소재지에서 도시 못지않게 음식문화가 발달할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원평에서 시민사회운동가로 활동하는 최고원씨(김제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외지인들과의 많은 교류에서 답을 찾는다. 일제강점기 때는 금(사금)을 좇아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렸고, 천주교기독교불교증산도 등 종교 관련 성지를 품고 있어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곳이 원평이란다. 관광지로도 각광받는 금산사를 끼고 있고, 전주 인근의 지리적 여건도 원평에서 맛집이 발달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외지인들이 많이 드나들면서 지역의 고유 음식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음식문화도 자연스럽게 유입됐다. 같은 재료를 갖고 여러가지 방식으로 음식을 만든다거나, 방하잎처럼 경상도에서 주로 이용하는 식재료를 맛볼 수 있는 것이 그 예다.△가정식 백반 부길회관원평의 맛집 대부분은 서민적인 음식들이다. 백반과 중국음식, 국수, 순대국밥 등이 대표적이다. 장꾼이나 물건을 사기 위해 장을 찾는 사람들이 가볍게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음식들이다.최고원씨가 단골로 찾는 가정식 백반집이 있다. 복원을 거쳐 지난 7월 전북도기념물로 지정된 원평집강소 바로 앞에 위치한 부길회관이다. 최씨는 집강소를 찾는 탐방객들을 이곳으로 곧잘 안내한다. SNS 등을 통해 잘 알려진 맛집도 많지만 최씨가 부길회관을 권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 집 같은 건강한 밥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깻잎, 호박, 꽈리고추, 가지, 파, 오이, 시금치 등 기본 재료들이 모두 텃밭에서 나온다. 된장 고추장 간장도 주인 박옥순씨(60)가 직접 담근다. 단호박찜 하나만 보더라도 손님의 건강을 생각하는 주인의 배려를 느낄 수 있다. 대부분 엿을 바르지만, 이곳에서는 아카시아꿀을 바른다. 땅콩도 국산이다. 콩나물도 제 색깔 그대로다. 조미료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 재료 본래의 맛을 느끼도록 차린 밥상이다.이 집의 메뉴는 정형화되지 않았다. 텃밭에서 재료를 조달하기 때문에 제철 음식으로 식단이 짜이면서다. 모처럼 식당을 찾는 손님들에게는 그야말로 복불복이 되는 셈이다. 먹고 싶은 음식을 미리 주문하는 경우도 있다. 줄포의 50대 부부는 매주 수요일 이 집을 찾는 단골이다. 이 단골이 오는 날이면 더 많은 메뉴를 맛볼 수 있어 횡재를 한다는 최씨의 농도 이런 배경에서다. 음식 치장이 과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정갈하다. 음식은 정직한 것이다. 편안한 음식이 최고다. 이 음식점에 대한 최씨의 평가다. 이런 밥집이 꼭 지켜져야지 않겠냐는 생각을 곁들여서다.△중화요리로도 유명최씨가 추천한 또 다른 음식점은 인정식당이다. 상호로 백반집 같지만 실은 중국음식점이다. 바로 옆 신풍각의 원 주인이다. 경력 40년 베테랑의 이 집 주인 고광태씨(63)가 운영하던 옛 신풍각은 2000년대 초반까지 전주에서도 많은 고객들이 찾을 만큼 유명한 맛집이었다. 교통사고로 음식점을 접은 고씨는 백반집으로 재기에 나섰고, 다시 전공인 중국음식점으로 바꿨다. 배달이 없고, 저녁 장사를 안 하는 게 이 집 특징이다. 음식점 주인이자 주방장인 고씨의 건강이 뒷받침되지 못하기 때문이란다.인정식당에서 가장 잘 나가는 메뉴는 해물국밥이다. 홍합과 바지락, 오징어, 대새우 등이 들어가는 국밥의 생명은 재료의 신선함이다. 탕수육 역시 좋은 고기를 쓴다. 비좁게 느껴질 정도로 좁은 공간이지만, 주방과 환풍기에 먼지 하나 걸치지 않을 만큼 청결한 점에서 주인의 음식 다루는 자세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짜장면 가격이 4000원이라는 사실도 새삼스러웠다.인정식당 바로 인근의 현 신풍각(주인 김용길66)도 원평의 중국음식을 살찌우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굴짬뽕과 물짜장이 이 집의 별미다. 쟁반짬뽕과 쟁반짜장, 탕수육도 신풍각의 잘 나가는 메뉴다.△소고기 전문 음식점 새롭게 부상원평순대는 순대의 대명사가 될 만큼 전국적인 명성을 갖고 있다. 전주만 하더라도 원조까지 붙인 원평 이름을 단 순대집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경기도 용인과 기흥 등 타 지역의 순대집에서도 원평의 상호를 단 곳이 있다. 그러나 정작 원평에는 순대 전문 음식점이 그리 많지 않다. 시골집과 원평 시골장터순대가 그 명성을 잇고 있다. 원평 순대가 이름을 얻게 된 것과 관련, 최고원씨는 원평에서 가축시장이 발달했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원평장이 번성했을 때는 썩어빠진 동태눈깔도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고 한다. 소돼지의 내장 역시 원평에서 좋은 식재료였을 거라는 이야기다.요즘 원평에서 잘 나가는 맛집은 단연 한우고기 음식점들이다. 김제시가 10년 전 재정경제부로부터 한우산업특구로 지정받은 후 청보리를 먹인 지평선 한우를 집중 육성하면서다. 육질이 연하고 부드러워서 입에 살살 녹는다는 말이 절로 나온단다. 이런 한우 전문점들이 구 시장 외곽에 여러 곳 자리하고 있다. 지평선청보리한우촌, 청기와가든, 모악산한우마를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지평선청보리한우촌의 에는 주말이면 금산사 관광객들과 전주 등에서 찾아온 고객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고기와 함께 육회 비빔밥이 이 집의 자랑이다. 원평은 이렇게 시장 주변의 서민 음식과 함께 대형 음식점이 공존하고 있었다. 김원용 선임기자△부길회관(543-0802)=백반 6,000원 △우정식당(545-5990)=해물국밥 7,000원 △신풍각(542-3717)=굴짬뽕 8,000원 △지평선청보리한우촌(543-0076)=육회비빔밥(특)=12,000원

  • 기획
  • 김원용
  • 2017.09.22 23:02

[길 따라 맛 따라 ③ '풀꽃세상' 허인교 대표를 만나다] "음식도 조경도 시각보다 손님이 편안함 느끼게"

먹거리 포비아(불안증)가 확산되고 있다. 구제역조류독감(AI)이 일상적인 전염병이 된데다가 최근에는햄버거병과살충제 계란,E형간염 돼지고기문제까지 불거지면서다. 먹거리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은 자연스럽게 채식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채식 동호회가 속속 생겨나고, 여러 형태의 채식축제도 매년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한국채식연합은 국내 채식주의자 규모를 100만~150만명 규모로 추산하고 있다. 완전 채식주의자인 비건뿐 아니라 오보락토 등 여러 형태의 채식주의자를 포함해서다.채식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채식 전문 식당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우리의 외식문화가 육식 중심이어서 채식만으로 식단을 꾸리고 있는 식당은 지금도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도내의 경우 채식 전문으로 자리를 잡은 식당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그 중 전주 도심의 영화의거리에 있는무심과 금산사 가는 길목의 해성고 근처에 있는풀꽃세상이 전북지역의 채식문화를 이끌었다. 채식 전문점들이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한 것과 달리 이들 두 음식점은 각각 2001년도에 개업한 후 나름의 단골들을 확보하면서 입지를 다졌다. 좀 더 대중적인 이미지로 풀꽃세상을 이끌고 있는 주인 허인교씨(57)를 만났다.△18년째 채식 전문 뷔페식당으로채식에 관한 일반의 관심이 높지 않던 시절에 일찌감치 채식 전문 뷔페식당을 연 것이 먼저 궁금했다. 허씨는 자신의 건강 때문이었다고 했다. 90년대 중반까지 환경 관련 업체를 운영하던 중 혈압으로 쓰러진 것이 계기였다. 술담배를 끊고, 채식으로 건강관리를 하던 중 기왕이면 생업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음식점을 차리게 됐단다. 현재의 음식점 바로 옆에서 채식건강부페라는 상호로 출발했다.음식점 운영 경험이 없고, 조리 자격증 하나 없었던 그가 어떻게 대형 채식뷔페식당을 꾸릴 수 있었을까. 채식 관련 단체에서 활동한 것이 힘이 됐다. 그는 한국채식연합회 공동 대표도 지냈다. 연합회를 통해 요리사들을 영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 두부 만들기 정도만 하고, 주차관리 등 허드렛일을 맡아보았던 허씨는 하나둘씩 요리를 배웠다. 지금은 이 식당에서 나오는 주요 음식들이 거의 그의 손을 거치고 있다. 벌써 음식점 경력 18년째이니 그럴 만도 하다.채식에 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그는 음식을 인생과 같다고 보았다. 사람이 성장하는 것처럼 음식관도 진화한다는 거다. 1단계는 배를 채우는 데 관심을 두고, 맞을 찾는 게 2단계며, 그 다음에 미적 아름다움을 찾는다. 마지막 단계가 건강과 평화로운 음식을 추구하는 데, 그것이 채식이라는 것이다.12~13년간 동물성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 비건(vegan) 채식을 했으나 그 스스로 극단적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운영하는 식당의 식단 역시 세미 베지테리언(semi vegeterian)으로 꾸렸다. 채식이 중심이지만, 생선(고등어)과 닭고기가 식당 구석에 따로 분류돼 놓여 있다. 단골이었던 스님들 중에서 일부 거부감도 드러냈지만, 자신의 소신을 꺾지 않았다. 채식의 범주를 어디까지나 개인의 신념 문제라고 본단다.△냉정한 맛 감별사는 고객점심을 중심으로 저녁 식사까지 하루 평균 400명 남짓의 손님들이 찾을 만큼 전주의 대표적 채식 뷔페점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전주 도심에서 벗어나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는 단점을 오히려 슬로우 푸드 측면에서 장점으로 활용했다. 중인리 가는 2차선 도로 주변에는 풀꽃세상과 같이 민물장어, 생태탕, 코다리, 보리밥, 추어탕, 국수, 중식 등의 메뉴로 단골들을 확보한 맛집들이 적지 않다. 조금이나마 한적한 곳에서 여유를 즐기려는 이용자들이 고객이다. 풀꽃세상이 자리한 곳은 본래 논이었다. 그곳에 건물을 만들고, 꽃과 나무를 심었다. 10여년에 걸쳐 주인 허인교씨가 1600평의 나대지를 울창한 숲의 정원으로 손수 가꾼 것이란다.음식과 마찬가지로 주변이 평화로워야 합니다. 조경전문가들이 너무 밀식했다지만, 시각보다 손님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식사 후 자연으로 나와 여유롭게 사색과 대화를 이어갈 공간을 갖춘 것이 음식 이외 이 집이 갖고 있는 자랑이다.지역에서 3년 이상 버티는 곳이 없을 정도로 채식뷔페 식당의 운영이 어려운 것은 신선도가 생명인 야채류 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북프랜차이즈협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던 허씨는 전주 고사동에 분점을 낸 적이 있으나 적자 끝에 곧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런 관리 문제 때문이었다.음식의 맛은 식재료의 특성을 잘 살리는 데서 나옵니다. 발효해야 할 때 발효하고, 오래 끓여야 할 것은 그렇게 해야 합니다. 구워야 할 것을 볶는다든지, 익혀야 할 것을 굽게 되면 제 맛을 낼 수 없습니다.허씨는 외국인들도 엄지를 든다고 하는, 현재 음식점에서 가장 사랑받는 통밀빵을 예로 들었다. 이 빵을 내놓기까지 5차례에 걸쳐 24시간 반복적으로 발효를 시키는데, 손쉽게 할 수 있는 유혹을 떨쳐야 했다. 한 때 제빵사를 뒀으나 그런 유혹을 떨치지 못하더란다. 시간이 걸린 노력만큼 편안한 결과가 나온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손님은 냉정한 평가자입니다. 내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손님이 손을 대지 않으면 잘못된 것으로 여깁니다. 현재 우리 식당에 나오는 음식들은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메뉴들입니다.△음식 다양성 망치는 조미료는 노허씨의 살림집은 식당 2층에 있다. 거실 서가에는 음식 관련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샐러드, 소스, 두부, 된장, 파스타, 커피와 샌드위치, 녹즙, 디저트 등 음식 전문 서점을 방불케 했다. 식당을 차린 후 늦은 나이에 대체의학 석사학위를 받기도 한 그는 음식 관련 책과 함께 현장의 벤치마킹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지금도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서울의 특급 호텔을 비롯해 전국의 호텔들을 다니며 음식의 흐름을 읽는다. 자만하지 않기 위한 목적도 있단다.허씨는 음식점들이 조미료를 쓰는 걸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미료의 유해성 여부를 떠나 맛의 획일화를 가져오는 게 조미료다. 화학조미료를 벗어나야 비로소 식재료에서 나오는 맛을 느낄 수 있으며, 음식점마다 다양한 색깔의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허씨는 전통음식의 세계화에 관심이 많다. 전통음식을 고루하게 여기며 이에 기반을 두지 않는 세계화는 허구다. 전주시가 한식의 세계화를 목적으로 미슐랭가이드의 별을 따기 위한 노력은 자칫 프랑스화 된 한식으로 잘못 흐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뉴욕에서 별 2개의 미슐랭 평가를 받은 한식당 2곳을 가봤더니 불고기육개장의 양이 너무 적더란다. 미슐랭의 평가에 맞추다보니 한식의 푸짐함이 사라졌다. 미슐랭 평가에서 국가별지역별 음식의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으면서다. 반면 수구적인 자세도 문제로 보았다. 진한 맛의 전통 고추장이 과연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을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허씨는 한식으로서 채식의 깊은 맛을 내고 싶은 게 향후 꿈이란다. 허씨의 풀꽃세상은 거창하게 채식주의를 앞세우지 않으면서도 지역의 채식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직간접적으로 큰 역할을 했다. 슬로시티를 지향하는 전주에 이런 식당 하나 없다면 낯이 안 설 것이다. 채식이 만능이 될 수 없지만, 식문화의 트렌드와 생명환경의 중요성 측면에서도 풀꽃세상의 더 큰 역할을 기대해본다.△음식 가격 1만 2900원.

  • 기획
  • 김원용
  • 2017.09.08 23:02

[길 따라 맛 따라 ② 전주 금암동 맛집골목] 순대부터 가맥까지 입이 즐거운 골라먹기

남도주유소는 한 때 전주 금암동의 랜드마크격이었다. 주변에는 대형 보험사 건물이 즐비하고, 금암1동주민센터와 전북일보 등이 자리하는 데도 근방 약속 장소를 찾을 때는 곧잘 남도주유소를 떠올렸다. 큰 규모도 아니고, 대중적으로 이용하는 곳도 아닌 남도주유소가 왜 금암동 일대의 길잡이가 됐을까. 큰 도로변 네거리에 접한 위치상 특성과, 큰 빌딩 들어서기 전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선점 효과 때문이었을 게다. 주유소가 지난해 철거되고 현재 커피숍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나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남도주유소 골목이다.백제로와 기린로를 옆에 둔 옛 남도주유소 일대의 금암동 번화가는 전북은행 본점과 국민은행, 농협, 신협, 수협, 새마을금고, 보험회사 등 금융관련 회사가 밀집되어 있다. 또 인근에 시외버스와 고속버스 터미널 등이 있어 유동인구가 많은 교통의 중심지다. 그럼에도 덕진구 안에서 금암1동은 주민등록인구가 가장 적다. 금암2동을 합쳐도 2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아파트 보다는 단독주택, 원룸이 많아서다.옛 남도주유소 뒤편은 백제로가 뚫린 이후에도 달리 변화가 없었다. 좁은 골목길로 이어지면서 낯선 이가 목적지를 찾으려면 미로를 헤매기 일쑤다. 주차할 공간도 넉넉하지 못하다. 이런 불리한 여건에서도 이곳에는 오래된 맛집이 많다. 옛 남도주유소와 전북은행 본점을 대각선으로 삼을 때 몇 안 되는 주택과 원룸을 제외하고 모두 음식점이라고 할 만큼 보이는 게 맛집이다. 이곳 맛집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금융기관과 전북대 등 큰 기관을 끼고 있어서다. 기본적인 고객을 확보한 까닭에 다른 지역과 달리 상대적으로 음식점의 생존기간이 긴 편이다.줄잡아 30여개 안팎에 이르는 이곳 맛집들은 전반적으로 규모가 작다. 대부분 음식점들이 10개 안팎의 테이블을 갖고 있을 뿐이며, 자체 주차장을 갖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특정 음식업종으로 집중되지 않은 다양성도 이곳 맛집 골목의 특징이다. 일반 백반에서부터 분식, 중국음식, 고기, 참치, 설렁탕, 추어탕, 순대국, 약식 집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분포돼 있다. 이곳 맛집 골목을 선택할 때 뭘 먹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별 생각 없이 그저 골목 한바퀴를 돌면 당기는 메뉴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또 낮 유동인구가 많아 저녁보다 점심에 더 붐빈다. 몇 업종의 음식점을 제외하고 1만원 안쪽에서 간단히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대다수다.△금암소바이렇게 고만고만한 음식점들이 즐비한 이곳에서도 맛집 골목의 대표 선수는 있게 마련이다. 그 하나가 금암소바(주인 황옥주, 69)다. 금암소바는 여름이면 손님들이 줄 서 기다릴 만큼 전국적인 명성을 갖고 있다. 방에 있는 2개 테이블을 포함해 총 11개 테이블에 불과하지만, 하루 고객 700~800명이 이 집의 맛을 보증한다. 소바의 맛은 국물에 달렸다. 담백하면서 시원하고 진한 국물맛이 이 집 소바의 특징이다. 그 비결을 묻자, 주인 황씨는 빙그레 웃는다. 웃음 뒤에는 어찌 영업비밀을 캐느냐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이라는 뜻을 담아서다.국물 맛의 비밀과 관련해 7~8년 전 이런 일화도 있었단다. 일본인 4명이 손님으로 와서 이 집 메뉴인 소바와 냉면, 콩국수 등을 고루 먹은 뒤 대뜸 일본에 분점을 내자고 제안했다. 소바의 본고장인 일본에서도 금암소바의 맛을 내지 못한다면서다. 어렵다고 말하자, 사례비를 줄테니 비법이라도 전수해달라고 했다. 주인 황씨의 대답은 물론 천부당만부당이었다. 금암소바의 진한 국물 맛은 중독성이 있는 모양이다. 미국으로 이민한 교포 중 여름이면 꼭 이곳을 찾는 분이 있다고 했다. 이 교포는 국물을 얼려서 미국으로 보내달라고 할 정도란다.황씨가 내는 소바국물은 40년 가까운 내공이 담겼다. 전주시내 유명 소바집(진미식당)에서 10년간 소바국물을 전담했던 경력도 있다. 소바 국물의 오묘한 맛은 기본적으로 재료에서 나온다. 멸치홍합다시마반지락 등 16가지의 싱싱한 재료를 3~4시간 끓인 후 간장정종 등으로 간을 맞춘다. 한 두가지 재료를 빠트리거나 재료의 분량이 맞지 않으면 제 맛이 나지 않는다. 황씨는 좋은 재료와 재료간 조화가 맞아야 한다고 비법을 귀띔했다. 음식점을 하는 사람들에게 팁이 될 만한 말도 했다. 손님 하나 하나의 입맛에 맞추다보면 음식을 버린다는 것이다. 손님마다 식성이 다른 데 그 입맛에 따르다보면 본연의 맛을 잃게 될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주인의 맛으로 표준화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28년간 같은 맛으로 금암소바의 오늘에 있게 한 것도 개개 손님의 맛이 아닌, 그의 맛이었다.맛의 변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전에 비해 국물이 싱거워졌다. 소바는 짜야 맛을 내는 데, 건강을 생각하는 고객들이 아무래도 짠 음식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 그런 쪽으로 변했다. 국물 맛과 함께 이 집의 메밀면도 차별성이 있다. 식품회사가 아닌, 일반 가정에서 뽑는 면을 사용한단다.손님이 많으면 으레 큰 집을 구하고, 치장에 신경을 쓰기 마련이지만, 금암소바는 28년째 현재의 장소에서 그대로 있다. 흔히 분점을 통해 번화가로 향하거나 서울로 진출하지만 주인 황씨는 그저 금암동 맛집골목의 터줏대감으로 만족한다.△봉이설렁탕전북대 신 정문 앞에 자리 잡은 봉이설렁탕(주인 이양임, 73)도 금암동 맛집골목을 대표하는 곳이다. 설렁탕은 물가변동의 잣대로 쓰일 만큼 서민들에게 인기 있는 보양식이다. 옛 전북교육청 인근에서 현재는 중화산동으로 이전한 60년 전통의 신씨네설렁탕을 비롯해 경원동의 연지회관, 송천동의 족보설렁탕 등 전주시내 에서 설렁탕 잘하는 집도 많다.소의 머리, 무릎도가니, 뼈다귀 등을 넣고 푹 끓여 우려낸 설렁탕의 국물은 뽀얗다. 봉이설렁탕은 국물을 내는 데 소머리를 주로 사용한다. 설렁탕 추세가 살코기 쪽으로 변하는 데 비해 이곳은 소머리를 고집한다. 5시간 정도 뼈를 고아서 고기국물과 합쳐 내놓는 이 집 설렁탕은 고소한 국물과 쫀득쫀득한 고기 맛이 특징이다. 94년 문을 연 뒤 지금까지 이곳을 지키고 있다. 주인 이씨는 10년 가깝게 동생이 운영하는 인근 벽계가든에서 고기를 다뤘다. 다대기김치깍두기파김치 등 밑반찬은 지금도 본인 담당이며, 고기와 국물은 아들(오민섭, 42)에게 전수했다.이곳 역시 점심때면 16개 테이블이 손님들로 넘친다. 농구시즌이면 KCC 선수들의 아지트. 선수들이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고, 속을 다스리는 데 적합한 음식이 설렁탕이란다. 요즘 같은 여름에도 하루 150~200명 정도가 다녀간다.금암순대(주인 이정숙) 역시 금암동 맛집의 터줏대감. 허름했던 바로 앞집에서 테이블을 늘려 이사한 후에도 계속 문전성시다. 집 분위기는 시골스러웠던 옛집이 더 정겨웠던 아쉬움도 있다. 전북 지역 곳곳에 산재한 유명 순대집과 비교할 때도 맛과 양, 밑반찬 등에서 결코 빠지지 않는 집으로 추천되고 있다. 금암순대에서 1차로 얼얼할 때 좀 서운하다 싶으면 인근 새움가맥이 그 뒤를 책임질 수 있다. 올 가맥축제에도 초대 받은 이곳은 더 깊은 골목에 자리잡은 숨은 가맥집이다. 한옥마을 베테랑 칼국수집을 연상시키는 금암면옥, 약초를 이용한 자연음식점 감로원, 팥칼국수의 정주분식, 닭곰전골의 정둔면옥, 쌈밥집 쌈가 등도 금암동 골목을 지키는 맛집들이다.△금암소바(278-0945)=소바(보) 6000원, 콩국수(보통) 6000원, 냉면(보통) 6000원, 사리 2000원, 콩물(1.5ℓ) 8000원△봉이설렁탕(271-0912)=수육 3만6000원, 접시수육 1만8000원, 사골떡국 8000원, 영양설렁탕(인사+버섯+대추+떡) 1만1000원, 설렁탕 9000원, 물만두4000원△금암순대(272-1394)=암뽕모듬(대) 2만 5000원, 막창모듬(대) 2만원, 머리고기(대) 1만 8000원, 순대 1만원, 순대국밥 8000원, 머리국밥 6000원

  • 기획
  • 김원용
  • 2017.08.25 23:02

[길 따라 맛 따라 ① 전주 한벽루 오모가리촌] 친구야, 오랜만에 얼큰한 쏘가리탕 뚝배기 어때?

오늘은 뭘 먹을까뭐 잘하는 집 알아?거기 맛집 하나 소개해줘?일상에서 먹는 즐거움만큼 큰 것도 없다. 살기 위해 먹던, 끼니를 채우던 시대는 옛말이다. 그러다보니 맛집에 대한 관심이 절로 높아졌다. 외식산업 또한 급성장 추세다. 음식점이 그만큼 많이 생기고 있다. 고객들의 입맛도 더 까다로워졌다. 맛집이 아니면 음식점 자체 생존이 어려울 만큼 가히 맛집 경쟁시대다.TV와 신문, SNS 등 각종 매체에 맛집 정보가 넘친다. 음식 관련 파워 블로거도 수두룩하다. 그러나 맛집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식성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식성은 잘 변하지 않는다. 젊은층과 중장년층, 노년층이 좋아하는 음식도 차이가 난다. 특별히 어떤 음식점을 맛집으로 추천하기 어려운 이유다.그럼에도 각 고장마다 널리 사랑을 받는 맛집은 있기 마련이다. 맛집은 그저 잘 빚은 음식의 맛에만 있지 않다. 주변의 풍경과 정취, 지역사회와의 밀접성, 맛을 내는 주인의 정성 등이 함께 할 때 더 빛이 난다. 본보는 맛집 골목을 중심으로 이런 맛집에 주목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맛집골목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골목과 함께 해온 맛집의 애환을 들여다보는 내용으로 꾸린다.전주 토박이들은 한벽루에 추억들을 차곡차곡 싸놓았다. 토박이 누구에게 물어보더라도 그 추억들을 술술 풀어낸다. 한벽루를 휘감고 나온 전주천에서 멱을 감고, 물고기를 잡았다는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자갈밭에 벗어놓은 옷이 없어져 시내 멀리 떨어진 집까지 팬티만 입고 가는 아이들이 허다했다. 물놀이 사고가 간간이 나던 시절이어서 부모님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으려고 티나지 않게 고깃병을 숨겨놓았던 곳도 천변 자갈밭이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보를 쌓기 전까지 천변을 따라 자갈이 널따랗게 깔려 있었고, 그 자갈밭이 바로 베이스캠프로 활용됐다. 한벽루는 어둑해질 무렵 아주머니들이 빨래하고 목욕하는 곳이었다. 강태공들이 즐비하게 앉아 피리낚시에 열중하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농촌 출신들에게 그리 새삼스럽거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지만, 전주 토박이들이 곧잘 어린시절 추억으로 떠올리는 한벽루 풍경이다. 전주가 도시화의 물결을 타고 그만큼 많이 변했으며, 한벽루도 그 변화를 비켜서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아주 오래 전 한벽루의 모습을 보여주는 신문 기사도 눈에 띈다. 전주의 한벽루는 역사적으로나 풍경으로나 전주의 명승지인 동시에 소공원인바 근래 제방 위에 우마를 매어둠으로 불결하기 짝이 없다. 이 한벽루는 봄철에는 사구라구경으로 전주에서 유일무이한 곳이고, 여름철에는 금년부터 풀이 되어서 찾는 이가 많을 뿐 아니라 저녁에 납양객 사오백명이 모여드는 곳으로 좀 더 정화를 요하는 곳이다.1938년 7월28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한벽루 정화의 필요성을 역설한 내용이지만, 당시에도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이 보다 10년 더 앞선 기사에서는 한벽루 뒤편에서 조석으로 들리는 남국사 쇠북소리를 좋다고 했으며, 하절기 조선 전체에서 가인재자가 모여들어 청풍을 즐기며 수영에 절호의 장소라고 적었다.△풍광과 정취,추억이 듬뿍 담긴 명소이런 유서 깊은 한벽루에서 어찌 맛집을 빼놓을 수 있으랴. 한벽루 바로 아래 자리잡은 오모가리촌은 한 때 전주를 대표하는 맛집 골목이었다. 지금이야 한옥마을 곳곳에 널린 게 맛집이다. 콩나물 국밥, 비빔밥, 갈빗집, 백반집, 칼국수집, 중국집 등 비교적 오래된 맛집에서부터 새로운 트랜디 레스토랑까지 한옥마을 전체가 먹을거리 천국이다. 그 와중에도 한벽루 오모가리촌이 한옥마을의 외진 뒷방에서 옛 멋과 정취를 지키고 있는 게 참 용하고 대견스럽기까지 하다.기실 맛집 기획 첫 번째로 전주 오모가리촌을 잡은 이유도 다른 데 있지 않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음식업계에서 옛 맛과 멋을 간직하며 전주의 자존심을 꿋꿋이 지키는 곳이어서다. 전주시내 음식점 중에 번호표를 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맛집도 많고, 동종의 매운탕 음식점 중에도 오모가리촌 보다 쾌적하고 맛깔스러운 곳이 즐비한 데도 말이다.7~8년 만에 찾은 한벽루 밑 오모가리촌도 그 사이 많이 변하기는 했다. 가장 크게 변한 것이 음식점들 앞에 놓인 평상이 없어지고 그 자리를 전주시에서 만든 12칸짜리 방갈로가 차지했다. 깔끔해졌지만 정취는 예전만 못한 것 같다. 방갈로를 만들면서 치렁치렁 늘어졌던 버드나무가 사라진 것도 아쉬웠다. 한벽루 오모가리촌의 매력이 무엇보다 야외 풍광과 물소리를 벗삼을 수 있는 점인데, 인위적인 요소가 가미될 경우 아무래도 그 맛이 반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오모가리촌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했지만, 음식점은 현재 3곳에 불과하다. 김제집과 버들집이 없어지면서 한벽집남양집화순집만 남았다. 한옥마을의 많은 원주민들이 외지 자본에 떠밀리는 상황에서 그나마 이들 3곳의 음식점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맛집으로서 전국적인 오랜 명성과 함께 음식점 주인소유의 집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이들 음식점의 맛과 메뉴, 가격은 비슷비슷하다. 옆에 두고 나란히 60~70년을 함께 해온 까닭이다. 음식점 단골이 아니라면 음식점 이름을 몰라 약속을 잡을 때 몇 번째 집에서 보자고 한다. 취재 대상으로 삼은 집은 한벽집과 남양집 사이에 있는 가운데 집이었다. 자문 겸 말 동무 삼아 전주 토박이인 선기현 전북예총 회장에게 두 번째 집에서 보자고 했다. 화순집이다.여름철 외부서 손님이 오면 꼭 이곳으로 모셨어요. 평상에 앉아 자연바람을 쐬며 쏘가리탕에 막걸리를 기울였던 추억을 떠올리는 친구들이 지금도 많습니다. 벗어놓은 신발에 지네가 들어가 지네에 물렸던 친구는 평생 이곳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선 회장은 전주 오모가리가 갑자기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고 했다. 전주 한벽루 주변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란다. 한벽루 밑 전주천 맑은 물에서 물고기가 많이 잡혔고, 이 물고기를 재료로 일반 가정에서도 즐겼단다. 여기서 잡은 붕어만 하더라도 조림으로, 말려서 탕으로, 회쳐서 일상으로 먹었다는 것이다.△ 60년 된 화순집, 정갈한 밑반찬에 정성 가득선 회장과 몇 마디 나누는 사이, 주문했던 쏘가리탕 한 상이 방갈로로 나왔다. 밑반찬이 정갈했다. 콩나물마늘종멸치볶음겉절이고추양파된장파김치깻잎시금치맨 간장과 김계란말이멸치속젓. 전주의 대부분 음식점에서 풍성한 밑반찬을 차리기 때문에 가짓수로는 그리 많다고 할 수 없지만, 하나하나 정성을 들였다는 게 한 눈으로도 알 수 있었다. 계란말이는 다른 재료를 넣지 않고 소금 하나로 소박하게 만들어 담백한 맛이다. 갈치속젓은 곰소에서 직접 구입해 맛깔스럽게 무친 것이며, 깻잎은 된장에 버무려 담은 후 간이 베었을 때 물에 씻고 양념을 해서 푹 찌는 방식으로 내놓는다. 된장에 담는 것은 간이 배게 하기 위함이란다.오모가리에 들어가는 주 메뉴인 민물로는 쏘가리, 빠가사리(동자개), 새우, 메기, 피라미가 있다. 진안 용담호 등에서 조달하는 물고기들이다. 주인 김종희씨(69)는 냉동고기를 쓰지 않고 산고기만 사용한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성질이 급한 쏘가리를 조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단다. 싱싱한 물고기와 함께 시래기가 맛의 생명이라고 했다. 그래서 가을에 열무 시래기를 만드는 게 큰일의 하나란다. 아무리 바빠도 막 지은 고슬고슬한 검정 콩밥과 누룽지, 눌은밥을 합해 메뉴가 완성됐다. 오모가리는 오목한 그릇의 전라도 사투리로, 거기에 끓인 탕이 오모가리탕이다.한옥마을이 북적거리면서 오히려 손님이 줄었어요. 예전에는 저녁 12시까지도 손님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10시쯤이면 발길이 끊깁니다.의외다. 한옥마을에 관광객들이 몰리면 당연히 이곳 손님도 늘어날 텐데 그렇지 않다니. 한옥마을을 주로 많이 찾는 젊은층에게 오모가리탕은 큰 매력이 없나보다. 한옥마을 중심 부근에 많은 맛집들이 새로 생기고, 한옥마을이 북적이면서 차량 통행에 제한을 받는 것도 이유일 것으로 주인 김씨는 분석했다.욕심 부리고 싶지 않습니다. 서울에서 체인점을 내라는 분도 있지만, 오모가리탕이 먹고 싶으면 전주로 와서 잡수라고 합니다. 주인 김씨의 오모가리탕에 대한 자존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이다. 지상파 방송에도 여러 번 출연해서 맛집으로 널리 소개됐고, 지금도 방송 출연 제의가 간간이 오지만 사절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대선 후보시절 찾았고, 방송인 송해씨 등 유명 인사들이 찾았지만 사진 한장 걸어놓지 않았다. 진짜 맛있게 먹었다는 손님 한마디로 족하단다.△한벽당 284-2736, 화순집 284-6630, 남양집 284-1912,△음식가격(대 4인 기준) 쏘가리탕 100,000원, 빠가탕 55,000원, 새우탕 45,000원, 메기탕 45,000원, 피라미탕 4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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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용
  • 2017.08.1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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