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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어진 벽 - 최기술

 
팔불출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쑥스러움이 앞선다. 아내는 60평생을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왔다. 젊은 시절 아들만 셋을 낳아 키우고 가르치고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자기생활은 없었다. 쪼들린 살림살이에 열두 번 이사를 다니면서 젊음을 보내기도 했다.

 

세월은 흘러 아이들이 성장하여 가정을 꾸려 분가하니 허전 한 가운데 무거운 짐은 내려놓게 되었다.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아내는 여가를 이용해 이곳저곳 강습회도 다니고 합창단에도 기웃거려보고 취미생활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덕진노인복지관이 개관 되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노인 일자리 하나를 얻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일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녀의 공식 직함은 사서도우미다. 한주에 하루 8시간 근무하는 조건이다.

 

첫해는 전주 청소년문화원의 작은 도서관 에서 청소도하고 도서수납도 하며 하루 종일 청소년들과 생활하다보니 청소년들의 일상생활과 동화되어 갔다. 대부분 불우한 학생들이 드나들고 있는 문화원 근무가 익숙해지고 일하는 보람을 느끼기 시작한 그녀는 직장생활에 흠뻑 빠져들어 갔다. 일 년이 지나고 근무태도가 좋다는 인정을 받아 덕진노인복지관 큰 나루 작은 도서관으로 영전하게 되었다. 집에서 가깝고 고객이 어른들이라서 조용하고 공부하는 분위기가 좋다고 한다. 일하는 동료들과 인간관계도 좋고 전문서적 에서부터 교양 도서까지 골고루 갖추어져있는 책을 가까이 할 수 있어 더 없는 즐거움으로 알고 지내고 있다.

 

그녀의 신바람은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복지관 프로그램중에 일어와 명심보감 강의를 듣고 옛 고전에 심취되기도 한다. 월요일에는 식당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동료들과의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어 들떠있을 정도로 신바람이 나 있다.

 

동절기인 오늘도 출근시간에 맞추기 위해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이더니 8시가 되자마자 아침 잘 챙겨 먹으라는 말을 남기고 대문을 나선다.

 

혼자서 아침을 먹는 일 이 쓸쓸해진다. 식사 하고 나서 아내가 다 하던 식사후일들이 내 차지가 되었다. 대충 설거지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겼다. 무엇보다 혼자 집에 있을 때 공허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졌다.

 

누가 모든 현상은 상대성이라고 했던가? 아내가 신바람 이 나있는 동한 나는 허전함을 느껴야 하다니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다. 지금까지 아내는 나를 왕자로 받들어준 천사였었다. 어머니 품같이 따스하고 사랑스러웠다. 내 마음을 온전하게 감싸주던 바람막이 벽이었었다. 그러던 벽이 허물어진 느낌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아내가 나이 들어가는 길에 일하는 즐거움을 맛보고 취미생활에 젖어 행복해하고 있는데 젊은 시절 자기생활을 다 포기하고 오직 가족들의 뒷바라지만 해온 아내의 희생에 조금이라도 보상이 된다면 내가 푸념을 해서야 되겠는가? 3년 전에 이미 나의 왕자 임기도 끝났는데, 창 너머 갈색 구름이 하늘에 번지고 있다.

 

※ 수필가 최기술씨는 2010년 <수필과 비평> 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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