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혁명·운동…관점 따라 표현 달라 / "반봉건·반외세 치중, 나눔·배려 강조 필요"
1894년에 ‘동학이라는 종교 집단을 중심으로 농민들이 들고 일어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사건의 의미, 영향, 그리고 명칭과 같은 기본적인 내용들까지도, 보는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르다. ‘사실’은 하나지만, 그 사실을 현재로 불러내는 사람의 관점이 새로운 ‘진실’을 구성한다. 그리고 그 여럿 중에서 국가가 택한, 또는 ‘수용 가능한’ 관점이 교과서에 실려 학교로 간다.
교과서는 곧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관점을 엿볼 수 있는 잣대다. 여기에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시각을 형성시킨다는 점에서도 교과서의 서술 내용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해방 직후의 교과서와 ‘동학난’
광복 직후부터 한국전쟁 휴전 직후인 1954년 4월까지는 ‘교수요목기’였다.
미군정청은 1945년 9월, 60명을 위촉해 한국교육심의회를 발족시키고, 이를 통해 ‘교수요목’이라는 교육방침을 내놓았다.
1954년에는 ‘교육과정 시간배당 기준령’이 공포됐고, 이듬해 8월에 정식으로 교과과정이 공포됐다. 이 시기를 1차 교육과정기로 구분하고 있다.
이 무렵까지 사용된 역사 교과서들은 동학농민혁명을 ‘동학난’으로 표현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동학농민혁명과 같은 농민봉기는 조선이라는 왕조국가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성질의 것이었고, 이 때문에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도 대체로 ‘반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무엇보다도, 조선·대한제국이 멸망하고 곧바로 제국주의 일본의 강압적 식민통치가 이어짐으로써 이 사건에 대해 제대로 역사적인 평가를 할 겨를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정권 입맛 따라 바뀐 해석
이 같은 시각이 수정된 것은 1963년, 제2차 교육과정이 나오면서부터였다.
1973년(일반계 고등학교는 1974년, 실업계 고등학교는 1976년)까지 지속된 이 시기에, 역사교과서들은 ‘동학난(란)’이 아닌 ‘동학혁명’이라는 용어를 들고 나왔다.
왜 갑자기 ‘동학난’에서 ‘동학혁명’으로 점프한 것일까?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신의 정변을 정당화하기 위해 ‘혁명’이라는 개념을 빌려 쓰면서 그 역사적 정통성을 동학농민혁명에서 찾으려 했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김한종 교원대 교수의 ‘동학농민전쟁의 명칭과 그 의미’(2005)라는 논문에 따르면, 이 시기에는 ‘국적 있는 교육’을 표방하면서 ‘대외항쟁사’를 교육과정 속에서 많이 강조했다.
이에 따라 자연히 동학농민혁명이 가진 ‘반외세’의 성격에 교육의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70년대 중반부터 3차 교육과정이 시행되면서, 교과서상 명칭은 ‘동학혁명운동’으로 바뀌었다.
이 역시 개념적으로 잘 다듬어진 용어는 아니었고, ‘반외세’에 초점을 맞추는 교육 기조 역시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다만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의 농민사회운동이자 농민전쟁’과 같은 표현을 통해 ‘반봉건’, ‘사회운동’적 성격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2차 교육과정기의 교과서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1980년대 시행된 4차 교육과정에서는 ‘혁명’이라는 표현이 빠지고 ‘동학운동’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김 교수는 앞의 논문에서 “12·12 쿠데타와 5·17 비상계엄 확대, 그리고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무력 진압을 거쳐 집권한 전두환 정권으로서는 구태여 동학농민전쟁의 성격을 ‘혁명’이라고 부를 이유는 없었다”고 짚었다.
이 시기에는 또한 서술 자체도 단순한 ‘여러 민족운동 중 하나’ 정도로 간소화됐다.
1987년 민주화를 겪으면서, 교육과정이 다시 한 번 바뀌게 됐고, 명칭도 ‘동학농민운동’으로 다시 바뀌었다. 명칭에 ‘동학’과 함께 ‘농민’이 나란히 놓이면서, 드디어 주체가 동학교도 뿐만 아니라 당대의 농민들이기도 했음이 교과서에서 인정된 셈이다.
그리고 이 용어는 6·7차 교육과정을 지나 2009 개정교육과정이 시행되고 있는 현재까지도 계속 쓰이고 있다.
△ ‘혁명’과 ‘운동’ 사이에서
2004년에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일단은 ‘동학농민혁명’이라는 명칭이 국가적으로 공인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교과서들은 ‘동학농민운동’으로 이 사건을 표기하고 있다. 정부의 편수 지침에 따른 것이다.
김양식 충북학연구소 소장은 그 원인으로, 현행 교과서 자체가 개화운동 및 독립운동 중심으로 집필이 이뤄지다보니 ‘혁명’이라는 표현을 쓰게 되면 교과서의 틀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 ‘혁명’이라고 하면 체제의 변화를 동반하는 개념인데, ‘운동’ 차원으로 보고 있다 보니 ‘운동’이라는 수준에 맞게끔 짧게 소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혁명’이 되지 못한 ‘운동’은 갑오개혁의 부수적 요소 정도로밖에 서술되지 않는다.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8종 중 동학농민혁명을 별도 단원으로 두어 설명하는 것은 1종에 불과하고, 대부분 갑오개혁과 한 단원으로 묶어 설명하고 있다. ‘근대 국가 수립을 위한 노력’으로 뭉뚱그리는 교과서도 있다.
왕현종 연세대 역사문화학과 교수가 ‘수정판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의 개편내용과 근대사 서술 비판’(2006)이라는 논문에서 언급한 대로, “민중운동을 하나의 독립적인 주체로서 다루려고 하지 않으려는 태도 때문일 것이다.”
△“젊은이에 감동 주는 미래지향적 서술을”
배항섭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는 ‘동학농민전쟁에 대한 역사교과서 서술 내용의 새로운 모색’(2012)이라는 논문을 통해 농민군이 지향했던 바나 실제로 보여준 행동 등을 들어, 교과서에서 ‘나눔과 배려’의 정신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9 개정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인간상’에 ‘세계와 소통하는 시민으로서 배려와 나눔의 정신으로 공동체 발전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는 항목이 명시된 만큼, 동학농민혁명의 이 같은 정신을 교과서를 통해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 교수는 “ ‘반봉건 반외세’만 외치는 것은 이제는 의미가 없다”면서 “농민군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얘기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미래지향적으로 깊이 성찰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위정자들이 약속을 외면하고 가렴주구하지 않도록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사회·경제·정치의 민주화’를 언급했다. 이같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미래지향적인 내용이 교과서에 담겨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 전북교육청 발간 동학농민혁명 교재 - 교과서로 제작한 첫 사례, 평등·민주·자주정신 주목
전북도교육청은 지난달 초등학생용 및 중·고등학생용 동학농민혁명 교재를 발간했다.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학교 교재 발간은 처음 있는 일이다.
초등학생용 교과서는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사실 △동학농민혁명의 정신 △함께하는 동학농민혁명 등 크게 세 단원으로 구성됐다.
특히 ‘동학농민혁명의 정신’ 단원은 평등·민주·자주라는 세 가지 주제로 구성돼 있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인권 교육과도 연계할 수 있다는 것이 도교육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평등·민주·자주라는 세 가지 주제는 중·고등학생용 교재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세 번째 단원인 ‘동학농민혁명이 이루려는 세상은 무엇인가요?’라는 단원에서 이를 다루고 있는데, ‘평등’을 시민의 저항권과, ‘민주’를 지방자치와, 자주를 주체적·자주적인 삶과 연결 짓고 있다.
발간 작업에 참여했던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은 “전국적으로 처음 만들어졌고, 자료나 내용도 전문가 및 교사들의 토의를 거쳐 완성돼 의미가 있다”면서 “새로운 시각을 많이 반영해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