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는 엘도라도(El Dorado)예요. 아직 금을 캐내지 않은 금광의 상태. 그런데 엘도라도로 가는 지도가 없는 것 같아요. 지도가 없다 보니 자기 발밑에 금광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것을 찾고 있는 거죠.”
10여 년 전, 전주의 출판문화를 연구했던 글씨미디어 홍동원 대표가 들려준 말이다. 오래전 일이지만 문자와 언어를 연구하며 디자인의 영역을 개척해온 그가 도시를 보는 관점은 특별했다. 그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것이 있다. 도시의 미래를 위해서는 ‘도시의 지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도시의 지도를 만드는 방법이 따로 있을까.
그는 “그 도시가 걸어온 역사와 전통을 잘 읽어내면 그것이 바로 지도가 된다”고 말했다.
그 도시가 갖고 있는 것, 도시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자는 것, 그것이 곧 그가 말하는 도시의 지도 만들기였다.
돌아보면 국가와 도시의 미래를 열었던 ‘지도’들이 적지 않다. 프랑스가 2만 달러 시대를 맞았던 시기, 미테랑 대통령이 프랑스혁명 200주년 기념사업으로 추진했던 <그랑프로제(Grands Projets)>도 그중 하나다. 도시연구자 강동진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테랑의 <그랑프로제>는 20세기 말, 정치 경제 예술 전반에 걸쳐 국제적 위상이 떨어지고 있던 프랑스의 힘을 되살려낸 '파리의 도시문화혁신프로젝트’다. 루브르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오르세미술관, 라빌레트 과학산업관과 공원, 라데팡스 상업지구,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국립도서관 등 오늘날 파리의 랜드마크가 된 공간들이 모두 <그랑 프로제>의 결실이다. 관심을 끄는 이 공간들의 특성이 있다. 모두 ‘낡아 쇠퇴하거나 버려졌던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문을 닫은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폐쇄된 도살장을 과학과 책 읽는 공원으로 바꾸었으며 낙후지역에는 국립도서관을 유치하고 프랑스혁명의 역사적 장소였던 바스티유 광장에 오페라극장을 건설한 <그랑프로제>. 들여다보면 파리의 역사와 전통을 잘 읽어내 만들어낸 훌륭한 ‘도시의 지도’였다. 이 ‘도시의 지도’로 파리는 쇠퇴의 위기에서 날아올랐다. 강교수의 분석처럼 ‘싹쓸이 밀어내기식 도시계획이 아니라 공간 치유에 두터운 문화를 중첩시킨 혁신의 개념’으로 ‘파리의 역사와 현대미학을 조화시키고 휴머니즘을 기반으로 한 문화중심의 도시 쇄신’을 추진한 성과다.
십수 년 전의 ‘도시의 지도’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6.1지방선거를 앞두고 내놓은 자치단체장 출마 후보들의 공약을 마주하면서다. 아쉽게도 도시를 새롭게 이끌겠다는 후보들의 야심찬(?) 공약에는 하나같이 도시의 역사를 읽어낸 힘이 보이지 않는다. 역사와 현재, 미래가 호흡하는 ‘도시의 지도’를 가진 리더를 만났으면 좋겠다./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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