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 옛사람들에게 편지는 일상의 중요한 소통 도구였다. 안부 인사나 사적 공적 용건뿐 아니라 가족 친척에게 인사를 전하거나 바쁜 농사일에 매달려 있는 고통을 토로하고, 관직을 떠난 선비가 어지러운 정국을 걱정하거나 조의를 표하는 일까지도 직접 쓴 편지로 마음을 전했다. 그래서 옛 편지는 개인적인 글이지만 옛사람들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조선 후기 사상가 다산 정약용이 말년을 보낸 유배지에서 가족과 친지들에게 보냈던 편지도 그렇다. 특히 다산은 아들과 제자들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는데 아버지의 자상한 사랑과 스승의 정이 넘치면서도 더 좋은 세상을 향한 사상과 의지를 담고 있는 이 편지들은 지금도 소중한 깨우침을 전하는 인생 교훈의 지침서로 읽힌다.
역사자료가 된 편지도 많다. 2009년 초에 공개된 정조의 <어찰첩>도 그 중 하나다. 정조의 어찰첩은 작고하기 전 4년 동안 좌의정 심환지에게 보냈던 편지 묶음이다. 어찰첩에 담긴 편지만 297통. 정조는 편지를 보내면서 지속해서 ‘이 편지를 폐기하라’고 지시했지만 심환지는 따르지 않고 편지를 받은 날까지 꼬박꼬박 기록해 간직했다. 흥미로운 것은 비밀스럽고 민감한 정치적 사안을 담고 있는 이 편지가 한편으로는 ‘선비 군주’로만 알려져 있던 정조가 막후정치에 능한 정치가였고, 성격도 다혈질이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통로(?)가 되었다는 것이다.
530년 전 아내에게 쓴 편지가 국가 ‘보물’로 지정됐다. 조선시대 무관인 나신걸(1461~1524)이 아내에게 보낸 한글 편지다. 1480~1490년 사이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편지는 지금까지 발견된 한글 편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훈민정음이 반포(1446년)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쓰여진 것이어서 당시 사람들이 한글을 어떻게 썼는지를 보여줄 뿐 아니라 조선시대 언어 등 생활문화상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로 가치를 인정 받는다.
편지는 2011년 대전 유성구에 있던 그의 아내 신창 맹씨의 무덤에서 나왔다.
“안부를 그지없이 수없이 하네. 집에 가 어머님이랑 아기랑 다 반가이 보고 가고자 하다가 장수(將帥)가 혼자 가시며 날 못가게 하시니 못가서 못 다녀가네. 이런 민망하고 서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꼬? -편지 전문 중-”
내용을 들여다보니 집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일하는 남편이 아내에게 전하는 애틋한 감정과 가족에 대한 안부, 함께 있지 못하는 미안함, 챙겨야 할 농사일 등 수백 년이 지난 오늘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형식도 내용도 의미 있는 또 한 통의 귀한 옛 편지가 우리 곁에 와있으니 반갑다. /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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